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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뱅 Jul 22. 2024

영감의 원천

꽃집 사장 3개월 차 소감


매주 글쓰기 쉬운 일이 아니다.

4월 16일 오픈을 했으니 이제 딱 3개월이 되었다.

그동안의 근황은 장마가 시작됨과 동시에 문의와 주문이 뚝 끊겼다.

다들 6-8월은 꽃집의 비수기라고 하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그리고 시장에 가보면 나 말고는 비수기가 아닌 것 같다. 

다른 사장님들은 꽃을 많이 사더라고..

인스타에서도 인기 많은 꽃집은 주말 예약 마감됐다고 하는데

나는 지난 토요일에 꽃 주문은 없었고, 화분만 하나 팔렸다. 허허 이래도 괜찮은가.


그래도 생각보다 멘탈은 괜찮다.

나같아도 이렇게 비가 억수 같이 내리는 날 꽃을 사러 올 것 같지 않거든

비어 있는 시간을 어떻게 하면 알차게 쓸지 고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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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에서 가까운 곳에 미술관이 있어 평일 낮,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는 오후에 방문했다.

큰 전시실을 통 틀어서 나처럼 혼자 온 여자 1명, 커플 1팀 밖에 없어서 정말 전체 대관한 것처럼

쾌적한 관람을 하는 호사를 누렸다. 최고.


오랜만에 전시를 보고 와서 느낀 건 

가만히 있으면 아무런 아웃풋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사실 직업적 글쓰기보다 꽃은 더 많은 창의력을 요하는 기분이 든다.

꽃을 3-4년 정도 배우고 창업했지만 누군가를 가르칠만한 실력도 분명 아니다.

하지만 꽃을 주문하는 손님, 인스타 반응이 좋은 건 내가 만든 꽃이 예쁘다는 이야기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오로지 직감과 안목으로만 꽃을 만들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꽃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전에 일했던 꽃집에서는 꽃다발 만드는 나름의 공식이 있었거든.

아마 여러 사람이 일하는 곳이니 누구나 만들어도 그 꽃집만의 스타일을 내려면 공식이 필요할 것 같다.

아랫부분에 꽃이 몇송이가 들어가고, 윗부분에는 어떤 게 들어가고 이런 식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물통만 닦다가 퇴사해서 어깨 너머로 본 게 전부라 공식을 알 수는 없었다.


여하튼 나의 직감과 안목으로, 내가 보기에 예쁜 꽃을 만들고 있다.

이 꽃다발에는 이 포장과 리본이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하고 선택

반응이 다 좋다.

그렇다면 내 직감과 안목이 좋다는 이야기인데(삼단논법 맞죠?)


이번에 오랜만에 전시를 보고 와서 느낀 건

내 감과 센스는 모두 지금까지 내가 체득한 아름다운 것들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미술관에 가는 걸 좋아해오고 있다(현재완료진행형).

특히 유럽에서 미술관을 다닐 때마다 정말 즐거웠다.

새로운 도시에 가면 무조건 미술관에 갔거든.

고흐의 도시 아를에서 반고흐 파운데이션,

남프랑스의 휴양지 니스에서는 마티스 미술관(마티스는 니스에서 말년을 보냈고, 살아생전 이 미술관 인테리어에도 관여했다),

스페인 말라가에서 현대미술관(피카소가 태어난 도시)


작은 도시에서도 미술관에 꼭 갔고,

런던에 살았을 당시 돈이 없었는데 모든 미술관이 무료라 참 좋았다.

테이트 모던은 셀 수 없이 자주 갔고,

당시 지내던 숙소에서 걸어갈 수 있던 테이트 브리튼은 돈은 없는데 어딘가 가고 싶으면 갔던 곳.

테이트 브리튼에서 평소 좋아했던 데이비드 호크니의, 심지어 가장 좋아했던 <더 큰 첨벙>을 우연히 마주했을 때의 감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를 반고흐 미술관에서 기념품점 천장이 유리였는데 쏟아지는 햇살이 두꺼운 도록과 책에 스며드는 아름다운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지금까지 봐왔던 아름다운 미술품과 영화, 풍경, 내가 읽고 소화해낸 모든 콘텐츠가 차곡차곡 쌓여있다가

지금에서야 새로운 형태로 표출되는 기분이랄까.

거창하게 표현했지만 대학에서 전문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누구나 다니는 학원에서 꽃을 배워온 내가,

걱정 많은 내가,

선뜻 나의 결과물을 선보이는 직업을 과감히 선택한 것은

내 안목과 감이 좋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해보니 나의 직관을 좋아해주는 분들이 많다.


색감이 너무 예뻐요.

센스가 좋으시다.

가게도 깔끔하고 귀엽다.


꽃도 손을 통해 나오는 거라 만든 사람의 스타일이 오롯이 반영된다.

꽃 배울 때 선생님도 이야기 해줬지만

난 단정하지만 평범하지는 않은 걸 좋아한다고.

수업 같이 듣는 친구들은 선택하지 않는, 선생님이 제안하는 과감한 시도를 선뜻 도전했고

그럼에도 꽃 높낮이는 드라마틱하지 않은 정돈된 스타일을 추구, 아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고 있었다.

이때는 초기라 추구할래야 할 수가 없었음.


지금의 추구미도 똑같다.

단정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것.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은 것.

부담스럽지 않은데 뻔하지 않은 것.


글을 쓸 때는 특히 잡지에 글을 쓸 때는 피드백이 전무해서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는데,

꽃을 한지 고작 3개월 밖에 안됐지만

주문해주신 꽃을 들고 맞이하는 손님들의 피드백을 들을 때면

성취감이 대단하다.

실시간으로 돌아오는 생생한 반응이 즐겁다.

글을 쓰다 꽃을 하게 되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 것을 인정받는 가치를 알게 되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3개월차,

비수기 꽃집의 소감.

꽃 더 많이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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