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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상담 일지] 5회 차

돌봄이 결핍되었던 시간

by 우주먼지

어제는 출근하는 게 너무 싫었다. 출근을 못할 것만 같았다. 일하는 것 자체는 괜찮고 오히려 좋다. 일이 있다는 게 좋다. 그런데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너무 가시방석 같고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아파트 단지를 두 바퀴 돌면서 생각했다. 어차피 시간은 갈 것이고 아무도 나를 그렇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되새겼다. (역시나 시간은 잘 가서) 일을 무사히 잘 마치고 상담을 갔다.


(선생님) 직장에서 사람들이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 것 같아요? 좋지 않게 볼 것 같은 건가요?

(나) 네.. 그럴 것 같아요.

(선생님) 그럼. 어떻게 봤으면 좋겠어요?

(나) 긍정적으로요. 아니면 아무 상관도 안 했으면 좋겠어요.... 안쓰럽게 봤으면 좋겠어요.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했으면 좋겠고요.

(선생님) OO마음에 그런 마음이 있다는 건 아직 채워지지 못해서 그렇다는 것일 수도 있거든요. 안쓰럽게 봤으면 좋겠고,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어떻게 보면 돌봄을 받고 싶다는 건데,, 혹시 돌봄을 받고 싶었던 적? 돌봄을 받지 못했던 적이 있나요?


선생님의 질문에 어렵게 생각해 낸 기억은, 내가 초등학교 가기 전 5-6살 때였다. 엄마가 직장을 다니기 위해 공부를 하시면서, 엄마와 떨어지는 경험을 했었던 것 같다. 엄마 껌딱지였던 기억이 나는 걸 봐서는 엄마랑 집에 같이 없는 시간이 많이 힘들었었겠지. 그런데, 그때 내가 중이염 수술을 하게 되면서, 엄마 아빠의 관심을 한 껏 받았던 생각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나는 콩순이 인형과 장난감 유모차를 끌고 엄마, 아빠랑 마트에 가서 원하는 과자를 유모차에 실컷 담았다. 그때 나는 빨간색 끈나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아마 수술이 결정되고 나서, 수술받기 전 주말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때 정말 행복했다. 30년이 넘는 시간 중에 제일 행복했던 기억이라고 해도 될 만큼, 아주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일하시는 것이 어린 나에게도 납득이 안되지는 않았기에 나는 그때의 기억이 돌봄을 받지 못했던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가 돈을 벌러 나가야 한다는 게 안쓰럽게 느껴지고, 괜히 내가 한 명 더 태어나 그런 짐을 준 것 같아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래서 이때의 엄마 부재 기억이 나에게 큰 영향을 주는지 잘 몰랐고, 지금도 확신은 없다.


다만, 상담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정말 너무 아파야지만 스스로에게 휴식 시간을 주고, 남들도 나를 그렇게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이때의 상황과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관심을 받고 싶었는데, 내가 중이염 수술을 앞두고 있으니 엄마, 아빠가 나랑 마트에 같이 가줄 정도로 관심을 받았던 것처럼 내가 수술할 정도로 아파야만 돌봄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지. 그런 이미지로 자리 잡아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결핍을 채우지 못하고 사람들의 시선이 다 부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 스스로에게도 아플 때까지 일을 시키면서 채찍질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8BD02D47-58FF-4454-9087-3574DB288D27_1_105_c.jpeg 돌봄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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