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사람들의 반응
아이를 혼자 만든 것도 아닐진대 남편에게 육아휴직을 얼마나 쓸 수 있니? 같은 질문은 하지도 못했다.
나는 작년 말에 한 해 동안 일은 열심히 해 놓고 승진하지 못한 대리였기에 그랬을까.
만약 2019년에 내가 임신하지 않았다면, 과장 승진을 할 가능성이 큰 편이었기에 그러지 않았을까.
선배들은 내가 '엄마'되기에 성공함과 함께 '회사원'으로서도 성공했으면 해서 그런 말들을 하셨지 않을까.
그 마음을 알고 감사하면서도, 나와 다른 이야기를 들었던 동료분(남성)과 비교가 되어 입맛이 썼다.
갑자기 결혼할 때 몇몇 선배들이 하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자는 결혼하면 그 순간부터 회사에서의 커리어 경쟁에서 사실상 끝난 거야.
결혼과 육아를 세트로 봐서 그런 말들을 했던 걸까...?
그 외에 내가 들은 조언과 덕담(?), 주변의 반응은 예상과 대동소이했다.
그래도 굳이 꼽자면 거의 '몸조심해라'처럼 건강을 염려하는 말들이 제일 많았던 것 같다. 회사에서 배려받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받으라는 거. 단축근무나 병원 검진을 위한 공가 같은 것도 챙겨 받으라는 것.
네가 스스로와 아이를 지키지 않으면 안 돼. 회사는 널 지켜주지 않아.
한 선배가 몇 번이고 내게 신신당부하던 말이었다.
머릿속에 새기고도 비록 잘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일을 해야 하는데, 대체할 사람은 없을 때 책임감의 방향이 좀 삐뚤어져 있는 나같은 어른아이는 그냥 혼자서 하던 대로 하게 될 뿐이다.
맘카페를 뒤져 봐도 야근을 했다는 임산부들이 많아서 혼자서 알아서 체념한 뒤 난 매달 꼬박꼬박 야근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금지하고 있는 임산부 야근. 그런데 시스템에서는 잘만 신청이 되더라고. 그게 업무상 불가피한 경우는 임산부라도 야근을 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난 제대로 오해한 거다.
처음부터 주변에 알리려고 했던 목적이 뭔지 이쯤 가선 완전 까먹은 거다.
빡센 일 때문에 아기 건강을 해칠까 봐, 그게 걱정되었던 초보 엄마는 어디로 간 건지! 난 정말 바보였다.
그리고 이후에 뒤늦게 이 사실을 회사 인사담당자가 알게 되어 야근을 무식하게 해댔던 나와 야근을 승인해 준 우리 팀장은 꽤나 경을 치게 된다.(...)
3. 주변 친구들에게 알렸을 때 (11주 차~16주 차)
입에도 담기 싫은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까 봐 가능한 안정기에 접어들고 나서 주변에 널리 알리고 싶었다.
조금씩 커 가는 아이를 느끼면서 띄엄띄엄, 천천히 주변에 말하기 시작했다.
이때 가졌던 희망사항은 가능한 친구들에게 전화 연락을 해서 오랜만에 통화도 하고 소식도 전하는 거였다.
해외에서 거주 중인 친구, 해외 유학 가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 그리고 해외가 아니더라도 회사 다니느라 바빠서 일 년에 두어 번 보면 많이 보는 친구들.
누군가는 이런 인연을 진정한 친구라 할 수 없다고 비웃을 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무척이나 소중한 사람들이기에 가능한 찐하게 연락하고 싶었다고 하면 이유가 될까?
"친구야. 나 엄마 된다. 아기를 돌보면서 마음이 많이 힘들어진다는데... 네가 많이 보고 싶고 네 목소리 듣고 싶을 거 같다. 나 너에게 앞으로 좀 더 연락해도 되겠니?"라는, 그런 마음을 담아서 연락하고 싶었다고.
사실 평소에 자주자주 아무런 용건 없이도 그냥 전화해서 안부를 물었으면 전화를 하는 게 이렇게 어렵지 않았을 텐데. 요즘 세대 중에는 특히 전화공포증(포노포비아, Phonophobia)이 있는 사람이 많다던가?
나 역시 그런 사람인 건지, 업무에서는 필요하면 척척 하게 되는데... 이런 개인적인 소식을 전할 때는 전화가 아직도 참 어렵기만 하다.
미적미적, 결국은 마음먹은 것만큼 연락을 많이 하질 못했다.
메신저로 연락을 마무리하고 생존신고나 하는 SNS(인별그램)에다가 소식을 전하고 나서 많은 인사를 받았다. 비록 말 한마디라도 달다.
친구들이 쏟아내주는 "축하해!"라는 말은 늘 언제나 고맙고 또 고마운 말이다.
내 힘듬과 슬픔을 같이 해 주는 사람. 내 기쁨을 같이 기뻐하고 축하해 주는 사람.
내가 나무라면, 내 나무테의 둘레와 교집합점을 가진 오래된 나무들.
회사에서의 일로 얼마간 마음이 싱숭생숭했던 데다가 임신 초기 입덧으로 인해 '점점 엄마가 되어가는구나! 앞으로 10개월 후가 더 두려워!' 하며 몸서리치고 있던 차였다.
그런 나에게 전해져 온 친구들의 말은 사막에 내리는 단비처럼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다.
다만, 한 가지 느낀 점이 있었다. 소중한 친구의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지 말자, 하는 것.
임신이라는 바라던 상황 중에서도 내가 느끼고 있는 막막함과 불안감까지 소식을 전할 때 다 털어놓자는 것.
가정을 빨리 꾸리고 싶어 하던 한 친구를 안다.
공부에 집중하느라 다소 연애도 결혼도 미루어 둔 상황인데 동갑내기인 내가 아이를 낳는다고 전화를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친구가 농담처럼 나는 언제 결혼하고 언제 자식을 보나, 하고 한탄조로 말을 하는 것이다.
그 친구의 마음이 뒤늦게 이해가 되어 속으로 아차! 했다.
바로 내가 두 달 전에 같은 팀 동료로부터 임신 소식을 들으면서 싱숭생숭한 감정을 느껴 놓고선 바보같이 그새 까먹고 있었다.
한 인지심리학자가 그런 말을 했다. 대한민국은 철저한 관계주의 사회라고. 관계가 너무나 중요한 사회이고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나아가는 게 행복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각자 인생이라는 긴 길을 걸어가는 것에는 모두 자신만의 방향과 속도가 있는 법이니까 혹시나 혹여라도 조급해하지 말라고... 여러가지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지만 알아도 쉽지 않은 일인 걸 안다.
내가 그랬는걸 뭐.
그래서 웃으며 그저 그랬다.
친구야. 나도 처음이라 너무 떨린다. 막막하고 이렇게 갑자기 낳아도 되나 싶고...
누군가는 심지어 그러더라. 내 회사 생활 이제 끝났다고.
내가 먼저 해 보고 말해 줄게. 이게 어떤 일인지.
뭐 어떻게 인생이 흘러가게 되는 건지.
그럼 그거 보고 너한테 맞게 해 보는 거야. 오케이?
임신이라는 이 하나의 사건만으로도, 나는 이렇게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삶에 큰 궤도 변화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나도 앞으로의 하루하루가 기대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