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재우고 그 옆에서 새우 자세로 꾸역꾸역 전자책을 다 읽어나간 이유는 구구절절 공감이 되는 글귀들 때문이었으리라.
"이럴 거면 ('엄마 역할'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면) 왜 굳이 서울대까지 나왔어야 했나"하는 내 마음을 똑같이 말하고 있는 엄마들이 오조오억 명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쩌면 늘 좋은 성과를 내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이 엄마를 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와 실랑이를 하다 보면 소위 말하는 현타가 온다.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머리와 옷엔 아이의 이유식을 묻힌 채 똥기저귀를 가는 당연한 육아의 현실 속에서 스스로가 어딘가로 곤두박질친 듯한 감정을 절절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인생을 내 딸도 반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 나처럼 공부 너무 열심히 하지 않게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책 속의 누군가는 이러더라.
'가방끈 길고 뭐 공부 좀 잘했고 이런 여자들이 말년이 편치 않아. 힘들게 살아. 그러니 제일 좋은 거는 애가 참하고 성격 무난하고 예쁘면 돼요. 그냥 이렇게 어디 가서 내놓을만한 정도로 키우는 게 제일 좋아. 그렇게 보통 수준으로.'... 이런 말들이 딱 가슴에 와 닿게 되더라고.
보통으로 커서 보통으로 학교도 가고 그랬으면 삶이 더 편했을 것 같다는 인터뷰이의 말에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꿈을 가지고 살라고 했으면서.
그래서 열심히 하면 보상이 있을 것처럼 미친 듯이 달렸는데, 그 끝에는 커다란 허들이 있는 걸 발견한 기분.
그렇다고 아이에게 공부하지 마라, 이런 말을 할 만한 그 어떤 확신도, 신념도 용기도 아직 없는 나.
(내가 아들을 낳았더라면 이런 말에 공감을 하진 않았을 거라는 것만이 확실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려고 해 봐도,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인 강박에서 벗어나려고 아무리 의식적으로 노력해 보아도 힘든 날은 오늘처럼 불쑥불쑥 찾아온다.
아이의 앞에서 24시간 엄마의 역할이라는 옷을 입고 있으면서 결국 도돌이표처럼 나 자신을 채찍질하게 된다.
이 채찍질이 '뭐든 잘하겠다는 욕심'에 '좋은 엄마'라는 키워드를 만나면 '완벽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완성된다.
그럼 내가 육아 전문가라도 되려는 양 눈이 벌게져서 육아 서적을 읽어대고, 오은영 선생님과 조선미 선생님을 교주처럼 모시며 아이 훈육 열공모드에 들어갈 기세로 너튜브를 밤새 보게 되는 거다.
그렇게 또 한참의 시간을 보내면 엄마로서의 나만 있다. 엄마가 되기 전의 나라는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된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이 얼마나 소진되는지,
육아와 관련된 여러 상품들(교육, 서적 포함)이 선보이는 각양각색의 불안 마케팅 속에서 엄마란 존재가 얼마나 나약해지고, 불안해지는지 같은 것은 되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척하려고 해 봐도 나는 불완전하고 내 시간과 내 에너지, 내가 가진 금전적/인적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인간인 이상 '완벽함'이란 언제나 추구는 해도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내 육아에도 실수는 지금도, 앞으로도 필수 불가결로 따라올 것이다.
아이는 내 실수까지 흡수해 가며 무럭무럭 클 것이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나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볼 때와 똑같은 말을 할지도 모른다.
"쯧쯧. 부모가 잘못했네. 애는 죄가 없어."
나는 이제는 달리 말할 것 같다.
"엄마가 많이 고생했네. 고생했어."
자꾸 찾아오는 자괴감과 엄마 완벽주의는 내려놓고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자꾸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