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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뱅 May 19. 2024

4월, 이달의 스토리 플라워

찰나의 봄


4월부터 시작하려고 했던 '이달의 스토리 플라워'를 개시도 못한 채 5월 시즌이 됐다.

어느덧 5월 20일, 5월의 스토리 플라워를 시작할 수 있을까 오늘도 의문이어서 개시하지 못한 4월의 이야기라도 먼저 풀어놓기로 했다.


스텔링플라워에서는 매달 새로운 주제에서 영감을 받은 꽃과 글을 소개하는 플라워 콘텐츠를 발행할 예정이다. 잡지를 만들었던 사람답게 문화, 예술, 트렌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이야기를 기획하고, 눈에 보이는 콘텐츠로 만드는 일은 매우 익숙하다. 여기에 꽃이 추가돼었을 뿐. 나에게 이 정도의 스킬이 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으나 이 콘텐츠는 아주 오래전부터 나의 꽃 브랜드를 시작하면 하려고 했던 아주 큰 축이자 기획이기에 실현해보기로 했다.

글은 편지 형식(이름은 '핑크레터'로 지었다. 왜냐면 핑크색 종이에 인쇄할 거기 때문에!)으로 영감을 받은 다양한 콘텐츠나 문장도 함께 소개할 예정.





첫번째 편지

4월의 주제는 '찰나의 봄'




저는 '잠깐'이라는 단어보다 '찰나'라는 단어가 더 좋아요. 뭔가 더 신비로운 느낌이 들지 않나요? 저는 오래 글을 써서인지 문장이나 단어, 문맥 등을 조금 더 자세히 보는 나름의 '직업병'이 있어요. 자주 쓰는 단어나 좋아하는 단어도 바로 말할 수 있고요. '찰나'라는 단어를 (생전 처음) 검색해봤더니 불교에서 나온 단어더라고요. '불교에서 시간의 최소단위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해요.


해가 바뀔수록 '봄'에게는 '찰나'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분명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옷을 여미고 종종 걸음으로 집을 나섰던 것 같은데, 점심 먹을 때쯤 되니 따가운 햇살에 외투를 벗게 되네요. 분명 어제는 바람 끝이 차가웠는데 오늘 얼굴을 스치는 바람은 포곤한 게 느껴져요. 앙상한 가지에 귀여운 새싹이 돋아나고, 우리집 창문에서 보이는 목련 나무는 꽃봉우리가 점점 통통해지고 있어요. 봄이 짧게 느껴지면서 매번 봄 옷은 사지 말자 다짐하고 있어요. 봄 자켓을 사서 지난해에 몇 번이나 입었을까? 또 한 두번 입고 더워질테니 조금만 참자.. 하다가도 봄인데! 새로운 옷을 입고 싶다는 마음으로 잠깐 입을 옷을 빠르게 사기 위해 매일 쇼핑몰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찰나의 좋았던 순간은 오래 기억되는 때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썸 타던 이와의 첫 데이트나 몰입감이 엄청난 영화는 정말 짧게 느껴져요. 한아름 품에 안긴 커다란 꽃다발의 아름다움도 찰나. 뿌리 없이 댕강 짤린 여러분이 받고, 제가 만드는 절화는 아무리 관리를 열심히 해줘도 수명이 1-2주를 넘기기 힘들 만큼 짧죠. 그래도 그 찰나의 순간은 기분이 좋잖아요. 매일 똑같은 일상에서 잠깐의 기분 좋음을 위해 우리는 맛집을 찾아가고, 좋아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나를 위해 너를 위해 꽃이나 식물을 사서 집에 들이거나 선물하기도 합니다. 찰나는 찰나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요.


다시 봄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이 짧은 봄을 어떻게 보낼 계획을 하고 계신가요? 나만 알고 있는 벚꽃 맛집에 소중한 사람을 데려가거나 전국 각지에서 만발한 철쭉, 개나리, 튤립을 보러 가는 여행도 좋을 것 같아요. 저는 굳이 어딘가 가기보다 한가롭게 카페에서 봄볕을 즐기는 시간도 좋아합니다. 요즘은 지구 온난화가 아니라 지구 보일링 시대라고 한대요. 따뜻을 넘어서 끓고 있을 정도라고 하니 찰나의 봄이 더 짧아질 지도 모르겠어요. 짧은 봄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즐겨봅시다.


오늘 소개할 문장은 김애란 작가님의 <잊기 좋은 이름>에 나오는 구절이에요. 나는 봄을 어떻게 느끼나요? 누군가는 꽃 피는 계절, 시작하는 계절, 저처럼 짧은 계절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봄이 깎인다'는 표현은 이 책과 문장에서 처음 경험했어요. 김애란 작가님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중 한 분이라 첫 레터에서 꼭 소개하고 싶었는데, 딱 맞는 문장을 찾았을 때의 희열. 앞으로 핑크레터를 통해 여러분 마음에 들어온 문장을 찾길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언젠가 두보가 쓴 저 <곡강>을 두고 학생들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단순히 '꽃잎이 떨어진다'라고 생각하는 삶과 그렇게 떨어지는 꽃잎 때문에 '봄이 깎인다'라고 이해하는 삶은 다르다고. 문학은 우리에게 하나의 봄이 아닌 여러 개의 봄을 만들어주며 이 세계를 더 풍요롭게 감각할 수 있게 해준다고. 종이를 동그랗게 구기면 주름과 부피가 생기듯 허파꽈리처럼 나와 이 세계의 접촉면이 늘어난다고 했다.

-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


찰나의 봄이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라며,

다음달에 새로운 이야기와 문장으로 만나요.


스텔링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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