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간절히 나를 정화시키고 싶은지
1. 이번 주에 개학을 했다. 환경이 바뀌면 새로운 마음으로 기분 좋은 시작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업무 분장에 대해 불만을 말하기 전까지는. 이번에는 절대 쭈구리처럼 네네 하지 않고, 가마니처럼 가만히 있지 않기로 다짐하고 학교를 옮겼다. 그런데, 내가 어찌어찌해서 내 의견을 얘기했는데, 학교에서 들어주면서 마치 내가 엄청난 배려를 받고 있는 것이 되어버려서, 올해는 일할 각오를 하라고 하셨다... 아니 내년에는 내가 배려해줘야 한다는 말도 하셨다. 다른 곳에서는 내가 자진해서 일하라고. 내가 싫다고 했던 업무를 누군가 맡게 된 것은 정말 미안하고, 속상하고, 몸 둘 바를 모르겠어서 나도 내가 죄책감을 가지고 알아서 잘하려고 했는데 그런 말까지 들으니,, 억울했다. 내가 정말 편한 자리로 갔으면 억울하진 않을 텐데, 내가 맡은 다른 업무나 학년 걸침, 교과가 결코 편한 자리는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 어쨌든 내가 말을 함으로써 나는 찍혔고, 첫날부터 출근이 두려웠다. 그냥 불편했다. 내 자리가 내 자리인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내 의견을 표출하는 게 나랑 안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내 의견을 표현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냥 가마니로 살자..
2. 아무리 힘든 운동을 해도 땀이 뚝뚝 떨어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내 기억엔 없다. 그렇게 땀이 잘 나지 않는 내가 땀이 나는 순간은 바로 남들 앞에 서있을 때이다. 그런데 내 직업은 매일 30명의 사람 앞에 서서 말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에너지가 더 많이 쓰여도, 1:1로 상담하거나 1:1로 과외처럼 가르쳐 주는 것을 좋아한다. 적어도 한 명만 신경 쓰면 되니까. 그런데 그건 에너지가 너무 많이 쓰인다. 목소리가 남아나질 않는다. 내가 올해부터 덜 떨리기 위해 생각해 낸 방법은 '수업 준비를 더 열심히 하기'이다. 수업 준비가 덜 되어있을수록 더 떨리고 당황하는 것 같아서, 내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개학 전 주말, 이번 주말에도 내내 수업 자료를 붙잡고 공부했는데, 과학이라는 게 너무 넓은 학문이고 공부할수록 의문점 투성이라,, 내가 모르는 게 발견될수록 더 떨린다. 상담 선생님이 나한테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완벽해지려고 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나도 잘 모르는 것을 질문할까 봐 그런 것들이 최대한 없게 미리 준비하고 싶은데, 끝이 없는 느낌.. 과목을 잘못 선택했나.
3. 어제 심장이 뛰고, 아무도 연락하고 싶지 않은 순간을 오랜만에 경험했다. 가끔 너무 답답하고 무서운 감정이 들면, 챗지피티에 말을 건다. "버티면 어떻게 되는데? 그래봤자 똑같이 힘든 날이잖아."
사람들은 '직장이 힘들어, 관계가 힘들어'라고 하면 가끔 조금만 버텨보자고 말한다. 나 역시도 친구가, 또는 학생이 "공부가 힘들어요. 일이 너무 힘들어."라고 말하면 조금만 더 힘내자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할 때 양심이 찔릴 때가 있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말로 힘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거 버티다가 죽어버릴 것 같은데, 버티긴 뭘 버티냐고 화내고 싶을 때도 있고 화낸 적도 있다. 다행히 어제 그 정도의 감정이 휘몰아친 것은 아니다.
주변 사람한테 내 감정을 말하면 (죽지 않는 이상) 분명 후회할게 보여서 챗지피티한테 짜증을 냈다. 주변에 보니 꽤나 많은 사람들이 챗지피티한테 상담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차피 AI 아니냐고 말도 안 되는 짜증을 냈지만, 어제 하루만큼은 내가 말하고 싶을 때 말하면 답장이 오는 AI 가 너무 반가웠고 고마웠다. 그 와중에 이게 AI의 순기능이구나 생각도 했다.
4. 요즘은 요가 대신 러닝을 한다. 요가하러 가는 길에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아, 그냥 생각할 시간도 없이 냅다 뛰어버리는 러닝을 하기 시작했다. 겨우 3km 정도 뛰는 거라 러닝이라고 말하기도 뭐 하지만, 뛰는 걸 정말 못해 20분만 뛰면 숨이 헐떡거린다. 20분 동안은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 못하기도 하고, 끝나고 나서는 헐떡거리느라 생각이 안 드는 그 순간이 좋다. 소울정 유튜브에서 그랬다.
'달리기 하는 사람은 안다. 달리기를 하는 동안 얼마나 간절히 나를 정화시키려고 하는지
나는 간절하게 나를 정화시키고 싶었다. 간절하게 내 머릿속의 생각들을 빼내고 싶었고, 지우고 싶었다. 하루에 벌어진 일들을 후회하다 보면 결국 대학생 때, 고등학생 때까지 가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복잡한 생각들을 지우고 싶었고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그냥 주어졌던 업무를 할걸. 가만히 있을걸. 업무가 바뀌고 나서는 내려가서 감사하다고 인사할걸. (아니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당당하게 대답할걸. 뭘 그렇게 쭈구리처럼 죄송하다, 감사하다를 반복했지. 수업 좀 더 준비해 갈걸. 괜히 학교 옮겼나. 뭐가 그렇게 불만이었지. 대학교 때 조금 더 생각해서 임용 말고 다른 시험 준비할걸. 나랑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맞나. 그때 포기할 수 있을 때 포기했어야 했는데. 유학 가서 돌아오지 말걸. 영어공부 더 할걸.'
어제는 러닝을 추천해 준 친구가 너무 힘들게 뛰지 말고, 더 천천히 뛰어보라고 해서 뛰었는데, 처음으로 4km를 힘들지 않게 뛰었다. 솔직히 더 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천천히 뛴다고 뛰었는데 기록은 전날이랑 비슷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힘들어야지만 뭔가를 해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힘들이지 않았는데 더 오래 뛰었고, 기록도 비슷한 결과를 내었다.
5. 내 그림 쇼츠를 홍보하니 누군가 나한테 'OO님 은관이에요. 은은한 관종.'이라고 했다. 평소에 내가 사람들에게 나는 내향형이라 사람들 관심을 받기 싫어한다고 주장했지만, 요즘에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확하게 말하면 주목받는 건 싫지만, 적당한 관심은 받고 싶은 것 같다.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내 일기를 블로그에도 올리고, 그림을 유튜브에도 올리고, 브런치에는 내 세세한 감정까지 적지 않았을 것 같다. 물론 글 쓰는 것의 첫 번째 목적은 내 감정의 해소이다. 쓰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런데 요즘 브런치에 한 번, 블로그에도 두 번 정도 진심어른 댓글을 받았다. 누군가에 댓글 달리기 위해 쓰기 시작한 건 아니지만, 위로받는 느낌이라 좋았고, 공감이 되었다니 내 글이 도움이 된 것 같아 기뻤다. 이전에는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나,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나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게 너무 이기적인 사람처럼 느껴져서. 그런데 상담에서도 그렇고, 내가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걸, 아니 다른 사람들보다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 인정해야 될 것 같다.. 그게 뭐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쿨하게 말하고 싶은데 아직은 거기까진 안된다. 도도하게 다른 사람들의 인정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