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주변에 알렸을 때

Feat. 사람들의 반응

by 샤엄마

튼튼이가 내 배속에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멍하니 주말을 보냈다.

월요일, '출근하기 싫어' 송을 부르면서 또다시 출근한 나를 뒤로 하고

남편은 서점에 달려가서 <임신 출산 육아 대백과>라는 일명 '노란 책'을 사 왔다.


육아계의 베스트셀러라나 뭐라나.

(둘이 같이 얼굴을 맞대고 열심히 공부해 보자며 야심 차게 사 왔지만 결국 이후 이 책의 주요 독자는 내가 되었다.)


9788915102019.jpg 이 책 홍보하는 거 아닙니다(...)


임신 확인증을 발급받은 2월 23일은 임신 7주 차 6일이 되던 날이었다.

책에 따르면 난 벌써 2개월 차 임산부였다.


아니, 벌써 아기가 이등신이 되었다니?!

입덧도 곧 시작할 거라니! 난 어떠려나?

오호, 칼슘을 많이 먹어야 하는구나 등등 등등.


임신을 한 순간부터 정말 새로운 세상이 열린 기분이었다.

알아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책을 읽다가 만난 단어 하나는 유독 우리 둘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유산".


그랬다. 아직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아기가 무사히 세상에 얼굴을 보일 때까지, 특히나 불안정한 임신 초기에는 유산을 주의해야 한단다.


매달 초엔 꼬박꼬박 홀로 밤 11시까지 야근을 불사하는 스트레스 상황에 몰리고,

나름 하드하게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던 열혈 대리의 마음에 불안이 꽃피는 순간이었다.


고민을 더 할 것도 없었다.

알리자.

임신 사실을 하루라도 빨리 직장을 비롯한 주변에 알려야 했다.






1. 친정과 시댁에 알렸을 때 (7주 차)

둘이 같이 산부인과에서 아기 심장소리를 들은 날,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갔다.

주문을 시켜 놓고 기다리는 시간에 자꾸만 입이 근질근질해져서 결국 우리는 전화기를 들었다.

친정과 시댁에서는 뭐 특별히 서술할 것 없이 하나같이 기쁘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니, 너희 도대체 왜 아이를 가졌니! 하고 말씀하실 분들이 아니니 당연하려나?

결혼한 지 2년 차. 내 나이는 어느새 서른둘.

어머니는 스물여섯에. 시어머니께선 스물여덟에 첫째 아이로 우리를 각각 낳으셨더랬다.

부모님 세대 때로 보면 늦은 거겠지만 지금의 사회 통념상으론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것 같은 내 나이.

언제, 몇 살에 결혼해야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둥 그런 것에 얽매이고 있진 않다. 그러나 함께 살기 시작한 2년이 아니라 20년, 40년 후를 생각하기 시작했으므로 아이가 자꾸 생각났다.

단 둘이 있을 때보다 더 큰 행복과 괴로움으로 삶의 진폭이 커지리라.

한 삶, 생명을 책임지는 것의 책임감. 그 힘듦을 걱정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내 마음이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우리에게 2세 계획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부모님들께서도 그러셨던 걸까.

친정아버지는 "벌써 할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거냐?"며 츤데레처럼 싫은 척을 했지만, 나이가 몇 갠데 그럼 이제 할아버지가 되어야지 무슨! 하는 내 말대꾸에 그냥 허허, 하고 마셨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양가 부모님들도 이 때는 멍하기만 하고 아직 실감을 못하셨던 게 분명하다.)



2. 회사에 알렸을 때 (9주 차)

두 달 전, 같은 팀 남성 동료분이 아내의 임신을 알게 되어 나를 비롯한 팀과 조직 내에 소식을 전했었다.

그때 남성 근로자(?)가 직장 내에서 아빠 됨을 주변에 알릴 경우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먼저 볼 수가 있었다.

이 부부 역시 계획임신이었고 많이 기다리던 아이였.

이 동료분과 가장 오래 함께 일했던 만큼 나름 무척 친하다고 속으로 자부하고 있었기에 신기하고 기쁘면서 동시에 왠지 모를 초조해지는 기분도 조금 느꼈더랬다.

아마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안 찾아오면 어쩌나, 아님 너무 늦게 찾아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던 거 같다.

이런 내 마음과 상관없이 주변의 반응은 날 포함한 친한 사람들은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모습.

그 외 나머지 중 일부 사람들에게서는 생각보다 아빠가 되는 그분의 역할 변화에 관심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간단한 덕담과 조언을 던지는 정도. 축하한다. 어른이 되는 거네. 차가 필요할 텐데, 100일까지는 힘들 거야 등등.

그럼 내가 임신을 공표했을 땐 어땠느냐 하면.

출산 예정월이 10월이라는 사실과 함께 임신 소식을 들은 선배들은 내 과장 승진이 밀리겠다며 안타까워하기부터 했다.

그랬다.

그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

난 아이를 내 몸으로 낳는 것이고, 그에 따라 출산휴가는 피할 수 없고 육아휴직도 (회사에서 쓸 수 있게만 해 준다면 쓰는 게) 당연한 것.

아이를 혼자 만든 것도 아닐진대 남편에게 육아휴직을 얼마나 쓸 수 있니? 같은 질문은 하지도 못했다.

하늘에 해가 있고 달이 있듯이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일은 분명 내가 아이를 품는다, 하나일 텐데 그 뒤를 연결해 가는 육아의 부분에 대해서까지 나도 내가 주양육자가 될 거라 생각했고 주변도 그리 생각하는 듯 보였다.

공표를 하게 된 순간부터 나는 인사평가 경쟁에서 제외된 존재가 되었다.

회사 10월 인사평가 시즌에 부재함으로써, (일은 8월 말까지 하지만) 승진을 할 수 없는 그런 존재.

마찬가지로 1년 휴직을 쓰고 돌아왔을 때도 11월 말일 테니 그때도 1년 놀고 온 자로써 고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말이 되기도 했다.

이런 골자로 안타까워하는 반응은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기에 특히나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나 보다.

나는 작년 말에 한 해 동안 일은 열심히 해 놓고 승진하지 못한 대리였기에 그랬을까.

만약 2019년에 내가 임신하지 않았다면, 과장 승진을 할 가능성이 큰 편이었기에 그러지 않았을까.

선배들은 내가 '엄마'되기에 성공함과 함께 '회사원'으로서도 성공했으면 해서 그런 말들을 하셨지 않을까.

그 마음을 알고 감사하면서도, 나와 다른 이야기를 들었던 동료분(남성)과 비교가 되어 입맛이 썼다.

갑자기 결혼할 때 몇몇 선배들이 하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자는 결혼하면 그 순간부터 회사에서의 커리어 경쟁에서 사실상 끝난 거야.


결혼과 육아를 세트로 봐서 그런 말들을 했던 걸까...?

그 외에 내가 들은 조언과 덕담(?), 주변의 반응은 예상과 대동소이했다.

그래도 굳이 꼽자면 거의 '몸조심해라'처럼 건강을 염려하는 말들이 제일 많았던 것 같다. 회사에서 배려받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받으라는 거. 단축근무나 병원 검진을 위한 공가 같은 것도 챙겨 받으라는 것.


네가 스스로와 아이를 지키지 않으면 안 돼. 회사는 널 지켜주지 않아.


한 선배가 몇 번이고 내게 신신당부하던 말이었다.

머릿속에 새기고도 비록 잘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일을 해야 하는데, 대체할 사람은 없을 때 책임감의 방향이 좀 삐뚤어져 있는 나같은 어른아이는 그냥 혼자서 하던 대로 하게 될 뿐이다.

맘카페를 뒤져 봐도 야근을 했다는 임산부들이 많아서 혼자서 알아서 체념한 뒤 난 매달 꼬박꼬박 야근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금지하고 있는 임산부 야근. 그런데 시스템에서는 잘만 신청이 되더라고. 그게 업무상 불가피한 경우는 임산부라도 야근을 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난 제대로 오해한 거다.

처음부터 주변에 알리려고 했던 목적이 뭔지 이쯤 가선 완전 까먹은 거다.

빡센 일 때문에 아기 건강을 해칠까 봐, 그게 걱정되었던 초보 엄마는 어디로 간 건지! 난 정말 바보였다.

그리고 이후에 뒤늦게 이 사실을 회사 인사담당자가 알게 되어 야근을 무식하게 해댔던 나와 야근을 승인해 준 우리 팀장은 꽤나 경을 치게 된다.(...)



3. 주변 친구들에게 알렸을 때 (11주 차~16주 차)

입에도 담기 싫은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까 봐 가능한 안정기에 접어들고 나서 주변에 널리 알리고 싶었다.

조금씩 커 가는 아이를 느끼면서 띄엄띄엄, 천천히 주변에 말하기 시작했다.

이때 가졌던 희망사항은 가능한 친구들에게 전화 연락을 해서 오랜만에 통화도 하고 소식도 전하는 거였다.

해외에서 거주 중인 친구, 해외 유학 가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 그리고 해외가 아니더라도 회사 다니느라 바빠서 일 년에 두어 번 보면 많이 보는 친구들.

누군가는 이런 인연을 진정한 친구라 할 수 없다고 비웃을 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무척이나 소중한 사람들이기에 가능한 찐하게 연락하고 싶었다고 하면 이유가 될까?

"친구야. 나 엄마 된다. 아기를 돌보면서 마음이 많이 힘들어진다는데... 네가 많이 보고 싶고 네 목소리 듣고 싶을 거 같다. 나 너에게 앞으로 좀 더 연락해도 되겠니?"라는, 그런 마음을 담아서 연락하고 싶었다고.

사실 평소에 자주자주 아무런 용건 없이도 그냥 전화해서 안부를 물었으면 전화를 하는 게 이렇게 어렵지 않았을 텐데. 요즘 세대 중에는 특히 전화공포증(포노포비아, Phonophobia)이 있는 사람이 많다던가?

나 역시 그런 사람인 건지, 업무에서는 필요하면 척척 하게 되는데... 이런 개인적인 소식을 전할 때는 전화가 아직도 참 어렵기만 하다.

미적미적, 결국은 마음먹은 것만큼 연락을 많이 하질 못했다.

메신저로 연락을 마무리하고 생존신고나 하는 SNS(인별그램)에다가 소식을 전하고 나서 많은 인사를 받았다. 비록 말 한마디라도 달다.

친구들이 쏟아내주는 "축하해!"라는 말은 늘 언제나 고맙고 또 고마운 말이다.

내 힘듬과 슬픔을 같이 해 주는 사람. 내 기쁨을 같이 기뻐하고 축하해 주는 사람.

내가 나무라면, 내 나무테의 둘레와 교집합점을 가진 오래된 나무들.

회사에서의 일로 얼마간 마음이 싱숭생숭했던 데다가 임신 초기 입덧으로 인해 '점점 엄마가 되어가는구나! 앞으로 10개월 후가 더 두려워!' 하며 몸서리치고 있던 차였다.

그런 나에게 전해져 온 친구들의 말은 사막에 내리는 단비처럼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다.


다만, 한 가지 느낀 점이 있었다. 소중한 친구의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지 말자, 하는 것.

임신이라는 바라던 상황 중에서도 내가 느끼고 있는 막막함과 불안감까지 소식을 전할 때 다 털어놓자는 것.

가정을 빨리 꾸리고 싶어 하던 한 친구를 안다.

공부에 집중하느라 다소 연애도 결혼도 미루어 둔 상황인데 동갑내기인 내가 아이를 낳는다고 전화를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친구가 농담처럼 나는 언제 결혼하고 언제 자식을 보나, 하고 한탄조로 말을 하는 것이다.

그 친구의 마음이 뒤늦게 이해가 되어 속으로 아차! 했다.

바로 내가 두 달 전에 같은 팀 동료로부터 임신 소식을 들으면서 싱숭생숭한 감정을 느껴 놓고선 바보같이 그새 까먹고 있었다.

한 인지심리학자가 그런 말을 했다. 대한민국은 철저한 관계주의 사회라고. 관계가 너무나 중요한 사회이고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나아가는 게 행복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각자 인생이라는 긴 길을 걸어가는 것에는 모두 자신만의 방향과 속도가 있는 법이니까 혹시나 혹여라도 조급해하지 말라고... 여러가지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지만 알아도 쉽지 않은 일인 걸 안다.

내가 그랬는걸 뭐.

그래서 웃으며 그저 그랬다.


친구야. 나도 처음이라 너무 떨린다. 막막하고 이렇게 갑자기 낳아도 되나 싶고...
누군가는 심지어 그러더라. 내 회사 생활 이제 끝났다고.
내가 먼저 해 보고 말해 줄게. 이게 어떤 일인지.
뭐 어떻게 인생이 흘러가게 되는 건지.
그럼 그거 보고 너한테 맞게 해 보는 거야. 오케이?




임신이라는 이 하나의 사건만으로도, 나는 이렇게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삶에 큰 궤도 변화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나도 앞으로의 하루하루가 기대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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