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담 다녀온 다음 날, 화요일. 2주에 한 번 약을 받으러 병원을 다닌다. 심리 상담을 시작하면서 할 말은 중간에 한 번 털어놓고 와서 상담 시간은 줄었다. 병원에서는 원래 상담 시간보다는, 약 처방이 우선이라 20분 넘게 해주는 곳이 잘 없다고 들었는데, 운이 좋게 좋은 병원을 만나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는 선생님을 만났다. 그래도 어딘가 모르게 선생님의 진료시간을 뺏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는데 다행이다.
"제가 욕심 많은 제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부끄럽고, 뭔가 쿨하고 싶은지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싫어요. "
그러자 선생님께서
"오히려 쿨한 사람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 내가 이런 모습도 있지.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요? "
아차 싶었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은
쿨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알아서 이뤄내고, 퓨어하고 아주 깨끗한 사람.
생얼이 깨끗하고 예뻐서, 화장으로 가리지 않아도 되는 사람.
내가 피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 엄마는 그 정도는 화장으로 가려진다고 말씀하셨다.
그럼 나는 "화장으로 가려져 피부 좋아 보이는 거 말고, 원래 깨끗한 사람이고 싶어! "
오늘 면담하면서 문득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려져 좋은 피부 말고, 원래부터 깨끗한 피부를 가진 사람
내 속을 파고 파도, 거짓말하지 않고 깨끗해서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
관심받는 것에 관심이 없고, 그냥 본투비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
욕심을 부리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성취가 따라오는 사람
피부과를 다니지 않고, 몸매 관리를 하지 않고 잘 먹어도 피부가 좋고 몸매가 좋은 사람
이런 모든 것에 쿨한 사람
그런데 의사 선생님 말대로 진짜 쿨한 사람은 '이런 모습도 있을 수 있지,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욕심은 있지만 다른 긍정적인 부분도 있겠지! 내가 여기에선 욕심을 부렸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배려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에 가까울 것이다.
내가 최근 많은 사람들 앞에 서기 전, 내 일하는 공간에 들어가기 전, 사람들과 대화하기 전, 도움을 요청하기 전 그렇게나 식은땀이 많이 나고, 머리가 후끈후끈 해지는 이유를 잘 생각해 보면 결은 좀 다르지만 관통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 앞에 서서 말하는 내 모습을 어떻게 볼까. 내 얼굴, 피부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내가 가르치는 스타일, 수업 방식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나를 욕하고 있을 것 같은데.
- 내가 자꾸 귀찮게 도움을 요청하면, 일에 방해되지 않을까. 욕심부릴 건 부려놓고 자꾸 물어보네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그런데 이 모든 복잡한 생각들,, 내가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오늘 나이 또래 동료들과 회식이 있었다. 아직은 새로운 옮긴 곳에서 어색하고, 내가 남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하게 됐다. 나는 나를 잘 모르는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어쩌면 일 년 뒤에 안 볼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마음이 안절부절못했던 것 같다. 어쩌면 오늘 그 자리에 간 것부터가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한 거였다. 나중에 껴주지 않을까 봐. 사실 오늘 약속은 며칠 전에 말한 거라 가지 않았어도 되는 거였는데..
뭐가 그렇게 두렵니. OO 아. 그 사람들이 날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데. 엄마가, 아빠가 내가 어렸을 때 바빠서 내가 수술을 해야만 내 관심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알잖아.. 너도 이해하잖아. 왜 자꾸 거부해. 네가 아프다고 하지 않아도, 항상 웃으면서 반겨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걸. 아빠는 항상 네 편이었어. 근데 왜 이렇게 여전히 잘 보이려고 애쓰는 거야. 그냥 예의만 지키면 돼. 인간으로서 할 도리만 하면서 내 일만 잘하면 돼. 그럼 그런 모습을 좋아해 주는 누군가, 한 명은 생길 거야. 안 생겨도 괜찮잖아.. 왜 이렇게 십몇 년 을 인간관계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지내.. 답답하게.. 안쓰럽게...
3. 다시 일요일이 돌아왔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잘 안 되는 (대상 없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는) 5일이 시작된다.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일이 많고, 신경 쓰면 쓸수록 할 일이 한가득이다. 그냥 하자.. 어차피 시간은 간다.. 요즘은 시간이 주는 힘을 믿게 된다. 내가 고통스러워하면서 시간이 빨리 가면 좋겠다고 원해도, 시간은 가고, 제발 가지 말아 줘라고 해도 시간은 간다. 그래서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 빨리 가는 건 아쉽지만, 힘든 시간도 가기 마련일 테니까. 사람들 앞에 서는 직업인데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요즘 따라 긴장되고 머리가 뜨거워질 정도로 덥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잘 지내는 걸 보면 내가 치유받는 느낌이다. 안도감이 들고, 어렸을 때 내가 하지 못했던 걸 하루하루 해내주는 아이들이 고맙다. 그래서 내가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나 보다. 그렇지만 내 건강도 중요하니까,, 그 중간점을 잘 찾아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