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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뱅 Feb 20. 2016

밤산책이 들려준 무서운 이야기

늦은 밤 공원을 산책하다가

한 여름을 목전에 두고 생긴 공원의 처음은 한적했다.


늘 공사중이던 곳이 하루아침에 공사장 장비들이 치워지고, 풀이 깔리더니

뻥 뚫린 고속도로 같은 시원한 길이 생겨났다.

자갈과 꽃이 심어졌고, 작은 시냇가에는 물이 들어왔다.

밤에는 깜깜하던 공원에 하나 둘 가로등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아침 출근할 때는 없었던 것들이, 저녁 퇴근할 쯤에는 생겨있기도 했다.

그렇게 도심 속 공원이 만들어졌다.



처음엔 동네사람들만 알고, 즐기는 곳에 불과했다.

나도 매일 저녁, 저녁을 먹고 배부른 배를 소화시키려 그곳을 찾았고

시원한 바람, 서울에서는 오랜만에 맡아보는 풀 냄새에 낯설었지만

곧 줄곧 그리워하던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뜨거운 여름이 찾아오자

많은 사람들이 그 곳을 찾았다.

매일 밤, 젊은 청춘들이 모여앉아 기타를 치기도 하고

쭉 늘어진 벤치에 앉아 병맥주 나팔을 불기도 하고

그 주변에 사는 동네 개들의 사교장이 되고도 하고

아이, 어른, 할머니, 할아버지 할 것없이 모두가 찾고 좋아하는 장소가 됐다.

원래도 젊은이들이 많이 드나드는 동네였지만,

공원이 생기고 나니 초록색 잔디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잔디 위에 다닥다닥 붙어앉은 청춘들은

이토록 풀을 그리워하면서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왔나 신기하기도 했다.


매일 밤이 축제였고

매일 밤이 뜨거웠다.



그리고 반 팔을 입은 팔에 소름이 오도도 돋아나게 만드는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공원을 떠나갔다.

조금 따뜻한 밤에는 아직까지 자기가 가장 뜨거운 청춘인냥 

벤치에 앉아 호기롭게 맥주를 마시던 이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떠나가니 금새 날이 추워졌다.


나도, 뜨거웠던 여름날은 매일 찾던 공원에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발길을 끊다가 오랜만에 공원을 찾았다.

그 여름 곳곳에 넘쳐나던 사람들이 추위에 쫓겨 다 떠나고 텅 빈 공원.
사람이 떠난 그곳에는

가정집 어항에서 자라던 금붕어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유유히 헤엄치던 시냇물이 사라지고 

길을 비추는 가로등과 나뭇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무만 그대로다.


코끝이 시렵지만 이 고요한 곳을 걷자니 

낯선 세계에 온 기분이다.

온종일 직장에서,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사람들 속에 파묻혀 살다 

조용한 곳에 와서 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마음이 차분해지는 동시에 스산해진다.

마음에도 찬바람이 고요하게 부는 느낌.

여느 책에 나오는 '고요의 소리'가 들린다는 게 이런건가 싶기도 했다.



한 여름 욕심가득한 듯 잔뜩 잎을 머금었던 나무가 잎을 놓아주자

그 뒤에 가려져 있었던 도시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나무는 그 뜨거운 도심 불빛을 가려내느라 얼마나 눈이 부셨을까.


자연이든, 그곳에 있던 사람이든 변하지 않는건 없는데


나는 더 나은 모습으로 변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멈춰있을까봐 무섭고
나무가 잎이 다 떨어져서 앙상하고 불쌍한 모습이 된 것처럼 나도 저렇게 처량하게 늙어갈까봐 무섭고
이 컴컴하고, 휑한 공원에 다시 사람이 찾아오지 못할 것 같아 무섭기도 하고

쓸쓸해진 공원처럼 나도 계속 이렇게 고독할까봐 무섭고



이 모든 것들이 동시에 진행될 것같아 무서운

 겨울밤 산책길

공원 산책을 하면서 무서움을 느낄 줄 몰랐다.

공원이 들려준 무서운 이야기...으흐흐히흐히



2015.12.22


이미지 : 커버(c)Frantzou Fleurine/ 본문(c) 아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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