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참 피곤하겠다."
(선생님)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요?
(나) 원래는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아니면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 될까요?
(선생님) 저희가 그동안 두 번 정도 만났는데, OO 씨가 이 상담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정하고 갔으면 좋겠어요.
(나) 저는 이상적일 수는 있지만, 제가 불안한 이유를 찾고 덜 불안해지고 싶어요. (마음속으로는 아예 불안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불안할 때 올라오는 감정과 내 심리 상태가 너무 버거워서)
(선생님) 아 그렇군요.. 그러면 OO 씨가 그동안 상담도 받고 병원도 다니시면서,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해보셨을 텐데 지금까지 찾은 불안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 음,, 제가 생각나는 건 지난번 상담 때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부모님이 싸우면 엄마가 집을 나가셔서 안 돌아오시면 어떡하지 했던 것처럼, 상대가 떠날까 봐 무서운 것 같아요. 엄마가 싸워서 떠나면 어떡하지, 내 피부가 더러워서 얼굴 못생겼다고 하면 어떡하지, 제가 수업을 못해서 학생들이 저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제가 화학 말고 다른 과학 과목 가르칠 때 실력이 없는 게 들통나면 어떡하지, 그래서 불안했어요.
(선생님) 학교에서의 이야기를 좀 더 해보죠.
(나) 저는 화학 전공이긴 하지만, 중학교나 고1을 가르쳐야 하는 경우에는 물리, 생명과학, 지구과학도 가르쳐야 하는데 그걸 가르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아요. 제가 대학 전공도 아니니까 자신도 없고요. 화학은 제가 모르면 아이들이 이 부분까지 모른다고 말해줄 수 있는데, 다른 과목을 가르칠 때는 아이들이 물어봤을 때 제가 모르면 제가 모르는 건지, 아이들이 몰라도 되는 건지 감이 안 오거든요. 간혹 어떤 아이들은 저에게 일부러 아주 어려운 문제를 가져와서 제가 푸나 못 푸나를 보고 시험에 나오나 안 나오나를 테스트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때 제가 한 번에 쉽게 못 풀면 너무 부끄럽고, 제 실력을 들킨 것 같아서 무서워요. 제 수업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을까 봐요. 가끔 아이들이 제가 입은 옷으로 '그게 뭐냐고' 말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도 심장이 쿵하고 초조해져요.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그걸 알아본 것 같아서.
(선생님) 그건 OO 씨의 일부잖아요. 아이들이 오늘 수업 재미없다고 하면, 그래 오늘 재미없었어? 다음엔 재밌게 해 보자. 오늘 옷이 별로냐? 나도 오늘 별로 마음에 안 들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나) 저도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고, 아이들이니 그냥 툭툭 쉽게 하는 말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런 말을 들으면 내 옷이 별로여서 - 내가 못생겼으니까 - 그럼 나를 싫어하겠다 까지 가는 것 같아요. 내가 물리를 모르니까 내 수업에 대한 신뢰가 없어져서 저의 수업 자체를 싫어할 것 같아요.
(선생님) OO 씨에게는 스스로에게 완벽한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 있네요..
(나) 완벽하길 바란다기 보단, 그냥 제가 양심에 찔려서요. 제 전공도 아닌데 가르치는 것이. 물론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지만, 학교에서 시켜서 하는 거지만, 애들한테도 미안하더라고요.
...
(선생님) OO 씨가 불안하다고 느낄 때 떠오르는 어렸을 때 사건이나, 드는 생각이 있을까요?
(나) 어렸을 때 사건은 부모님이 가끔 싸우시다가, 엄마가 집을 나갔다 들어오는 것 말고는 없어요. 그냥 저는 불안할 때, 아 이런 불안감이 커지면 내가 통제하기가 어려워질 텐데, 얼른 마음을 다잡아야지 하는 생각이 같이 들어요. 그래서 제가 방학 때도 안 쉬고 뭔가를 계속하는 거랑도 관련되어 있어요. 영어 공부를 해야지만, 글을 써야지만 불안해지는 생각들을 덜 할 수 있거든요. 예를 들면, 방금도 선생님이 저는 저의 불안은 고칠 수 없다고 하실까 봐 너무 불안했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어떤 이야기를 이어가는 1초도 안 되는 찰나에 '아, 선생님이 나를 포기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그럼 나 어디에 가야 하지. 선생님이 그런 말씀하시더라도 무너지지 말자. 마음을 다잡자'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어요. 그래서 울컥했어요. 저의 마음상태 디폴트가 마음에 물이 찰랑찰랑 거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여기서 작은 돌이든 큰 돌이든 누가 던지면 크게 파동이 칠 테니 항상 조심조심하고 있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조심스럽고,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거리를 두려고 하는 편이에요. 사람들을 만날수록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지고, 그럼 후회하고 곱씹어보는 에너지도 많이 필요해서요. 아무래도 또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제 감정을 건드리는 일들도 많아질 거니까요.
(선생님) 곱씹는 편이시군요. 그럼 정말 힘들죠..
(나) 네. 정말 많이 곱씹어요. 그래서 그냥 혼자 있어도 진이 빠지는 것 같아요. 피곤하고.
(선생님) 그런 OO 씨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요?
(나) 피곤하겠다.. 실제로 피곤하기도 하고요. 저는 교육 심리를 공부할 때, 이런 생각이 드는 저 자체를 인정하고 안쓰럽게 바라봐줘야 치유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기도 했거든요.
(선생님) 아? 알고 있었나요..?
(나) 네, 이론으로는 알겠어요. 그리고 제 스스로가 저를 잘 돌봐야 제가 만나는 우울증에 걸린 학생들에게도 저의 말에 힘이 더 실릴 것이라고 생각도 들어서 마음을 다잡으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돼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제 스스로가 안쓰럽지 않아요. 상담, 병원에 돈을 얼마나 많이 썼는데 아직도 이런 얘기를 하냐 지겹다 이런 생각이 먼저 들어요. 그리고 되려 얼른 이 불안한 마음을 잡아야 하는데 하면서 더 초조해져요.
(선생님) 아, OO 씨에게 쓰는 돈이 과분하다고 생각하는군요. 이것도 중요한 얘기가 될 수 있겠네요. 다음 주에 이 이야기를 좀 더 해보죠.
지난주에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여전히 마음이 무거워서, 내가 간혹 조언을 구하는 퇴직하신 교장선생님께 조언을 구하고자 전화를 드렸다. 학교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면 미묘한 분위기 차이를 이해하기 어려워서 상담선생님께 이 이야기를 하나하나 얘기하고 싶진 않았다.
물론 내가 진작에 미리 그 업무에 대한 부담감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했으면 좋았겠지만 (실제로 이야기 하긴 했는데, 그냥 하는 얘기로 들으신 것 같고 전달이 잘 안 되었다) 그렇지 않았으니 다음에는 그런 일에 대해서는 교감선생님께 직접적으로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하라는 조언을 먼저 해주셨다. 그리고 지금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어떤 일을 하게 되면 이제 피하지 않고 맡아서 하겠다고 하면 내가 무조건 모든 업무를 피하고자 한다는 이미지가 심어질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런 고민하고 눈물이 나고 이런 과정 자체도 성장의 시간이라고. 교장선생님은 당당한 커리어우먼 느낌의 선생님이신데, 교장선생님도 내 나이 때는 정말 많이 울었고, 원하는 승진이라는 목표가 있었기에 주변 선생님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대신 아이들과 정말 잘 지냈다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우는 횟수도 줄어든다고. 그리고 사실 그 사람에게 미안하고, 우는 것 자체도 마음이 여려서 그런 거고, 오히려 당연히 내가 이렇게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고. 오히려 너무 그 샘에게 미안해하면 이상하게 느껴지니, 그냥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그리고 나중에 그 긴장감에 수능 직전에 일을 못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지금 말씀드린 것이 오히려 학교를 위해 맞는 것이라는 말씀도. 맞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애들과 잘 지내는 것. 수업을 열심히 준비하는 것. 교장선생님과 친한 선생님이 나랑 같은 학교에 계시다며 그 선생님께 의지하면서 잘해보라고 하시길래 '제가 누가 되지 않게 열심히 하겠다'라고 말하니, 아이고 됐다며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라고 까지도 말씀해 주셨다. 눈물이 주르륵.. 나를 잘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새로운 학교에서 적응하려니 너무 겁이 났나. 새로운 학교에서도 내가 하던 대로 내 일에 책임감 있게 잘해나가면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겠지. 처음 발령 난 학교에 적을 만든 것 같아서, 모두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던 것 같다. 내가 저지른 일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