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58분, 다각 다각 소리를 줄이려고 애쓰며 키보드를 친다.
훗날 ‘이 때는 참 이런 게 힘들었지. 지금은 훨씬 나아’, 하고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임신, 출산을 거치며 17킬로그램이 쪘고, 출산 후 빠진 7킬로그램을 빼고도 아직 10킬로가 남았다.
지난주 토요일에 아기 50일 사진 촬영을 위해 외출하면서 처음으로 임부용 바지가 아니라 임신 전 입었던 청바지를 꺼내보았다.
넉넉하고 편하게 맞았던 보이프렌드진이 허벅지에서부터 올라가지 않는 것에 이렇게 큰 충격을 받을 줄 알았더라면 시도도 하지 않았을 것을.
내가 가진 옷 태반을 입을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오늘처럼 몸이 힘든 날이면 내 몸이 예전으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넌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새벽 2시에 아기 수유를 하고 잠들지 못하고 이런 불안한 생각에 파랗게 새벽을 새고 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산부인과에 가서 산후 검진을 받아야 한다.
나름 성실한 환자로써 요새 몸 상태를 점검해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리려고 곰곰이 몸을 되짚어 보면서 메모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이 났다.
새벽 수유로 인해 시달리는 만성 수면부족 때문인지 제대로 아프게 돋은 혓바늘.
수유와 둥가 둥가 때문에 단단하게 굳은 목과 어깨는 대못을 박아놓은 것처럼 욱신거린다.
옆으로 돌아눕지 못할 정도로 아픈 골반.
손 끝에서 발 끝까지 온몸의 관절은 뚜둑 거리는 소리를 내며 삐걱대고,
거울에 비치는 내 살찐 몸이 끔찍하다.
일 년 반 동안 일주일에 두 번 꾸준히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차곡차곡 쌓아 올렸던 근육들은 10개월 만에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내 몸이 다 무너진 느낌이다.
엉덩이와 허벅지에는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셀룰라이트가 응어리져 있다.
이거, 없어지긴 하는 걸까?
설상가상으로 아기 태열 때문에 집을 춥게 하면서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았는지 면역력이 약해져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과거에 무리해서 야근할 때 생겼던 사타구니 종기가 재발해서 커다랗게 곪아 올랐다.
열이 펄펄 나고 아프더니 그래도 요 이틀간 조금 가라앉았다.
자연적으로 없어질 수 있는 크기가 도저히 아니라서 가족 도움을 받아 짬을 내서 피부과에 가 봤더니 아무래도 살을 찢고 수술을 해야 할 거 같단다.
이미 몇 번 이 부위에 칼을 댔던 적이 있어서 더 무섭다.
아픈 걸 잘 참는 편인데 마취도 안 하고 예민한 부위의 생살을 칼로 찢고 고름을 짜 내는데...
이게 어찌나 아픈지 눈물이 찔끔찔끔 났던 게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다.(참고로, 난 출산 때 안 울었다... 그냥, 그렇다고.)
팬티가 딱 걸치는 라인에 생긴 종기라 쓸리면 덧나고 걷다가 악 소리가 나고 그렇다.
게다가 부위가 부위인지라 여의사에게 진찰을 받는다 한들 그저 부끄럽고 민망한 것이다.
병원에 가서 모유수유 중이라 했더니 그러면 지금은 수술 후 써야 하는 항생제 약 같은 걸 쓸 수가 없단다.
일단 염증이 좀 가라앉는지 추이를 보라면서 베타딘(빨간약)과 에스로반 연고 처방만 해 주길래 이걸 가지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긴 한숨이 났다.
일단 지금은 칼을 안(못) 대어 고통을 피했기에 나온 안도의 한숨인지,
아니면 이도 저도 제대로 처치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해서 나온 한숨인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임신 기간 내내 보들보들했던 허벅지와 종아리 피부는 요 며칠 사이 아주 엉망이 되었다.
두드러기인지, 모공각화증인지, 출산 후 소양증 증세인지 잘 모르겠지만 온통 오돌토돌하게 돋아난 뭔가로 뒤덮여 버렸다.
내 몸인데 내 몸 같지가 않다.
거친 피부를 손으로 쓸어 보니 그저 마음이 욱신욱신 아프다.
아기 낳고 나서도 조리원에서부터 회음부 통증이랑 지독한 두통으로 무척 고생했는데 지금 겪는 건 또 다른 통증이다.
다들 이렇게 아기를 낳고 길렀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나는 지금 왜 이렇게 힘들고 서럽고 눈물이 날까.
난 나약하고 엄살쟁이인 걸까.
아니면 수많은 엄마들도 제각각 다른 위치에서 힘들어하면서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을 그저 버텨냈던 것일까.
바닥을 친 몸 상태를 관조하듯이 기록하면서 지금 새삼 깨닫고 있다.
내가 내 몸을 요 몇 주간 안 살폈구나.
내 몸이 힘들어하는 걸 돌보지 않아서 이렇게 비명을 지르고 있는 거구나.
좀 챙겨야지, 내가 내 몸을 챙겨야지 하는 다짐을 해 본다. 그럼 차차 나아질 거라고 희망도 가져본다.
아, 오늘 새벽은 진짜 제대로 청승이다.
새파란 새벽을 접고 이제 자련다.
좀이라도 회복하고 병원엘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