더블린라이프, 2017.7.20
어디에 가나 사람이 관건이다. 학교를 다닐 때도, 회사를 다닐 때도, 일이나 과제 때문에 늘 피곤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사람. 같이 조별 과제를 하지 않는 사람 때문에 짜증나고, 회사에서도대하기 어려운 선배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기도 하지만 사람들 덕분에 빛났던 순간도 많다. 매일 밤을 새면서같이 기사쓰고 취해쟀던 동아리 친구들은 졸업 후에도 꾸준히 만나고 연락하는 제일 친한 친구들이 됐고, 첫번째, 두 번째 직장에서 일했던 선배들이나 친구는 지금도 언제든 연락하면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지원군이다.
이 곳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무의 상태에서 인간관계를 다시 시작하는 두려움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17시간의 비행 시간을견뎌내고 멍한 상태에서 에이전시 직원을 만나 홈스테이로 가는 길까지도 실감이 안 났지만, “하이!” 반갑게 인사하는 노란 머리의 파란 눈 홈맘을 처음 본 순간 깨달았다.
‘정말 외국에 온 게 맞구나.’
시티에 가는 길을 알려주는, 보호자 같은 호스트 패밀리와 살면서 내인간관계를 하나씩 새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특히 나처럼 낯가리는 이에게.
하지만 벌써 5개월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난 여기의 흐름에 따라 조금은 오픈 마인드가 되었다.
모르는 친구들이섞인 점심 식사 자리든, 파티든, 참여할 수 있고, 처음보는 사람들과 도 (그게 외국인일지라도)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가끔 커뮤니케이션에 목마를 수 밖에 없었던 건, 내가 늘 단단하고 깊은, 농도가 진한 대화를 좋아하고 추구하기 때문이다. 친구들과의대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 내 베프들은 알겠지만, 시간이느껴지지 않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대화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그 순간이 내가 가장 애정하는 찰나다. 그리고이 순간은 많은 대화가 쌓이고 쌓여야 만들어진다.
새로운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이런 찰나를 얻을 수 없다는 건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외국 친구들과 자연스럽지 못한 제 2외국어로 대화하면서 당연히저런 대화는 불가능. 그래서 늘 제너럴 퀘스천, 소소한 이야기, 농담 따먹기 밖에 할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리고난 이미 이런 스몰 토크와 가벼운 토크에 익숙해졌고, 스쳐가는 인연에 연연하지 않을 만큼 만남과 이별에익숙해 져가고 있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대화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은 한국인 밖에 없지.
물론 이 곳에서 마음 맞는 한국 친구들을 만났다. 대부분이 나보다어린 친구들인데, 그 중에서도관심사가 비슷해서 같이 미술이나 영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도 있고(마크 로스코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게 될 줄 몰랐지, 여기서), 같은 날 아일랜드에 도착해서 교회도 같이 다니는 친구와는 흔들리는 신앙심에 대해 고민 상담을 하고, 나와 같은 나이에 비슷한 이력과 일을 하다 온 친구와 캐리어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짧았지만 작은 설렘을 줬던 친구와의 만남도 있었고. 오히려한국보다 친구들을 더 많이 만든 것 같다.
몇 달 전, 머나먼 곳에서 친한 친구가 날아와 친히 더블린까지 와줬다. 긴 휴가를 받아 온 친구는 유럽 여행을 준비하면서 내가 있는 아일랜드도 여행 계획에 껴주게 됐고, 몇 개월 만에 우리는 한국에서도 머나먼 더블린, 우리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새벽 1시에 조우하게 됐다. 한껏 짧아진 머리의친구와 한껏 외국물 마신 내가 만나 참 재밌게 여행을 했다. 아일랜드를 돌고, 포르투갈 여행까지 함께 하며 오랜만에 많은 대화를 나눴다.
‘아, 내가 잊고 있던대화가 이런 대화였구나.’
이곳에서 친해진 친구들과 쌓아온 커뮤니케이션의 깊이와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알아오고 대학교,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눠온 친구와 나눈 대화의 깊이는 시간의 투자와 비례할 수 밖에없다.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내 생각과 의견을 이미 알고, 통하는그런 친구였으니까.
이 친구 말고도 언제든 전화해서 어제 만난 것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이 늘 있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오후에 전화하면 한국은 저녁시간인데, 퇴근해서늦은 저녁을 먹는 친구와 오늘 뭐했니, 저녁 뭐 먹을거니 시시콜콜한 이야기하기도 하고. 회사를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1년 째 하고 있는 친구와 드디어 회사를그만둘 수 있는 날을 받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고, 우리의 지난 여행에 대해 추억하기도 한다. 또 오랜만에 연락했지만 나름 감성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와는 서로의 감성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해만 나와도 신나고, 영감이 샘솟는 여유 속의 나와 후리했던 아티스트에서직장인이 되면서 감성이 메말라가고 있는 친구와의 대화.
내 오랜 친구, 감성의 안부를 묻는 특별한 친구와 머나먼 시차를 건너대화를 이어 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다시 이 생활에 집중할 용기나 열정을 받아온다. 누군가 부러워할시간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나의 생활에 감사하고, 그 여유를 풀어낼 감성이 어느 때보다 퐁퐁 샘솟고있음에 감사하고, 걱정없이 외국 친구들과 농담 따먹기 하며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가벼운 생활에 또 감사하게 된다.
나의 특별한 친구들이 있어 다시 한번 아일랜드 생활에 집중한다.
손가락사이로 흩어지는 해만 봐도, 매일 같이 집에 가면서 지나치는 공원에서 내 발길을 사로잡았던 너무 아름다운공원의 연못과 수많은 새들을 봐도, 평화로운 동네, 고요한집안에서 이 새벽에 집중해 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것도, 다 그들과의 대화 속의얻은 무언가가 일상에 함유되어 있기에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