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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상담 일지] 4회 차

씁쓸한 것 같아요

by 우주먼지

(선생님) 불안함이 이전 보다 지금이 괜찮아진 건 가요?


(나) 저는 그걸 잘 모르겠어요. 분명히 피부나 외모에 대해 생각하는 건 나아졌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 좀 자유유로워 진 건 맞아요. 그런데, 제가 다시 상담을 받아야겠다 생각했던 1월 달에, 그 시기에는 한 1-2주를 정말 울기만 했어요. 그냥 계속 눈물이 나오고 막 진짜 미칠 것 같고 정말 하루종일 울었던 날도 있어요.

제가 느끼기에는 대상이 뭔가 바뀌었지 저의 이 불안한 감정 상태는 똑같은 느낌이에요. 옛날에는 외모 피부 때문이었다면, 지금은 관계 속에서 최근에는 미국 가는 그 문제였고 아니면 작년에 또 중간에는 학교에서 애들이랑 학부모랑 일이 있었고요. 그러니까 제 스스로가 이유를 찾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불안할 이유를 찾는 느낌이요.


(선생님) 힘들어하고 불안해하는 이유 그러니까 그 말은 '나는 힘들고 불안해야 돼'이 말이잖아. 그래서 예전에는 부모님에게서 이유를 찾았다면 지금은 남자친구 아니면 예전에는 학부모 이런 식으로.. 결론은 그 말은 OO 씨는 나는 힘들고 불안해해야 하는 거야. 그러니까 계속 그거를 충족시키는 어떤 어떤 이유를 계속 대면서 나는 계속 힘들고 불안해하고 이런다는 얘기인 거지


(나) 맞아요. 제가 평화로우면 안 될 것 같아요. 저는 솔직히 말하면 작년에 업무가 많은 곳에 배정되었을 때도, 내심 속으로는 안도했어요. 어차피 시간 많으면 생각만 많아지는데 일이나 하자 이런 마음이었어요. 그리고 잘 때 저는 피곤한 채로 바로 잠들었으면 좋겠는데, 뭔가 너무 말똥말똥하면 하루를 열심히 살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 그게 더 견디기 어려워요. 새벽에 깨있으면 생각만 많아지고요. 그게 방학 때에도 계속 공부하는 것 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들은 방학 때 놀지 이런 인식이 싫기도 하고, 그냥 저를 편하게 두지 않는 거죠.


(선생님) 하루 정도는 설렁설렁 하루를 보낼 수도 있는데, 나는 힘들어야 돼 라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있는 느낌이네요. 힘들어야 돼. 그래서 아파도 되고.


(나) 아파야 된다는 말에서 갑자기 생각난 건데, 저는 아프다고 해야 남들이 관심을 가져준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아기 같은 마음일 수도 있는데 아프다고 해야 관심을 가져주잖아요. 어렸을 때 제가 중이염 수술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티비 볼륨을 100으로 해놨는데도 안 들리다고 앞으로 가서 티비를 봐서 부모님이 귀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셨어요. 그때쯤인데 수술 날짜를 잡고 돌아오는 길이었던 것 같은데, 엄마랑 아빠랑 마트에서 장난감 유모차를 끌고 장을 봤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 제가 엄청 행복했던 것 같아요. 엄마 아빠의 관심을 받으면서 마트에 같이 가는 게..


(선생님) 아마 아팠으니까, 사달라다는 거 다 사주셨겠죠? 그 기억이 신나는 좋은 기억일 수도 있는데 또 한편으로는 내가 아프지 않으면 이렇게 관심을 받거나 내가 사달라는 거 마음껏 갖고, 사랑과 관심을 받고, 아프지 않으면 원하는 만큼 되지 않는다 이런 얘기잖아요. 그래서 나는 계속 힘들어야 관심을 받고, 고생스럽고 피곤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이 마음이 들었다면 평상시에 삶에 대한 느낌이 얼마나 좀 팍팍했을까 싶네요.


힘들어야 돼. 시간을 이렇게 편하게 보내면 안 돼. 이런 마음이 계속 있다는 거잖아요? 그냥 좀 쉬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고 불안하고.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는 게 마음이 아프네요. 늘 긴장되어 있고 늘 불안해하고 늘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마음으로 아이가 있었다는 건.. 마음이 짠하네요.


(나) 그래서 제가 마르고 싶었던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연약해 보여야 보호받을 수 있고, 케어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정말 부끄러운 생각이지만, 일할 때도 저는 그래요. 저한테 과중 업무를 줘도 저는 말하는 것보단 그래 한번 해보고, 내가 과로로 쓰러져야 학교에서도 나를 알아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해요. 그래놓고 배려하지 않아 줬다고 학교를 원망하기도 하고요. 사실 학교에서는 제가 힘든지 할만한지 모를 텐데요.


(선생님) 그 말은 OO 씨가 스스로 안 힘든 상황을 만드는 노력을 안 하는 거잖아요. 나한테 힘든 일이니 일을 줄이거나 안 하는 방안을 택하거나 그런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해야 하는 건데 OO 씨는 그걸 안 하고 있다는 거지. 그냥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서 차라리 그냥 쓰러지고 아파서 사람들이 그걸 알아주길 바라고 있네.


(나) 그런 맥락에서, 저는 미국 가는 것도 싫었던 것 같아요. 미국 가면 아무 일 못할 텐데 제가 힘들다고 말할 핑계가 사라지잖아요. 분명 외롭고, 일을 하지 않아도 정신적으로 힘들 것 같은데 일도 안 하면서 힘들다고 말하기엔 양심도 없어 보이고. 저도 이렇게 아프다는 말로 사람에게 관심을 받는 것이 얼마나 아이 같고 유치한 방법인지 머리로는 알겠어요. 제가 그렇다고 해서 나 관심을 받고 싶으니까, 지금 아프다고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거짓말하는 건 싫으니까 저를 극한으로 몰아서, 자연스럽게 아프게 되고, 자연스럽게 관심을 받는 상황을 만드는 것 같아요. 제가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아요.. 아프지 않고, 온전하게 잘 지내는데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나요? 사랑을 받을 수 있나요..?


(선생님) 머리로 의도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얘기를 들으면 OO 씨의 엄청난 갈망이 느껴져요. 가만히 그냥 편안하게 있으면 나 절대 사랑받을 수 없어라는 믿음이 있고, 그런 사랑에 대한 갈망을 위해서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 (아팠을 때 케어받았던 경험을 토대로) 느꼈던 방법으로 애정을 갈구하는 거죠. 그러니까 내 안에 엄청난 절실한 사랑받기 위한 절실함, 애씀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나를 극한으로 자꾸 몰아가는 느낌이라 마음이 아파요. OO 씨는 어떤가요?


(나) 저는 마음이 아프진 않아요. 그냥 이렇게 사는 게 버거운 것 같고 지겹기도 해요. 그렇다고 제가 아픈 걸 직접적으로 말하는 걸 원하진 않아요. 차라리 나 아파! 이렇게 말하면 간단할 텐데 그건 아니고 저절로 아파져서 상황이 그렇게 놓이는 걸 원하는 것 같아요. 복잡하죠.. 그러려면 아주 바쁘게 힘들게 일하고 운동하고 공부해야 피곤해질 거고, 그래야 자연스럽게 아플 수 있다고 생각하나 봐요.


(선생님)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중이염처럼 소리를 100으로 하고 소리를 못 들을 만큼의 큰 수술을 해야 나는 관심을 받을 수 있어. 적당히 귀 아프고 적당히 힘들다고 하는 건 안 통해. 그 정도로는 상대방이 나를 들여다보지 않아. 나한테 관심을 별로 안 줘. 이런 거지.


(나)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실제로 직장에서는 적당히 말하면 제 말을 들어주지 않아요..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알아요ㅠ이 말을 하고 싶었는데 못했다.)


(선생님)

사람들이 적당한 선에서는 내 얘기를 들을 거라고 생각 안 하는 그런 마음이 느껴져요. 쓸쓸하네요. 얼마나 힘들었을까. 진짜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다면 적당히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와닿지 않았을까. 지금 어때요 마음이?


(나) 씁쓸한 것 같아요.


(선생님) 그러네요. 딱 그 마음이겠네요. 얼마나 나를 힘들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를 많이 했을까, 그런 마음도 들어서 더 씁쓸한 것 같아요. 방학 때도 똑같이 새벽 6시에 일어난다고 헀었나요? 나를 좀 늘어지게 게을러지게 여유 있게 빈둥빈둥하는 상황을 허용하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 맞아요. 차라리 저는 개학을 기다렸어요..


(선생님) 저는 속상한데요. OO 씨는 어때요? 속상하진 않죠?(웃음)


(나) 네. 저는 속상하진 않아요. 딱 씁쓸 거기까지인 것 같아요.


(선생님) 그래도 씁쓸하다는 생각이 반갑네요. 이 전에 OO 씨가 스스로한테 안 쓰럽다는 생각도 안 든다, 속상하지도 않다 그렇게 얘기를 해왔잖아요. 본인의 상태에 대해서 아직 뭐라 그럴까, 익숙한 것 같아요. 이렇게 살아온 게 익숙하고, 또 그렇게 살아온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속상하고 안타깝다는 마음보다는 그냥 아직은 '이 방법이 내 방법이야' 하는 마음인 것 같아요. 안타깝거나 속상하거나 이런 마음으로 보는 건 좀 떨어져서 본다는 거거든요. 아직은 이 방법이, 상황이 내 것으로 인식되는 것 같아. 그래도 씁쓸하다는 감정을 느꼈다는 건 그래도 내가 힘든 거, 이렇게 고생한 것, 편안함을 나한테 허용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서 조금은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반갑네요. 아마 그게 조금 더 자꾸 객관적으로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게 됐을 때 OO 씨가 여러 마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다리게 되는 것 같아요. 계속 우리 기다려보면서 OO 씨 마음을 살펴봅시다.


AB12F7D0-81BB-4EF6-B718-F145EFE4A5DF.jpeg 전쟁을 치르고 있을 모든 사람, 나한테도 친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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