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으로 나오던 노래를 일시정지하다가
평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중
여느때처럼 잔뜩 신나는 음악으로 플레이리스트를 채워놓고
귀에 이어폰을 꾹 눌러 나만의 세계, 나만의 공간을 지켜가고 있었지.
그런데 한두정거장 정도 갔나?
갑자기 형광등 몇개가 깜빡깜빡거리면서 내부가 어두워지기 시작하는거야.
정전인가 고장인가
순간 꽤 옛날, 나라 전체를 슬픔으로 몰아넣었던 끔찍한 지하철 사고가 생각나기도 했어.
다음 정거장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기다렸다는듯이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풀게 해줄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어.
"ㅇㅇ 구간이 단전관계로 잠시 정차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순간,
그 지하철에는 숨소리도 안 날정도로 꽤 큰 덩치의 고요가 스-윽 지나갔는데
왜 난 그 순간이 웃겼지?
입술을 깨물고 미소를 지었어.
오늘 처음 봤지만 매일 아침 마주쳤을 지도 모르는 낯선 이의 숨결이 가까울정도로
오늘 아침에 쓴 내 샴푸 냄새를 들킬정도로
와이프와 카톡을 하고 있는 아저씨의 카톡창이 바로 내 눈앞에 있을 정도로
모두가 가깝고, 사람이 많았는데
아무도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조용한거야
아,
물론 한 20여초 만에
"카톡 카톡"
반갑지만 경박스런 소리로 그 정적이 깨지긴 했지만,
마치
눈치게임 하듯이
약속이라도 한듯이
순식간에 조용해진 이 공간, 이 대중 속에서
나는 이어폰으로 흘러 나오던 영국 밴드의 신나는 록 음악을 일시정지했어.
이어폰을 꽂고 내 공간, 내 세계를 만들어가다가
불현듯 고요해진 이 공간에 섞여 들어가고 싶었거든.
낯설지만
같은 상황,
같은공간,
같은 시간을 공유한 이들과 함께
약속하지 않았지만 약속한듯이
같이 침묵을 지키면 덜 외로울거 같았거든
2015.11.16
커버사진(c)Daniel Roizer / www.roiz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