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이야기가 없어

더블린라이프

by 아뱅

2017.7.12


어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아침 9시 반부터 1시 10분까지.

그리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지만, 꽤 말을 많이 하다가 온다.

영어말하기 배우러 왔으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선생님의 스타일이나 교재에 따라서 스피킹 주제가 굉장히 광범위한데, 이번 텀의 교재는 테마가 확실히 나눠져 있어서 거의 제너럴 퀘스천만 주고 받았던 지난 수업들과는 조금 달랐다.

첫번째 주에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해서 재밌었다. 내 관심사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듣고, 나보다 나이가 어리고, 많고, 살아온 환경이 다른 이들은 어떤 음악을 듣는지 궁금했거든.

난 늘 록 음악이나 클래식 음악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역시 유럽권 친구들이 오페라나 클래식에 관심이 많다.


19살 프렌치 칼리스터는 자기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가 있는데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나 한국인 피아니스트 좋아해.”

“뭐라구? 누군데??!”

“이..류마?”

“이루마??”

“예스!”


칼리스터는 눈썹 움직이면서, 장난스럽게 키득대는 전형적인 틴에이저인데 음악 취향은 폭넓고 고상하더라구. 신기했다, 이루마를 좋아하는 프렌치를 만나다니.



그 주의 마지막 금요일은, 각자 자기가 소개하고 싶은 뮤직비디오를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se3_image_3457270305.jpg?type=w966 밥말리 뮤직비디오를 틀어준 시모네


나는 일하다가 발견한 아주 화려한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록 밴드 OK GO를소개했다.

브라질에서 혼다를 다니다가 영어를 배우러 온 아르만도 아저씨는 브라질 음악을 소개했는데, 우리나라처럼 독재정권에 항의하는 메시지를 담은 노래라고 설명해줬다. 진지한내용과 목적에도 불구하고 역시 라틴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절로 흥겨운 리드미컬한 멜로디가 멋지더라.

17세 이탈리안 시모네는 자기가 훨~씬 태어나기도 전 뮤지션인 밥말리를 좋아한다며 밥 말리 노래를 들려줬고, 일본인 타케루는 일본의 전통 오케스트라 같은(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공연 영상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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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주일 내내 음악을 얘기했던 한 주가 지나고, 이번 주는 '경제'가 새로운 주제였다.

와, 첫 시간부터 각 나라의 경제 붐이 어떻게, 언제 일어났는지, 지금 상황은 어떤지, 정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야기해보는 시간이었는데 도저히 할 말이 없었다.


특히 어떤 시간에는 먼저 같은 나라에서 온 친구와 이야기를 해본 다음, 나라를 섞어서 토론하자고 티처가 제안을 했다. 우리반에 있는 한국인은 나 말고 21살의 어린 대학생친구. 내가 이 친구보다 나이가 많아도, 이 친구가 우리나라 유행을 더 잘 알아도 우리가 우리나라 경제 상황에 대해서 아는 게 많지 않았다.

“우리 큰일 났는데? 이따가 할말이 없겠어. 왜 한국 애들은 경제, 정치에 별로 관심이없지?”

“우리 맨날 좋은 대학교, 좋은 직장 가려고 공부만 해서 그런거라고 말해요, 저 친구들에게.”


진짜로 저렇게 이야기를 해줬다.

마침 교육에 대한 카테고리가 있어서, 대부분의 한국 젊은이들은 좋은 대학, 직장에 가느라 바빠서

별로 경제, 정치에 관심이 없다.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지.



그런데 유러피안 친구들은 17-8살인데도 정말 말을 잘하더라.

도시, 나라의 인구수부터 시작해서 비고용인의 수, 요즘 경제상황까지. 텍스를 줄이려고 많은 회사들이 다른 나라로 이전하고 있다, 새로 뽑힌 프랑스 대통령의 현재 평판까지.


"모두가 마크롱을 좋아하고 있어, 하지만 이제 대통령이 된 지 몇개월 밖에 안되서 조금 더 지켜보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새삼 궁금해졌다.

대한민국 학교 교육 시스템의 문제일까 아니면 사회 시스템의 문제일까.

사회상황을 읽고, 그 상황에 대한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까지 이들에게는 별 것 아닌 일들이지만

사회시간에 시험에 나올 인플레이션의 정의에 대해 배우고, 경제 지리 시간에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만 외웠던 한국인들에게 경제, 정치 흐름을 읽고, 내 의견을 내세우는 건 부끄럽고 자신감 떨어지는 일이 분명하다.



할 말 없는 이번주 스피킹 시간을 보내면서, 자기가 살고 있는 환경과 자기가 만들어가는 경제, 정치 상황은 돌아보지 못하고 스펙쌓기 하느라 책상에 머리만 묻고 있는 한국학생들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렇게라도 다른 나라, 다른세계의 친구들과 자기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간에 내가 있다는 현실에 감사했다.


IMG_8442.JPG 알랭 드 보통 책은 아니지만.....


그리고 갑자기 수년 전 읽었던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속 문구가 떠올랐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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