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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상담 일지] 4회 차 상담을 기다리며

그럼요. 그런 상황이 오면 하는 게 맞는 겁니다. 그게 학교를 위해서라도

by 우주먼지
아프지 말자. 몸과 마음 모두
















1. 월요일 상담 후, 화요일에 병원에 약을 받을 겸 상담을 다녀왔다. 심리 상담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이야기한다면, 병원 상담은 최근 1-2 주 동안 겪었던 불안했던 상황, 그때 내가 어떻게 불안했는지, 왜 불안했는지 그때의 상황을 듣고 처방을 내려주는 방법으로 상담이 진행된다. 병원에서 상담은 보통 10분도 안 넘는 경우가 많다는데, 나는 운이 좋게도 의사 선생님이 내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면 이야기를 길게도 들어주시고 급하게 내보내려고 하지도 않으신다. 지난주에 학교에서 내가 업무 분장을 하며 일이 있었기 때문에, 병원에 가서 약 처방이 필요했다. 내가 업무분장 하던 날 교감선생님과의 일이 있으면서 눈물이 나고 불안해지면서 필요시 약을 먹었었는데, 그 약은 원래 운전하기 전에 먹으면 안 되는 약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때 먹지 않으면 학교에서 남은 시간 근무가 어려울 것 같아 그냥 먹고 정신 바짝 차리고 가야지 하면서 퇴근을 했었다. 집 가면서 졸리 틈도 없이 이전 학교에서 친했던 샘에게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서 펑펑 울어서 약 먹으면 졸릴 수 있다는 위험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고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 불안하셨는지, "원래는 오늘 약을 증량하는 것을 이야기 나눠보려고 했어요. 워낙 약 먹는 것에 두려움이 있으시니까 그동안은 약을 늘리지 않고 있었는데, 저녁에 먹는 양은 정말 미비하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아무래도 늘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드는군요. " 약을 무조건 적으로 늘리려고 하는 선생님이면 내가 신뢰를 못하겠지만, 몇 개월동안 내가 임의로 약을 안 먹고, 줄이고 해도 항상 기다려주셨던 선생님이라서 알겠다고 했다.


2. 일 년 전 겨울 방학을 생각하면 나는 많이 괜찮아진 것 같다. 딱 일 년 전 겨울 방학 때 심리 상담을 중단하고, 병원을 다니기로 마음먹었었다. 말하면서 진을 빼는 것도 너무 귀찮게 느껴지고, 그냥 약을 먹고 그 하루 괜찮다면 그렇게 지내고 싶었다. 방학 때 쉬는 게 정말 힘들었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생각만 많아졌기 때문에, 차라리 개학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의 바람이 너무 잘 이루어진 건지 개학하고 나서 엄청 힘든 학생, 학부모, 업무를 만나 멍 때릴 시간도 없이 아주 체력이 쏙 빠지는 경험을 했지만. 뭐든 열심히 하면 좋은 거라고 하겠지만, 내가 뭔가를 하고 싶어서 한다기보다는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서 뭔가를 하는 것은 하면서도, 끊임없이 충족되지 않는 무언가 때문에 해도 해도 만족이 안 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비교적 긴 겨울방학이 다가오면서 나는 작년처럼 그럴까 봐 겁이 났다. 누군가한테는 방학이 있어서 좋겠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방학인데 그 누구보다 그 특권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라 부끄럽기도 했다. 이번 겨울 방학 초반에도 그랬다. 방학 첫 주, 둘째 주는 엉엉 울면서 지냈다. 그러다 정말 안 되겠어서 상담을 받게 되고, 내게 나름 심리적으로 안정을 주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요가는 잠시 중단했다. 그리고 대신 친구의 추천으로 러닝을 했다. 내 마음의 안정을 주었던 책은 반복해서 읽었다. 브런치에 글도 쓰고 네이버 블로그에도 열심히 글을 쓰고 영어공부도 했다. 나의 불안감을 키우는 취준은 잠시 중단했다. 한 달 안 되는 시간 동안 많은 걸 했네.. 내 마음이 안정되는데 도움이 되었던 말들을 생각해 보면.


1) (지금 내 휴대폰 바탕화면) 우리는 계속해서 남들을 판단하고 우리 뜻대로 바꾸려 합니다. 거의 떼쓰는 어린아이 같은 집요함으로 그 방식을 고집하지요. 마치 세상이 자기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굳건하게 믿는 것처럼 말입니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좌절하거나 폭발하고 우울해하기도 합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아. 사람들이 내 말을 안 듣는다고? 그럼 나 자신이라도 마구 괴롭힐 거야."

- 나 자신이라도 마구 괴롭힐 거야 라는 말이 너무 와닿았다. 쉴 시간이 있는데도 안 쉴 거라고 하는 내 모습이 나를 괴롭히는 사람으로 보였다.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관리자들, 학생, 학부모는 그렇게 싫어해놓고 선생님들이 방학 쉰다고 월급을 적게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 내 주변에는 없는 대상 없는 )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라고 하듯이 나를 열심히 괴롭히며, 나는 방학 때도 쉬지 않는걸 끊임없이 증명해 내기 위해 열심히 지내는 것 같았다.


2) 상담 선생님께서 " 방학 때 쉬는 건 선생님들의 특권이죠.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건 부러워서 그런 거죠 ㅎㅎ"


3) 이번 병원 상담에서 내가 선생님께 여쭤봤다.

(나) 제 업무를 교감선생님께서 바꿔주시면서 '선생님, 올해 열심히 하셔야 됩니다. 최선을 다해주세요. 그리고 내년에는 선생님께서 배려해 주셔야 됩니다.'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 말이 너무 부담돼요. 제가 사실 이렇게 약도 먹고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인데, 벌써 밑 보여서 여기서 쉬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일 년은 꼬박 정말 일만 해야 될 것 같아요. 작년에는 그래도 열심히 하면서 제가 혹시 작년처럼 힘들어지면 더 휴직해도 되는 거 맞죠?ㅠ


(의사 선생님) 그럼요. 그런 상황이 오면 하는 게 맞는 겁니다. 그게 학교를 위해서라도요. 휴직을 해야 하는 건강 상태이면 당연히 하는 게 맞는 거죠.


내 성격상 스스로 질병 휴직을 내긴 어려울 것이다. 작년에도 충분히 그럴 상황이었는데, 스스로가 포기하는 것 같아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해냈으니까. 그런데 내가 휴직을 해도 되는지 알고 일을 하는 것과 무조건 버텨야 한다는 배경 속에서 일하는 건 나에게 다른 의미다. 그래서 답정너였지만 의사 선생님께 굳이 여쭤봤다. 이 말이 이번 학기에 내가 일하는데 힘이 많이 될 것 같다.


3. 작년에 가르쳤던 아이들에게 카톡이 왔다. 선생님 가시는 거냐고. 작별 인사도 없이 가면 어떡하냐고. 웃긴 점은 담임했던 아이들이라기보다는 동아리 맡았던 친구들이다. 내 전공(과학)과 전혀 관련 없는 동아리를 맡으면서 샘들이 'OO샘 과목 바꿨어?'라는 말도 많이 하셨었다. 그만큼 나는 동아리에 진심이었다. 과학 시간에는 볼 수 없는 아이들의 똘똘한 눈빛을 보는 게 좋았고, 감사했다. 그런 눈빛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라면 과학시간에 멍해도 안심되었다. 좋아하는 것 앞에서 그렇게 의지를 갖고 살면 되고, 과학 따위(?) 좀 몰라도 인생을 충분히 잘 살 수 있을 거니까. 새로운 학교에서 교감선생님과 첫날부터 부딪히고, 혼이 나며 (?) 이 아이들이 벌써 그리워졌었다. 힘든 아이들만큼, 나를 위로해 주고 힘이 되어주는 아이들도 많았던 걸 나는 일하면서도 알고 있었다. 벌써 그립다. 아이들과 동료 선생님들은 뭘 위해서 과학도 아닌 동아리를 이렇게나 열심히 하냐고 말했지만 사실 나를 위해서였다. 살아있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면 내가 충전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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