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면서 책 읽는 엄마

육아 우울감, 실수에 대한 두려움. 이젠 작별하고 싶은데

by 샤엄마


이번 달로 아기가 태어난 지 벌써 1년.

지독한 우울감이 다시 날 찾아왔다.


육아 우울증, 코로나 우울증, 기후 우울증 다 같이 힘을 합쳐 찾아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마침내 몸 컨디션이 바닥까지 치닫은 오늘... 남편 앞에서 목 놓아 울었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엉엉 울고 나니 퉁퉁 부운 눈과 꽉 막힌 코와 목이 남았다.


스스로의 감정을 나도 모르겠기에, 정신을 추스르려 글을 써 본다.


내 감정을 추스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은 요즘 엄마들이 내놓고 있는 수많은 책이다.

<엄마로만 살지 않겠습니다>, <서울대 엄마들> ,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 같은 책들.

나도 자꾸자꾸 글 쓰고 싶다. 보는 사람이 위안이 되는 글을.


#서울대 엄마들

어디선가 나 같은 엄마들이 아기 옆에서 몸을 웅크리고 울면서 책을 읽겠지


얼마 전, <서울대 엄마들>이란 책을 홀린 듯이 다 읽었다.

아이를 재우고 그 옆에서 새우 자세로 꾸역꾸역 전자책을 다 읽어나간 이유는 구구절절 공감이 되는 글귀들 때문이었으리라.


"이럴 거면 ('엄마 역할'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면) 왜 굳이 서울대까지 나왔어야 했나"하는 내 마음을 똑같이 말하고 있는 엄마들이 오조오억 명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쩌면 늘 좋은 성과를 내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이 엄마를 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와 실랑이를 하다 보면 소위 말하는 현타가 온다.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머리와 옷엔 아이의 이유식을 묻힌 채 똥기저귀를 가는 당연한 육아의 현실 속에서 스스로가 어딘가로 곤두박질친 듯한 감정을 절절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인생을 내 딸도 반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 나처럼 공부 너무 열심히 하지 않게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책 속의 누군가는 이러더라.

'가방끈 길고 뭐 공부 좀 잘했고 이런 여자들이 말년이 편치 않아. 힘들게 살아. 그러니 제일 좋은 거는 애가 참하고 성격 무난하고 예쁘면 돼요. 그냥 이렇게 어디 가서 내놓을만한 정도로 키우는 게 제일 좋아. 그렇게 보통 수준으로.'... 이런 말들이 딱 가슴에 와 닿게 되더라고.

보통으로 커서 보통으로 학교도 가고 그랬으면 삶이 더 편했을 것 같다는 인터뷰이의 말에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꿈을 가지고 살라고 했으면서.

그래서 열심히 하면 보상이 있을 것처럼 미친 듯이 달렸는데, 그 끝에는 커다란 허들이 있는 걸 발견한 기분.

그렇다고 아이에게 공부하지 마라, 이런 말을 할 만한 그 어떤 확신도, 신념도 용기도 아직 없는 나.

(내가 아들을 낳았더라면 이런 말에 공감을 하진 않았을 거라는 것만이 확실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려고 해 봐도,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인 강박에서 벗어나려고 아무리 의식적으로 노력해 보아도 힘든 날은 오늘처럼 불쑥불쑥 찾아온다.

아이의 앞에서 24시간 엄마의 역할이라는 옷을 입고 있으면서 결국 도돌이표처럼 나 자신을 채찍질하게 된다.


이 채찍질이 '뭐든 잘하겠다는 욕심'에 '좋은 엄마'라는 키워드를 만나면 '완벽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완성된다.

그럼 내가 육아 전문가라도 되려는 양 눈이 벌게져서 육아 서적을 읽어대고, 오은영 선생님과 조선미 선생님을 교주처럼 모시며 아이 훈육 열공모드에 들어갈 기세로 너튜브를 밤새 보게 되는 거다.

그렇게 또 한참의 시간을 보내면 엄마로서의 나만 있다. 엄마가 되기 전의 나라는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된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이 얼마나 소진되는지,

육아와 관련된 여러 상품들(교육, 서적 포함)이 선보이는 각양각색의 불안 마케팅 속에서 엄마란 존재가 얼마나 나약해지고, 불안해지는지 같은 것은 되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척하려고 해 봐도 나는 불완전하고 내 시간과 내 에너지, 내가 가진 금전적/인적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인간인 이상 '완벽함'이란 언제나 추구는 해도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내 육아에도 실수는 지금도, 앞으로도 필수 불가결로 따라올 것이다.

아이는 내 실수까지 흡수해 가며 무럭무럭 클 것이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나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볼 때와 똑같은 말을 할지도 모른다.

"쯧쯧. 부모가 잘못했네. 애는 죄가 없어."


나는 이제는 달리 말할 것 같다.

"엄마가 많이 고생했네. 고생했어."


자꾸 찾아오는 자괴감과 엄마 완벽주의는 내려놓고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자꾸 말해주고 싶다.

"고생한다. 고생해. 너 자신도 좀 잘 챙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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