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상담을 받기로 했습니다. 상담을 받고 바로 제 기분이 나아지면 좋겠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습니다. 나의 감정, 생각을 다 쏟아내고 나면 오히려 폭풍이 지나가 진이 빠지고 상담 때 주고받은 말을 곱씹으며 지내는 날들이 더 많아요. 다음 상담을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어떤 생각으로 지냈는지를 적었습니다. 저의 복잡한 생각들이 공감되시는 분이 있다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위안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1. 지난 1회 상담 때 선생님이 나에게 했던 말 중 찝찝했던 말이 있었다.
(선생님) 대학원 졸업 하고 OO 회사면 정말 잘했네! 토플 OO 점이면 진짜 잘했다!
역시 ,,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는 그 취준도 못하고 토플도 겨우 ㅁㅁ점 받았는데.
친구에게 이 말이 불편했다고 하니, '그럼 내가 그렇게 토플 OO점 받았다고 해도 불편해?'라고 물어봤다.
응? 아니. 전혀. 친구가 그럼 네가 예민한 게 아니라 지금 그 사람 이슈에 예민해진 게 너를 힘들게 할 수도 있어!라고 말해줬다. 정말 그런 거면 좋겠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고 싶지 않다. 만약에 한 사람이 그런 거라면 오히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수월할지도 모르겠다.
2. 상담을 받기 전 주말에 내가 감정조절 못하고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든 부끄러운 일이 있었다. 잘 놀고 헤어졌는데, 문득 정말 그 순간에 못 본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 거렸고, 눈물이 주르륵 났다. 그래서 갑자기 이미 서울을 빠져나간 사람에게, 다시 와달라고 했다. 결국 버스 타고 가다가 돌아왔다. 돌아오긴 했지만, 그 사람은 내가 이렇게 우울하고 불안하게 만든 거라면 우리 둘 다 불행하니 헤어지는 게 맞다고 했다. 다시 또 미친 듯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 시간을 지하철 역에서 배회했다. 사람이 조급해지니 또 나는 다 괜찮다고, 내가 알아서 감정 조절하고 잘하겠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이랬다. 엄마한테도 짜증 다 내고 엄마가 받아주다가 힘들어서 더 화내면, '제가 잘할게요 엄마.'라고 다시 빌었다. 사실은 마음속에 분명히 원하는 뭔가가 있고, 불편한 뭔가가 있었다. 그런데 항상 그게 무엇인지 모른 채 울컥하고, 불안하고, 초조하게 나타났다. 상대방에 직접적으로 '뭐가 필요해'라고 말하기보다는. 왜 말을 안 하냐고 내가 답답할 수 있지만, 나도 내가 뭘 원하는지 바로 알긴 힘들었다. 그래서 결국 그게 감정으로 드러나면, 상대방은 당황해했다. 잘 놀다가 갑자기 그런다고 느껴졌을 거다. 이번에도 그랬다. 상대방이 더 답답해하면 나는 다시 깨갱했다. 제정신이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아 내가 뭐 하는 거지. 왜 감정 조절을 또 못했지. 왜 짜증을 냈지. 왜 우는 거지. 얼른 정신 차려. 나를 떠나면 어떡해. 빨리 괜찮다고 말하자. 내가 다 잘하겠다고 말하자.' 이런 사고의 순환이었던 것 같다. 부끄러웠다. 나는 온전하고, 차분하고, 감정 조절을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는데,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 나의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상대방이 나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니 마음이 아팠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거지. 그런데도 내가 다 잘하겠다는 말을 참았다. 그건 진심이 아니니까.
가장 가까웠던 사람을 못 앞으로 못 볼 수 있다는 상상을 잠시 해보니, 그때 들었던 감정은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 그동안 잘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3. 화요일에 책을 빌렸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책 앞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불안의 폭풍우 속에 있는 당신을 구원할 책"
정말 불안의 폭풍우 속에 있는 나를 구원해 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전에 명상 관련 책이나, 수행을 하면서 쓰신 책이나 강의는 많이 봐서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나랑은 차원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식같이 느껴졌었다. 그래서 읽다가 '나는 그게 안되는데 어쩌라고! '이러면서 책을 포기했다. 그런데 이 책에는 포스트잇이 한가득 붙었다. 그냥 뭔가를 어떻게 해라 라는 내용보다는, 이렇게 17년 동안 수행하신 분도 여전히 불안하고 눈물이 나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계시다는 것 자체가 나를 위로해 주었던 것 같다. 한 줄 한 줄에 대한 내 생각은 내 블로그에 적어두었다. 그중에서 가장 와닿았던 부분을 공유하고 싶다.
(p151)
이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생각은 '내가 그랬어야 했다'라는 생각입니다. 예컨대 '내가 달라졌어야 했는데', '내가 더 현명했어야 했는데', '내가 더 열심히 일했어야 했는데', '더 돈이 많았어야, 더 나았어야, 더 날씬했어야, 더 성숙했어야 했는데' 이 함정에 빠지면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을 겁니다.
(p203)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그리고 가차 없이 이런 속삭임이 들립니다. '이런 상황이 영원히 지속될 거야. 절대 좋아지지 않을 거야.' 극심한 불안감을 느껴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요. 몹시 불안한 순간에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으면 위험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위험해질지 또 얼마나 한계에 이를지는 알 수 없습니다.
(p220)
우리는 "이렇게 기분 나빠하면 안 돼. 이렇게 반응하면 안 돼. 너무 쉽게 의존하고 상처받고 시기하고 분개하면 안 된다고! "라고 외치는 머릿속 생각들에 온통 주의를 빼앗겨 마음속의 조용한 목소리를 너무 쉽게 놓쳐 버립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런 식의 질책은 힘든 감정을 겪는 어떤 사람에게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지난 주말에도 그랬다. 내가 감정을 드러낸 것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져서 나는 더 진정이 잘 되지 않았다.
"왜 이렇게 감정 조절을 못해. (상대방 표정이 어두워지면) 봐봐, 이제 나한테 질린 거야. 여기서 더 반응하면 안 돼. 지금은 네가 참아야 돼. 너무 조급해 보이면 사람이 없어 보인다고 했어. 아무렇지 않은 척 하자. 그냥 오늘 만나지 말걸. 안 만났으면 이런 일 없었을 텐데. 내가 만약에 선생님이 아니라 일 쉬었다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전문직이었다면 내가 미국 가는 걸로 이렇게 고민을 했을까. 대학생 때 시험이 싫다고만 하지 말고, 진지하게 진로 고민을 좀 해보지. 그때 왜 그렇게 회피했어. 내가 정말 눈에 띄게 예뻤다면 어땠을까. OO 이는 좋겠다. 돈도 많고 직업도 좋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텐데. 내가 지금 직업을 바꾸지 못하면 나이가 들어서 애들이 무시하는 선생님이 될 거야. 말도 안 통하고 내가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내 수업을 안 들으면 어떡하지. 지금 취준을 성공해야 되는데. 나는 상담도 6년 넘게 하고, 병원 상담도 받고 있고, 요가 - 명상- 책 읽기- 일기 쓰기 - 그림 그리기 나를 다스리기 위해 모든 방법을 쓰고 있는데, 왜 나는 여전히 이 모양일까. 언제쯤이면 마음이 편해질까. "
이 함정에 빠지면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을 겁니다.
'이런 상황이 영원히 지속될 거야. 절대 좋아지지 않을 거야.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런 식의 질책은 힘든 감정을 겪는 어떤 사람에게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점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는 생각들이) 나한테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17년의 수행 끝에 다시 돌아온 작가도, 우울함을 느끼고 본인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 세상을 그만 살아야 될지 고민한 적이 있다고 했다. 수행을 했다고, 내가 책을 조금 읽고 일기를 쓰고 상담을 받았다고 바로 좋아지지는 않는 것이 나만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하는 안도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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