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누구의 삶도 잘못된 것이 아니다

쉼 없이 앞으로 나가는 것이 살아있음의 증거라고 굳게 믿었었는데

by 우주먼지
멈추지 않으면 우리가 얼마나 습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며, 몇 가지 반복되는 삶의 방식에 매여 사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늘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해, 우리가 정한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왔다. 하지만 멀리 가지 못한다. 어느 날 문득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음을 알게 된다. 쉼 없이 앞으로 나가는 것이 살아있음이라고 생각하던 것에서 오히려 멈춤을 통해 달라지고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다. p195


쉼 없이 뭔가를 하면 그것이 진정 잘 사는 것이라고 느꼈다. 사실 지금도 뭔가를 하는 것에 대한 중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 걸리면서 글을 쓰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아주 조금은 이제 알 것 같다. 쉬는 것도 중요하고, 꼭 뭔가를 계속해야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미국에 와서 매일 미사를 참석하고, 바이블 스터디에 일주일에 한 번 참여하고, 요가를 토요일 빼고 거의 매일 가는 등 매일 하는 루틴을 만들었다. 미국에 와서 아무랑도 말 안 하면 내가 별거 아닌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하는 거야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안다. 나는 한국에 있었을 때도, 방학이라 잠시 쉬는 시간에도, 하물며 주말에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는 것을.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무료하게 있으면 별거 아닌 사람이 되지 않냐는 말에 '아니야,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 그런 시간도 필요해.'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그런 말을 굳이 한다는 걸.


미국에 와서 나는 마음이 오히려 바쁘다. 할 일이 너무 많다. 1) 매일 요가 2) 기도 3) 브런치 글 4) 빌린 전자책 읽기 5) 요리 6) 코딩으로 앱 만들어보기 7) 청소 또는 빨래 8) 영어 공부하기 9) 관심 있는 분야 유튜브 찾아보기(강의 듣기) 10) 영어원서 읽기 이렇게 사실은 할 게 없지 않은데도 마음이 바쁘고 외롭다. 요가 끝나고 걸어오는 길이 외롭고, 오늘 할당량의 기도가 끝나면 그 잠깐을 뭘로 채워야 할지 몰라서 유튜브를 틀어 명상 노래를 듣거나, 웃긴 영상을 보면서 웃거나, 삶을 잘 살아온 사람의 인터뷰 영상을 보며 그들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운다. 그리고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떠올린다. 순간순간 찾아오는 허전함과 공허함은 나를 부정적인 감정으로 이끌어 부모님이 혹시 주무시다가 잘못되면 어쩌지, 갑자기 연락온 오빠의 카톡에 부모님이 잘못되셨다는 내용이면 어쩌지, 등 밑도 끝도 없는 걱정으로 번진다. 그러다 보면 내가 이렇게 복잡하게 사는 것이 오히려 부모님이 바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정신 차리자! 이렇게 질질 짜면서 길을 걷는 거야 말로 부모님이 싫어하시는 일일 거야. 네가 걱정하고 있는 건 신에게 맡겨야 돼. 이건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야.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조금은 개운해진 마음으로 샤워를 하면서 다시 정신을 차린다.


내가 먹토에 대한 욕망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먹토와 눈물을 흘리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다.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은 배부른데도 마구마구 먹거나, 배고픈데도 (주변을 의식해서) 적게 먹는다는 '참는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토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내가 참던 것을 내려놓고 '비워내는 것'에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나 스스로 (아직 글로 정리가 될지 않는) 복잡한 족쇄를 내려놓고, 눈물을 흘리거나 토할 때 느끼는 해방감에서 나는 오히려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같다.


"내가 만약 여기 와서 정말 누워만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으면 어땠을까? "


나는 내가 여기 와서 미사, 바이블 스터디, 요가 수업이라도 가서 영어를 조금이라도 들으면 그것 또한 영어공부가 되겠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 만약에 누워만 있으면 여기까지 왔는데 그런 여유가 없는 것 아닌가.


만약 그랬다면, 오히려 배우자를 따라 수업을 청강했을 수도 있고 (요가 시작 전에는 같이 청강도 해봄), 그의 오피스에 가서 주변 사람들과 스몰 토크를 하면서 오히려 영어를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한마디 해볼 수도 있었겠지. 어제 물리학과 채은미 교수님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 하버드 박사시절 스몰토크를 잘하지 못하고 주변에서 머물기만 했던 것이 조금은 후회가 된다고 하셨다. 나도 여기 와서 이렇게 수동적, 폐쇄적으로 지내는 기간이 나중에 아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 아쉬울 것이다. 노르웨이 석사 하는 동안에 더 적극적으로 친구들과 지내지 못한 것이 여전히 아쉬우니까.


그런데 그것도 그때의 나로서 최선이었고, 지금도 최선인 것 같다. 영어를 할 때 복잡해지고 무시당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집에 올 때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던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나름 나를 방어하는 방식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쉼 없이 앞으로 나가는 것이 살아있음이라고 생각하던 것에서 오히려 멈춤을 통해 달라지고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다. p195


쉼 없이 생각하고, 무언가를 하고, 걱정하고, 후회하고, 하는 이 모든 과정이 그래도 내가 열심히 살려고 하는 의지였을 거야. 그래서 이만큼이나 할 수 있었던 거야라고 생각하던 것에서 오히려 잠시 멈추고, 달라지고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나는 멈춰봐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긴 구구절절 글의 끝은,, 그러니까 나 오늘은 한번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다짐

오늘은 한번 제가 해보고 싶은 대로 끌리는 대로 해보겠습니다.



우리 내면의 삶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멈추고 진정으로 주의를 기울일 때만이 진짜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나 자신과의 우정을 발전시킬 수 있다. 멈춤 그리고 주의를 기울임, 집중, 그다음 단계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진실인가.' 이 질문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물음에 대답하는 순간, 바로 이 순간을 직시하고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p196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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