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두 번째 학교에서 마지막 날이었다. 기억이 미화된 건지 아쉽고, 이렇게 끝날 줄 알았다면 웃으면서 할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돌이켜보니 그래도 좋은 동료들이 있었는데. 그래도 나한테는 그게 최선이었다. 원래 곧잘 우는 편인데도 마지막 인사하라고 하는데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어쩌면 아직 실감이 아직 안 나는 것일 수도 있다. 내일 새로운 곳에 가서 어색하면 또 예전이 그리워지겠지. 내가 학교를 정식으로 옮기는 건 처음이다. 그래서 어떤 분위기 일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 큰 기대가 없어진 것도 같다. 옛날에 새로운 곳이면 무조건 희망적이고 좋을 것이라는 기대가 됐는데, 지금은 이런저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정말 좋은 곳이라고 해도 나에게는 안 좋을 수 있고, 안 좋은 곳으로 소문나도 어떤 사람한테는 좋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새로운 공간에서 또 어떤 일이 있을지, 내일 담임은 몇 학년을 맡을지 궁금하다. 이번 학교에서는 정말 통근 거리, 반 아이들, 업무,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음에도 나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해 주시는 분이 한 분 계셨다. 다른 분들이 나만 너무 예뻐한다고 뭐라고 하실 정도였다. 서로 맞는 동료를 만난다는 것은, 그리고 그 동료가 상사였으니 나는 분명 복이 있었고, 좋은 점이 있었다. 그걸 힘든 순간에도 알았었을 정도니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싫어했던 사람들을 미워했던 것이 후회가 된다.
2. 새 학교 첫날, 또 마음이 뒤집어졌었다. 정말 나는 왜 이럴까.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 내가 너무 예민하고 잘못된 걸까. 내가 생각한 대로 업무분장이 (또) 이루어지지 않았고, 또 어느 배려 없이 발표가 났다. 나는 당황했고, 가서 따졌다... 저는 왜 7년 동안 일하면서 한 번도 제가 원하는 대로 된 적이 없다고. 사실 7년 동안 원하는 대로 된 적이 없는 것은 지금 근무하는 곳의 잘못은 아니었는데 설움이 북받쳤다. 이전 학교에서는 새로운 사람을 배려해 줘야 돼서 기존에 있던 사람, 내가 기피 업무를 맡아야 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새로운 학교에서는 기존의 사람들을 먼저 배려하다 보니 내가 먼저 힘든 업무를 하고 내년에 배려받기를 기다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왜 나는 언제. 도대체 언제 배려받을 수 있는 걸까 하는 설움이 북받쳤다. 사실 내 성격은 그냥 말은 안 하고 참고, 주어진 대로 하는 게 내 적성에 맞는데, 가마니로 있으면 가마니로 안다는 말이 떠올라 무작정 관리자에게 찾아가. 울먹거리며 저 수능과 방송은 정말 제가 견디기 힘든 것의 콜라보라고 했다. 수능은,,, 내가 아직도 그때 생각이 나서 설사하고 그러느라 죽 먹으면서 감독해야 하는 일이고, 방송 업무는 각종 행사 때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밥을 잘 먹지 못하면서 일했던 업무이다. 그 두 업무의 콜라보라니. 그래서 어찌어찌 얘기했는데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나름의 합리화 이유를 찾아 마음을 다독거리고 인정하려던 찰나에.. 담임 업무로 바뀌었다는 얘기가 나왔고, 나는 다시 새로운 학교에서 잠시 적응할뻔했던 공간에서 다시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는 느낌으로) 1학년 담임으로 배치가 되었다. 괴로웠다. 내가 하기 싫은 업무를 누군가에게 주었다는 사실이. 그런데 이 과정에서 교감은 본인을 찾아오지 않고, 인사를 안 했다고 화를 냈다. 8년 차 면 아기도 아니면서 절차를 모르냐면서. 이번에 배려받았으니까 내년에 배려 못 받는 거 아시죠? 이러면서.... 그냥 이런 말 들을 줄 알았으면 그냥 할걸.. 방송의 업무도 할만했을 텐데. 내가 방송 업무를 그냥 하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 중 하나는 담임 수당과 담임 점수이다. 그런데 사실 내 정신이 이런데 10년 뒤, 20년 뒤의 일이 뭐가 소용 있을까. 방학 동안 마음 겨우 다스리고 진정시켰다고 생각했는데 또 도루묵이다. 오늘 학교에서도 울고, 집에 오는 내내 펑펑 울었다.
3. 집에 오다가 내가 가장 좋아했던 요가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선생님도 너무 단단한 마음과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나눠주셨는데, 사실 정말 마음 깊숙하게는 아픔이 있으셨던 것 같다. 사실 나는 그 샘의 불안정함이 느껴져서 불안했던 적이 있다. 외모는 정말 지나가다 고개가 돌아갈 만큼 너무 아름다우신데, 이 예쁜 얼굴을 하신 샘이 마음이 힘들다니 이해가 안 된 적도 있었다. 나였으면 세상 행복하게 돌아다녔을 텐데 하면서.(철없는 소리인지는 알지만.)
4. 2년 전에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이 돌아가셨는데 그분의 남편분이 이제 만나는 사람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2년의 시간 무척 길었을 것이다. 시간이 정말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너무 슬펐다. 그 남편분에게 뭐라고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냥 샘이 너무 보고 싶어서. 정말 산 사람을 살아진다. 살아가야만 한다. 누가 나한테 그랬다. 내가 학교에서 그렇게 난리치고 힘들어하고 애들한테 미안하고, 학교에 미안해해도 학교는 잘 돌아간다고. 맞다. 잘 돌아가는데.. 내가 너무 걱정 안 해도 된다. 나 없이도 세상은 잘 돌아가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산 사람은 살아지고, 살아가야만 하고, 남겨진 사람은 굴러가야 하니 일을 어떻게든 하긴 마련이다... 오늘따라 ㅎㄴ샘이 너무 보고 싶은 밤. 샘 잘 있어요? 요즘 왜 이렇게 별이 많이 떠있는지. 샘이 있는 것만 같아서. 샘이 봐달라고 하는 것 같아서. 서울에서도 별이 너무 잘 보여요. 비행기가 멈춰있나 생각이 들 정도로. 샘 저는 가끔 샘이 부러워요. 그래도 거기서는 마음이 고통스럽게 살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아서요. 그래도 저는 용기는 없어요. 살긴 살 텐데, 쉽지 않네요. 저도 방학하고 며칠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다시 오늘 마음이 요동치고,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걸 경험했어요. 저는 이럴 때마다 너무 힘이 들어요. 저보고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되면 된 거라고 하는데, 뭐가 제가 원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미 정해진 대로 가는 건 체력적으로 힘들고, 억울한 감정이었다면, 막상 제가 말한 대로 되니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었거든요. 하늘에 가면 이런 감정은 느끼지 않을 수 있나요? 아니면 제가 이렇게 사는 과정을 위해서 다 지켜보고 계시나요? 그러면서 같이 마음 아파하고 계시나요? 샘, 저는 샘이 너무 힘들고 아팠지만, 그래도 거기서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어요. 곧 샘 생일이네요. ㅇㅈ샘이랑 보러 갈게요
5. 괜찮아졌다고 생각할만하면 다시 마음이 요동치고 눈물이 나고 그런다. 고통스러웠던 지난 수목금이었다. 내가 싫어서 용기 내서 말한 것을 더 후회했다. 나는 말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 더 맞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조용히 살걸.. 나한테 관심이 없겠지만 그래도 출근이 걱정되고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6. 다시 불안이 올라왔다. 이제 곧 발표가 날 텐데, 합격할 확률이 많이 낮아졌다고 하긴 하는데 그걸 기대했다가 내 실망이 더 커질 것 같다. 무섭다. 어차피 떠날 거면서 왜 이렇게 가까워졌는지 탓을 한다. 갑자기 또 살기가 싫어진다. 앞날을 생각하면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출근을 하려고 하니까 그런 건가, 이미 밑 보인 관리자에게 앞으로 잘해야 한다는데 뭘 더 잘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내가 꼭 해야 하는 일만 조용히 하면서 살고 싶었는데, 그러다가 나가야 되면 휴직을 내고 나가려고 했는데. 오늘은 다시 약을 먹고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