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라이프, 2017.7.28
내가 처음 기네스를 마셔본 건, 동네 작은 펍에서였다.
아일랜드에 온 지 3주차. 집구하기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였다. 미래의 하우스 메이트들과 같이 집을 렌트하려고 집 구하는 사이트에서본 집들에 하루에도 메일을 30개씩 보내고, 답장이 오길기다리고, 뷰잉을 보러 가는 나날의 연속. 어느 집을 보러갔다가 그 펍에 갔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데, 내가 당시 머물던 홈스테이에서 머나먼 동네였고, 살기 좋다고 익히 들어왔던 동네여서 뷰잉을 자주 왔던 동네였고, 역시 미래의 우리 집이 있는 동네다. 메이트들이 이미 단골 펍으로 지정해놓은 펍에 있다기에 뷰잉을 하고 그펍으로 갔다.
빨간 외관이 눈에 띄지만 작아 보이는 펍 안으로 들어가자, 어두컴컴한 실내에 비밀스러운 공간이 펼쳐졌다.
천장은 낮지만 옹기종기 테이블들이 붙어있었고, 곳곳에 켜놓은 촛불과 작은 불빛이 그 공간을 더욱 아늑하게 만들었다.
아일랜드에 왔으면 기네스 한잔 마셔봐야지!
학생할인으로 4유로를 내고 마신 기네스.
한국에서도 그다지 술을 좋아하지 않아서 잘 먹지 않았던 맥주지만 특히 흑맥주는 더더욱 경험이 없었다. 흑맥주 중에 탑으로도 불리는 기네스를 처음 마시고 감탄하기에는 내가 너무 무지의 상태였다. 다행히도 예민한 미각으로 느껴본 음료, 기네스의 맛은 복잡미묘한맛. 새카만 색이어서 엄청 쓸거라는 예상보다 쓴 맛은 없었다. 그보다고소한 맛에 초콜렛 냄새도 나는 거 같고, 걸죽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묵직한 바디감이 종종 마시던 블론드비어와 전혀 달랐다. 그리고 은근히 도수가 높아서(드래프트 4.2도) 술도 잘 못마시고, 피곤한상태였던 나는 한잔에도 잠이 쏟아질 정도였다. 이게 기네스와의 첫 만남이었다.
홈스테이 마지막 날 아침까지도 집을 못 구해서, 며칠 더 연장을 하기로하고 학교 가기 전까지 짐을 싸다가 학교를 다녀왔더니 미래의 메이트들이 저녁에 뷰잉이 잡혔다며 다시 그 동네로 나를 불렀다. 지금 이 글을 써내려가고 있는 집에 들어 오게 해준 랜드로더 마이클은 쿨하고 여유있어 보이는 아이리쉬 할아버지였고, 우리 무엇을 믿고 집을 보여주더니 여기 이제 너희 집이야. 라고해줬는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리얼리? 리얼리?를 연발하며우리 셋은 웃어댔고,
레이디와 함께 어서 가서 축배를 들라고 마이클은 웃으며 우리를 배웅해줬다.
집에서 나와 기쁜 마음으로 그 동네의 다른 파란 지붕 펍에 갔는데, 빨간펍보다 더 올드한 느낌이 나는 클래식한 펍이었지만 이 곳의 기네스 또한 엄청나다는 친구들의 말에 기대하고 마신 기네스. 단연 빨간펍 보다 스트롱한 기네스였다. 이 펍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이 동네에 오랫동안 살아온 현지인, 아이리시 할아버지들인것처럼 다른 곳에 한눈 팔지 않고 순수한 기네스맛만을 지켜온 고집스러운 맛이랄까.
첫 기네스와의 만남을 찐하게 시작해서인지 다른 곳에서는 이 진한 기네스 맛을 찾기가 힘들었다. 이후로 당연히 펍에 가면 기네스를 의례적으로 마셨다. 시끄러운 시티펍에서도, 젊은 이들이 가득한 클럽에서도, 기네스를 만들어내는기네스 팩토리에서도 기네스를 마셨다. 첫 시작을 순도 높은 기네스로 시작해서인지 종종 시티에 가서 마시는기네스를 물 탄 맛(?)이 느껴지기도 했다. 묵직하고 진해서부드럽게 넘어가는 맛보다 물을 타서 존재감없이 입안을 맴도는 맛은 맥주를 잘 모르는 나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은 약간 텁텁한 맛에 익숙해져서 조금 더 깔끔한 블론드 비어를 찾아대고 있다. 이제 곧 한국으로 떠날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저 빨간펍 이야기를 했더니 대뜸 진짜 기네스를 마셔보고싶다고 그 펍에 함께 가자고 했다.
아직 해가 환히 떠있는 7시, 펍에서 만난 우리는 나란히 셋이서 기네스를 시켜서 누가 봐도 불편한 작은 의자에 앉아 기네스를 마셨다. 우리에겐특별한 맛 보다도,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큰 기네스. 하지만마시고 마셔보다 보면 기네스를 따를 때 브라운에서 점점 블랙이 되는 것처럼 처음엔 그 매력이 모호하다가도 점점 깊고, 까만 기네스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미 기네스를 마셔보고 온 친구들은, 아일랜드에서 마시는기네스 맛을 절대 따라올 수 없다고 하던데, 한국에서 검정 색 기네스 캔을 마시면서 아일랜드 기네스가 그리워질 날이 분명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