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과 밥의 신화

미안한데 돈으로 해결할게요

by 샤엄마

내 어머니는 그러셨다.

요리 한 번 안 해보고 시집가도 괜찮다고, 자식새끼 안 굶기려 자연히 밥은 다 하게 되니까 걱정 말라고.


이유식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재워놓고 새벽 1시까지 불 앞에서 냄비를 휘저으면서 뿌듯해했었다.


아이가 그걸 잘 먹든 말든, 죽 형태로 된 밥은 만드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유식 책을 보고 야채와 고기의 조합을 선택하여 뚝딱 만들어 두었다가 데워 주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헌데 아이가 지독 시리 죽을 먹지 않는 순간이 왔고, 해결책으로 유아식(간을 하지 않은 밥과 국, 반찬으로 이루어진 식사)을 시작하게 되면서부터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아이는 뒤집고 기는 것을 넘어 주변의 것을 잡고 서서 게걸음을 했고, 발을 굴렀고, 내 몸을 타 넘었다.

점점 활동적이 되어가는 아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사고를 수습하는 것은 점점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하루하루가 힘에 부쳤다.

나에게는 지금까지 했던 것 이상의 노동력을 투입해서 밥을 할 힘 같은 게 없었다. 아니, 점점 그 힘도 잃어가고 있었다.

내가 먹을 밥도 못하고 있다 보니, 내 자식새끼 입에 들어갈 밥을 할 기운이 없었던 것이다.


다.

이유식 책만 몇 권이 쌓여 있는데 책장을 들춰보기도 싫다.



떠먹여 주면 입을 도리 젓고 숟가락을 빼앗아가는 통에 일찌감치 아이가 스스로 먹게 해주고 있던 터였다.

안 그래도 식사시간마다 치우는 것이 고역이어서 주름이 늘어가던 차에 이젠 메뉴 고민까지 해야 한다니.


고심해서 정한 메뉴를 정신없이 만들어 대령하였을 때 한 입도 안 먹고 바닥으로 던지기 놀이를 하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니 힘이 쭉 빠졌다.

혹여 조금씩 집어 먹더라도 얌전히 먹는다는 건 감히 기대하기 어려운 월령이다.

결국 아이가 먹는 그 옆에서 식판을 뒤집어엎지 못하게 잡아채고, 캑캑 댈 때 물컵을 입에 대 드리는 식으로 수발을 들고 있다 보면... 나는 식사를 하기가 불가능했다.


온몸에 덕지덕지 밥을 바른 아기를 의자에서 꺼내어 씻기고 몸에 로션을 발라주고 토닥토닥 낮잠을 재우고 나면 점심 때는 훌쩍 지나 있었다.


얼굴로 밥 먹는 아기가 여기 또 한 명 있네


아이가 낮잠 자는 사이에 살금살금 나와서 먹어보려고 해도, 옆에 엄마가 꼭 붙어있어야 깊이 자는 내 딸.

엄마가 없으면 벌떡 일어나 앉아 울어재끼는지라 아이가 제대로 곯아떨어진 것 같은 눈치면 미션 임파서블의 탐 크루즈 급으로 침대를 조용히 기어 내려와야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었다.

3분이면 데워지는 냉동 볶음밥을 데워 마시듯 퍼먹고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가면 그날 점심은 성공한 것으로 본다.

실패한 날은 어떡하냐고? 안 먹거나, 과자 같은 걸 조금 주워 먹거나 했다.

사실 거의 안(못) 먹었다 보면 맞을 것이다.

덕분에 임신 때 쪘던 살들이 쭉쭉 빠지긴 했는데 별로 기쁘지가 않다.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는데 저녁 차릴 기운 같은 게 남아있을 턱이 없었다.

일하고 들어온 남편도 기운이 없기는 매 한 가지였다.

결국 대강 햄버거 같은 걸로 저녁 끼니를 때우면 그날 하루 뭘 먹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게 되어버렸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니 점점 체력이 고갈되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에서 탈출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결국 매지컬 캐시 파워.

하여 나는 돈으로 유아식 반찬을 주문해서 먹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 새끼 밥도 제대로 못 해 먹이는 엄마가 된 것 같아 한껏 죄스러웠다.

그런데 반찬 덕에 제때 제대로 세 끼를 갖춰 먹이고 나도 스트레스를 덜 받고 집안을 정돈할 수 있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불 앞에서 다리에 붙어 칭얼거리는 아이에게 혹시 뜨거운 물이 튈까 노심초사하며 국을 휘젓지 않아도 된다.

냉장고 안에 가득한 식재료를 가지고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게 있는가 골머리를 싸안고 사전 두께의 이유식 책을 뒤적거리지 않아도 된다.

그 편리함이 나에게 주는 심리적 해방감은 정말 컸다.


모성을 가지고 자식의 밥을 해 주는 어머니.

아빠가 밥 하는 건 '오늘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처럼 따로 이름 붙여질 정도로 특별한 일이지만

매일 먹는 된장국을 만들어주는 엄마의 일은 특별하다는 취급을 받지 못한다.

늘 먹던 바로 그 맛! 어머니 손맛! 이런 방향에서의 특별함은 부여받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바로 그 밥 해주는 엄마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고 나니 숨이 쉬어졌다.


일단 지금은 좀 살고 봐야겠다 싶었다.

죄책감이 생기려고 하면 싹둑 잘라내야 할 텐데 이렇게 모성과 밥 신화로 인해 생겨난 죄책감에 대해 구구절절 쓰고 있다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김치도 사 먹는 사람이 많고 어른 반찬 사 먹는 게 이상한 게 아니듯 아이 반찬 역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을 선택한 것에 왜 내가 죄책감을 가져야 한단 말인가?




PS. 이 글을 쓰고 한 달 정도 묵혀두었다가 다시 들여다봤다. 지금 나는 일부 반찬은 사서 먹이고 일부 반찬은 그때그때 간단히 만들어 먹이고 있다.

사놓은 반찬도 묵은 반찬이 되면 아이가 잘 먹질 않아서다.

내가 힘들어 죽겠어서 못하겠다고 했지만, 아이가 바로 데쳐서 간단히 무쳐준 시금치무침을 열심히 먹는 걸 보고 조금씩 마음이 바뀌었다.

부모가 이끄는 대로 아이는 바뀐다 생각하지 말라는 육아 조언을 어디선가 들었었다.

맞다. 나는 내가 만든 반찬을 먹어주고 좋아해 준 아이에게 힘을 얻어 바뀌어 간다.


PS2. 남편은 우리가 먹을 밥에 대해서도, 아이가 먹을 밥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해질 때가 있었다.

그런 내 맘을 말한 적도 없건만 요새 종종 남편이 간단한 아침과 저녁 메뉴 일부를 만들어 주고 있다.

주말엔 이유식 책을 주며 이 메뉴로 아이 밥 좀 만들어 달라고 해 보았더니 흔쾌히 오케이 하셔서(물론 다른 삼천포로 빠져나가서 실행은 안 되었지만) 어쩌면 내가 주방에 남편의 자리를 안 내어준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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