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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상담 일지] 1회 차

by 우주먼지

[소개] 2017년부터 7년 동안 심리 상담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이 불안하고,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가 남아 있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져 상담을 중단하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물 치료와 짧은 면담을 1년 동안 병행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답답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선생님과 새롭게 상담을 받아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번에는 이 답답함이 조금이라도 풀리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상담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려 합니다.




지난 상담은 6년 이상 했는데도 달라진 게 없는 실패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상담의 목적을 갖고 가고 싶었다. 답답하고 불안이 올라오는 상황이 너무 다양해서 할 얘기가 너무 많았지만, 한 번에 모두 해결할 수 없다는 걸 7년 상담받으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2주 전 상담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저를 가장 복잡하게 만들었던 생각들은 이 세 가지였다.

1. OO 이 미국에 간다고 하는 사실이 왜 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건지 - 그냥 눈물이 쏟아지고, 답답함.

2. 방학 동안 아무것도 안 하면 왜 이렇게 불안한지

3. 일상생활을 잘하다가도 갑자기 울컥하고 눈물이 나고, 왜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이 들면서 살고 싶지 않다는 삶에 대한 회의적인 마음이 드는지


(선생님) 지난 2017년도에 상담을 받았을 때는 왜 받으셨었나요?

(나) 그 당시에는 외모에 대한 강박이 심했었어요. 지금도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지만, 그때는 불을 켜고 화장실에서 세수를 못했었어요. 얼굴을 보기 싫어서요. 올리브영이나 편의점같이 조명의 환한 곳은 절대 누구랑 같이 가지 않았어요. 당시 남자친구와 약속을 잡을 때도 조명이 적당히 은은한 곳을 미리 검색해 보고 찾아갔어요. 너무 환한 곳에서 밥 먹으면 제 피부가 다 보일까 봐요. 피부에 트러블이 나는 이유는 너무 다양해서 음식, 스트레스, 수면 부족, 유전, 환경 변화 등 제가 컨트롤하기가 어려웠어요. 외모 중 그나마 컨트롤이 가능한 것은 몸무게라고 생각했어요. 몸무게를 유지하는 건 운동과 식단 조절만 하면 되니까, 그래서 주 6-7회 운동하고, 걷기도 정말 많이 걷고, 피부 때문에 몸에 안 좋은 음식은 원래 안 먹는 상태였기 때문에 식단 조절이 비교적 쉬운 편이었고, 심할 땐 정말 38-39kg까지 뺀 적도 있어요.

(선생님) 그럼, 그래도 그때 보다 나아진 부분들이 있는 거네요. 지금은 주 3회 운동하고 강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하니까요.



(선생님) 그럼 이번에 상담을 받을 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나) OO이 미국 박사로 지원하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울컥하고,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고 무섭고, 답답해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같이 유학을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편하게 관계를 시작했어요. 3개월 까지는 정말 좋기만 했던 것 같아요. 고민이 많아졌던 시기는 작년 이맘때부터였어요. 상대방이 박사 지원을 위해서 시험 준비를 하는데, 저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시기가 맞으면 좋으니까. 그런데 저는 상대적으로 영어도 못하고 연구에 대한 열정과 쌓아놓은 스펙이 없었어요. 일단 토플을 봐야 했는데, 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겨우 80점 나올까 말까 하는 상황이었고, 자기소개서나 연구 계획서를 작성해보려고 하니 제가 한 게 너무 없으니까 비교가 되고 제가 너무 보잘것없어 보였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의지가 있으면 열심히 준비라도 해보겠는데, 석사를 막상 해보니 이렇게 열심히 1년 동안 만들어낸 논문이 별거 아닌더라고요. 저의 큰 꿈은 우리나라의 학생들이 입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학교 생활을 즐겁게 하는 교육 시스템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론들, 논문들 가지고는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싶으니 의지도 이전보다 꺾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주는 압박감이 저한테 있어요. 노르웨이 박사였다면 이 정도로 마음이 무겁진 않을 것 같아요. 제가 석사를 유럽 중 하나로 선택했던 이유도 있었어요. 미국은 저에게 한국과 같이 경쟁이 심한 나라같이 느껴져요. 저는 중, 고등학교 때부터 입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서 정신과를 다녔었고 약 먹으면서 공부했어요. 어떻게든 수능 공부는 끝냈지만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얼마나 힘들었었는지 너무 생생해요. 미국에서 석사, 박사는 전 세계적으로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얼마나 경쟁이 힘들지, 안 가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노르웨이 석사도 힘들지 않았던 건 절대 아니지만, 미국 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노르웨이에서는 영어가 모두 외국어인 상황인데, 미국은 원어민들이 더 많잖아요. 저는 영어를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영어가 모국어인 나라 가면 너무 작아질 것 같아요.

동반휴직을 내고 미국을 따라가는 방법도 있을 수는 있어요. 그런데 저는 미국 가서 아무 일 안 하고 싶지가 않아요.


(선생님) 미국 가서 쉬면 왜 안될까요?

(나) 제가 돈을 못 벌고 쉬기만 하면 눈치가 보일 것 같아요. 저는 피부에 트러블이 올라오면 난리 나서 피부과로 당장 달려가야 하는 사람이고, 일주일에 몇 번 운동은 꼭 하고 싶은 사람인데, 이게 다 돈이 잖아요. 돈도 못 버는데 이런데 돈 쓴다고 하면 얼마나 철이 없어 보이겠어요. 상대방은 저에게 쉬라고 말해줘요. 제가 작년에 학교에서 학생, 학부모 문제로 많이 힘들어 보였는지 1년 정도는 아무것도 안 하고 쉬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줘요. 그런데 저는 그 말이 잘 믿기지 않아요. 그때보다 지금 괜찮아지기도 했고, 제가 막상 쉬고 있으면 또 일했으면 할 수도 있잖아요.


지금도 잘 못 쉬어요. 방학인데 쉬면 눈치가 보여요. 사람들이 얘기하는 거 들어보면 선생님들 방학 동안 일 안 하고 쉬면서 돈 받는다고 뭐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방학 때 오후에 돌아다닐 일 있으면 교사라고 말하지 않아요.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방학 때도 똑같이 출근하듯이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영어 공부를 하거나 할 일을 해요. 안 그러면 특정 대상이 있는 건 아니지만,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괜히 찔린다고 해야 되나.


(선생님) 지금 제가 하는 말이 OO 씨에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너무 한꺼번에 모든 걸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학생들이 입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학교 생활을 즐겁게 하는 교육 시스템을 만드는데 기여' 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굉장히 큰 일인데, 사실 이건 대통령이 되어도 바꾸기 쉽지 않아요. 조금씩 변화하는데 도움을 줄 뿐이죠. 그래서 지금 너무 큰 꿈이 있으니 OO 씨가 하려는 일이 작아 보이고, 시작을 못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만약에 미국을 가서 가정을 꾸린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역할 일 수 있어요. 왜 OO 씨가 짐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상대방에게는 지지가 돼주는 역할일 수 있죠.


상대방에게는 지지가 돼주는 역할일 수 있죠.


이 말을 듣는데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누군가한테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될 수 있나. 나도 내가 그럴 수 있다면 서포트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를 정말 원하면, 내가 힘이 된다고 하면 따라갈 수 있어.' 내가 짐이 되지 않고, 돈만 쓰는 사람이 되지 않고, 내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고 의지가 된다면 그만큼 기쁜 일이 어디 있을까. 사실 이런 역할에 대한 중독 때문에 내가 선생님을 계속하고 있기도 하다. 의미 있는 일. 내가 의지하길 바라면서도 누군가 나로 인해 힘을 받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힘이 날 수가 없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찾게 된다고 해야 되나.


상담 첫 날이라 해야할 얘기가 너무 많아서, 순간 순간 머리가 띵하고 아팠다. 그래도 결심했으니까 10회는 받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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