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
여기서의 용서는 '수용', 즉 '받아들임'이다. 보통 '용서'는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겠다는 의미로 쓰인다. '용서'라는 말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괜찮아, 네가 그렇게 해도 괜찮아'라고 말하며 그것을 용납하거나 정당화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는 그것은 '그건 정말 내 잘못이고 내 문제였어.'라고 말하는 것이 용서라고 오해한다. 그러나 용서는 상대의 잘못을 그저 용납하거나 정당화해 주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상대의 나쁜 행위에 대한 특정한 이야기를 내 안에서 놓아버리겠다는 것. 그리고 그와 동시에 똑같은 상처가 다시 저질러지지 않도록 단단히 결심하겠다는 의지다... 만약 용서로 나아가지 못하고, 배신이나 분노의 감정에 멈추게 된다면 우리는 남은 인생 동안 똑같은 고통을 반복하며 살가야 한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큰 불행이다. 억지로 용서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용서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p176-177
내 마음에 화의 감정을 자주 일으키는 일들을 먼저 적어보려고 했다. 근데 그 일들을 적기가 부끄럽다. 누가 나에 대해 의도적으로 험담을 해서 곤경에 빠지게 한 일이 있거나, 나에게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줘야 그 일에 대해 얘기를 해볼 텐데, 나를 화가 나게 만드는 사건이나 사람은 (내가 상상에서 만들어낸) 사건이나 타인인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줄곧 이 책에서 해온 얘기인 내가 나를 2차 가해자로서 수치심을 느끼게 하지 말고 내가 느끼는 감정에 일단 'yes'를 하라고 하는데, 책에 대해 반이상 반추하며 글을 쓰니 다시 스멀스멀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맞는 게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다.
오늘은 배우자가 아침 먹는데 "내가 오늘 저녁에 황탯국 해줄까?"라고 물었더니, "나 오늘 많이 늦게 올 것 같아. 아마 먼저 자야 될 거야."라고 답한다. "오늘 집에서 잘 수는 있어?" "응 최대한 그렇게 해야지."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당황스럽다. 이번 주까지 끝내야 하는 과제와 프로젝트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젯밤에는 그렇게 늦게 자지 않았고, 토요일도 일요일도 그렇게 바쁘게 늦게 까지 하진 않았기에, 갑작스럽다.
나는 mbti가 P라서 갑작스러운 스케줄에 유동적으로 움직이고, 당황하지 않는 사람인 줄 믿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의 스케줄 변동에는 몸이 아주 크게 반응한다. 아침을 먹다 나눈 대화에 갑자기 배가 꼬이듯이 아파지더니 화장실에서 설사를 했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임) 학교를 출근 안 하면 그런 일이 없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주변 가까운 가족들 친구들의 일에 더 크게 몸과 정신이 반응한다.
아무튼, 나는 이 얘기를 들으면서 뭐가 그렇게 자극이 되어 배 아프게 만드는지, 왜 서운한 감정이 올라왔는지, 왜 갑자기 기분이 다운되는지, 왜 요가하는 1시간 15분 내내 그 대화를 곱씹게 만드는지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내가 배우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 아니, 용서할 게 있을까?
그는 그의 스케줄을 공유했고 나는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데. 용서고 뭐고 할 게 있나. 근데 왜 나는 6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배가 살살 아프고, 배우자의 연락 알람을 꺼놓을 정도로 기분이 상했을까.
(혹시 저만 이런 건가요. 비슷한 경험이 있으시거나, 어떤 따끔한 조언도 좋으니 저에게 아무 말이라도 부탁드립니다)
피해자가 상대의 잘못을 곱씹으며 원망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것을 억누르거나 억지로 없애려 하면 용서의 길은 오히려 막혀버린다. 비난과 원망의 단계를 지나 나의 상처를 바라보는 지점으로 비난과 원망의 단계를 지나 나의 상처를 바라보는 지점으로 나의 주의와 관심이 옮겨질 때만 비로소 용서를 말할 수 있게 된다... 용서에 대한 두 번째 함정은 '상대를 위한 용서'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준 사람이 행복하게 사라 갈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그 사람은 은 멀쩡하게 아무렇지도 않겠지,라는 생각이 우리를 더 분노하게 한다. 그러니 내가 용서 따위를 해서 상대를 두 다리 쭉 뻗고 자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p185
오늘 아침에 한국에 부모님 집에 가는 꿈을 꿨다. 그런데 시댁에는 가지 않고 이틀 만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꿈에서도 나는 (지금 사야 하는) 본드를 엄마한테 달라고 했고, (지금 가야 하는) 병원을 들렸고, (뭔가 모르게 나를 답답하게 만드는) 시댁에는 방문하지 않는 일정이었다. 나의 부모님께서 배우자에게 하는 이야기를 듣다가, 배우자가 화가 나서 우는 장면이 그다음에 나왔다.
내가 어떻게 보면 공개적인 플랫폼인 이 브런치에 배우자와 그의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를 쓰는데 마음이 불안하다. 그리고 이걸 봤을 때 얼마나 화가 날지를 걱정하는 내 마음이 잘 담겨 있는 꿈인 것 같다. 지난주에 배우자와 살짝 큰 소리를 내며 다툰 적이 있다. 그때 많이 무서웠다. 보통 남자는 아빠를 닮는다고 하니까, 그간 들었던 이야기들이 떠오르면서 나에게도 소리 지를 것만 같아서. 그리고 여자인 나를 때리면 솔직히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때릴 수 있지 않을까. 미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만약 나의 브런치를 발견하면 그렇게 때릴 수도 있지 않을까.
(참고로 말하면,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그와 그의 가족이 나에게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지나가는 말과 행동에 내가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도 않은 타인을 만들어내며 내 삶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가 요점이다.)
관계로 인한 커다란 상처를 입었을 때 우리는 제일 먼저 상대를 용서할 것인가, 말 것인가부터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무의식 안에 용서에 대한 압박감이 자리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용서는 내 안에서 충분히 억울해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p180
그렇다면, 내가 용서할 일만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용서를 구하고 싶은 사람도 정말 많다.
가장 먼저 '엄마'가 떠오른다. 나도 잠시 주부로 살아보니 엄마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엄마는 성당을 가면서도 머리 드라이를 하고 예쁜 옷을 입었는데, 나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성당 가는데 뭐 하러 귀찮게. 근데 내가 오늘 미사를 가면서 운동 후 다시 씻고, 다이슨을 하고 제일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입고 갔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엄마의 거의 유일한 외출이고 가장 정갈하게 예쁘게 하고 가서 하느님께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싶은 마음을.
내가 영양제를 하루 한 번이라도 거르면, 엄마는 큰일 난 것처럼 먹었냐고 계속 물어봤다. 그러면 나는 짜증을 낸 적도 있고, 속으로는 (하, 왜 영양제 한번 안 먹으면 어떻게 되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미국에 와서 그러고 있다. 밥과 영양제를 챙겨주는 것이 내가 이 가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라서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혹시나 아플까 봐, 그럼 내가 집에서 챙겨주지 못해 그런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니까 그런 잔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우리 엄마도 그랬을까.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최대한 짜증을 참고 살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엄마의 생각도 궁금하다.
오늘 미사를 드리는데 엄마에게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이 세상에서 엄마라는 직업이 제일 위대하고, 주부가 진짜 힘든 거다'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은 내가 그 누구보다 엄마의 일을 무시하고, 별거 아닌 거라고 여겼던 것 같아서. 그래서 내가 그렇게나 주부가 되기 싫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내가 그 주부가 돼 보니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 아등바등 뭐라도 하려고 애쓰고 있구나 싶어서.
그러다 보니 나 자신도 안쓰러웠다. 엄마에게도 용서를 구해야 하지만, 엄마에게 못되게 굴었다고 왜 그럤냐고 스스로에게 막말하는 그 또 다른 나도 받아들여줘야만 내 마음이 조금은 자유로워질 것 같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많은 사람들과 상담하면서 가해자 역시 또 다른 고통으로 괴로워했다. 그러니까 이들을 용서하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상대도 나처럼 똑같은 괴로움을 겪게 하기 위하여 나의 고통을 더욱 배가시켜서는 안 된다. 내가 용서해 준다고 상대가 덜 고통스럽거나, 더 행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p185
내가 용서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처를 준 사람이 잘 사는 게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 관계에는 인과 관계가 없다. 엄마에게 직접적으로 용서를 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려면 내가 사실은 엄마가 나에게 해주는 애정과 잔소리를 속으로는 무시했어라는 걸 말로 해야 하니까. 대신 마음 다해 기도로 간절히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고, 엄마의 건강과 행복을 빌 것이다.
그렇다면 나와의 관계에서는? 나도 용서해 주자.
매일 나(A)에게 생산적일 일 하라고 부추기고 스트레스를 주는 나(B)를 용서해야 하지 않을까.
시부모님이 잘해주시는데도 이전에 그냥 한말로 스트레스를 받냐고 화를 내는 나(B)를 용서해줘야 하지 않을까.
왜 엄마가 하는 일을 무시했냐고, 너는 엄마를 그동안 기만해 온 거야라고 소리 지르며 앞으로 평생 착하게 살면서 그 죄를 갚아내라고 질책하는 나(B)를 용서해줘야 하지 않을까.
내가 고통받고 있는 생각에서 가해자는 없는 것 같아 맥이 빠졌다. 내가 나를 위해 용서할 사람은 없는 느낌. 내가 그것밖에 못하냐고 채찍질하는 나를 싫어하는 나를 그만 싫어하고, 용서해줘야 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