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언젠가는 나도 죽을 것이고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만이 남을 수 있다는 것

by 우주먼지




부처는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네 가지 법에 대해 설했다. 네 가지 법이란 늙음, 병, 죽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 덧없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중략) "왕이시여,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모든 사람은 죽음으로 돌아갑니다. 만물은 변하는 법이며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습니다. 사람 몸에 닥친 네 가지 두려움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온갖 금은보화와 주술이나 약초, 군대의 힘으로도 없앨 수 없습니다. 그 네 가지는 첫째, 젊음을 부수어 아름다움을 없애는 늙음이요 둘째, 건강을 부수는 병이요 셋째, 죽음이며, 넷째, 모든 것이 덧없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p221-222


나에게 위 네 가지 상실 중에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이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죽음이 아니라 '부모님의 죽음'이다. 이 6글자를 적으면서도 혹시나 이게 현실로 옮겨질까 봐 두려운 마음으로 적는다. 결혼을 하고 비행기로 17시간 떨어진 곳에 와서 살다 보니 나는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더 자주 찾아온다. 같이 살았을 땐, 문득 찾아오는 고마움을 밥 먹으면서 '진짜 맛있다. 엄마 밥이 최고야'라고 표현할 수 있었다. 또는 엄마 혼자 누워있을 때 옆에 같이 누워서 오늘 무슨 일 있었는지 이런저런 얘기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전화하지 않으면 연락하는 게 어렵다. 아마 딸의 신혼 생활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시겠지만 먼저 전화하자고 한 적이 없다. 엄마도 딸이 너무 그리울 때가 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시간이 되면 한다.


엄마, 아빠를 생각하면 바로 눈물이 흐를 정도로 부모님께 감사하고 죄송하다. 그런데 언젠가 (확률 적으로 나보다 먼저 돌아가실 텐데) 돌아가실 일을 생각하면 벌써 마음이 먹먹해지고, 당장이라도 한국으로 비행기 타고 돌아가고 싶다.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는 아직도 건강하게 살아계신 데에 비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모두 일찍 돌아가셨다. 특히 외할머니는 엄마가 결혼하고 얼마 안 돼서 돌아가셨다. 그래서 엄마는 항상 명절이나, 친가의 제사가 다가오면 엄마의 '엄마, 아빠'를 그리워하면서 울적해지곤 하셨다. 그러다 보면 아빠에게 짜증을 낼 때가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어린 마음에 그게 잘 이해되지 않았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게 아빠의 탓도 아니고, 아빠가 그렇다고 친할아버지, 친할머니에게 더 잘하거나 그런 느낌은 아닌데 엄마는 왜 이렇게 가족들이 모이는 시기가 오면 예민해질까.


그런데 지금은 너무 이해가 된다. 예측해 보건대, 아마 엄마는 엄마의 '엄마, 아빠'가 너무 그립고, 그렇다 보면 옆에 있는 엄마, 아빠가 살아계시는 '아빠'가 괜히 미운 거겠지. 그리고 엄마는 엄마의 '엄마, 아빠'의 제사는 안 하고 있지만, 친가의 가족들 제사는 하고 있으니 괜히 더 아빠가 밉겠지.


미국에 와서 나는 엄마, 아빠와 통화하면서 매일 운다. 배우자가 나에게 잘해주는 것과는 별개로 공허함과 허전함, 그리고 감사함과 미안함, 그리고 그리움의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랑 신나게 통화하다 보면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해서 눈물이 나고, 그러다 보면 이 시간이 없어질 것 같아 걱정이 돼서 눈물이 나고, 직접 보고 싶은 데 가려면 17시간이나 걸리기도 하고, (휴직의 조건 상) 나 혼자 가고 싶다고 한국으로 갈 수 없는 신분이라 답답함과 더 멀게 느껴지는 거리감에 눈물이 난다.


어렸을 때는 외국 나가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반복했었다. 그래서 하느님이 그 소원을 들어주신 건지는 모르겠으나, 철없을 때 했던 그 발언이 참 어리석다. 가족을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르고 그런 말을 시도 때도 없이 하다니.


요즘 나는 하루에 한 번은 성당에 가고, 기도도 매일 한다. 그 기도의 제목은 '부모님과 가족의 건강'이다. 최근 54일 기도로 가족들의 건강을 두고 한 기도가 끝이 났고, 어제부터는 엄마를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 사실 엄마에게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하고 싶은데, 용서를 구하는 게 맞는 건지 기도는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했는데, 기도는 시작을 해놓고 구체적인 제목은 정하지 못했다.


아직 찾아오지 않은 부모님의 부재에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그리고 내가 부모님이 나를 위해 너무 기도하고, 걱정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처럼, 부모님도 그럴 것이라는 걸 믿고, 내 삶에서 최선을 다하고 즐겁게 지내자. 아빠가 매일 로봇같이 하는 말이 있다.


'건강이 최고. 오늘 하루도 즐겁게 지내면 됩니다.'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명상 - 누구도 사라짐의 진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p240)


당신에게 곧 닥치거나 아니면 이미 당신이 경험하고 있는 상실감을 느껴보라. 그 사람과의 관계에 좀 더 온전히 조율하는 방법의 하나로 당신이 그 사람을 포옹하고 있다고 상상한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해 본다. '언젠가는 나도 죽을 것이고 당신도 죽을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는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있습니다.' 이 연결의 감각을 느껴보라. 그 존재가 누구인지 느껴보라. 그 사랑을 느껴보라... 아무도 무엇을 소유하지 못한다.


부모님을 잃을 수 있다는 상실감에 이런 명상조차도 하기 싫었는데, 오늘은 '언젠가는 나도 죽을 것이고'라는 말이 와닿는다. 내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부모님을 잃고 나서의 삶을 눈물로 지새울 것 같은 두려움과 걱정 때문인데, 사실은 나도 죽을 것이고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고민이 무의미한 것이겠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부모님을 소유할 수 없으며,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만이 남을 수 있다는 것.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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