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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엄마가 됩니다
제가 엄마가 된다고요?
30대 어른아이가 뱃속 아이의 존재를 깨닫게 된 과정과 감상
by
샤엄마
Sep 24. 2019
때는 바야흐로 2019년 1월 말에서 2월 초.
아직 찬 바람이 쌩쌩 부는 한겨울이었다.
첫 번째 단서. 남편과 함께 큰 맘먹고 간 스페인 여행에서 느낀 유별난 피로감.
어렵게 휴가를 내어, 2주 넘는 일정으로 가 본 스페인에서의 날들은 소매치기를 우려하며 떨었던 것이 무색하게도 하루하루가 편안했고 즐거웠다.
매일 잠들 때마다 '아, 오늘 정말 즐거웠어! 내일도 많이 먹고 놀아야지!'라는 다짐을 절로 하게 될 만큼 더 열심히 즐기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샘솟았다.
그러나... 서른을 넘긴 나이 탓이었을까?
마음과는 달리 어찌나 몸이 피곤하던지. 미열이 올라오는 느낌과 노곤노곤 삐걱삐걱 대는 몸.
타파스와 함께 매일 마신 맥주 탓인가 싶어 맛있게 마시는 남편 앞에서 군침을 삼키며 환타를 시켜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기도 해 봤다.
쌀쌀한 스페인 날씨에 감기가 오려는 건가 하고 따뜻한 핫팩을 껴안고 잠들어보기도 했다.
심지어 여행 일정을 여유롭게 다시 짜 보아도 피로는 쉽게 풀리질 않았다.
결국 여행 후반부, 그라나다에서 세비야로 이동하면서 절정에 달한 피로감.
(사실 세비야에서의 기억이 좀 희미하다. 진정... 피곤했나 보다.ㅜㅜ)
몇 개의 소도시를 가 보는 걸 포기하고 마지막 도시 마드리드로 향했고 이 큰 도시에서도 쇼핑과 식도락가 놀이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이때 이상한 걸 느꼈어야 했는데!
두 번째 단서. 미친듯한 졸림과 두통.
스페인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 바로 이어서 설 연휴가 있었기 때문에 부랴부랴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갔다. 친정에서 제사를 올리고 시댁에 가서 예배를 올리는, 그런 다문화주의적(?) 명절 치르기를 하고 시부모님과 함께 맛있는 음식, 맛있는 와인을 한 잔 하던 저녁이었다.
식탁에 앉아 한창 열심히 대화를 하다가 잠시 말을 쉬던 그때, 내가 시부모님 앞에서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게 아닌가!
왜 이러지? 여행 때 쌓인 피로가 명절에도 다 안 풀려서? 아님 스페인과 한국 간 시차 적응하느라 그런가.
단순한 나는 그냥 그렇게만 생각했다.
많이 피곤하냐며 방에 들어가서 먼저 누으라는 어른들 말씀에 평소 같으면 손사래를 치며 더 같이 어울리려고 했을 텐데 어찌나 강력하게 몰려오는 졸음인지.
난 결국 수마를 이기지 못하고 침대로 들어가 뻗고 말았다.
졸림은 자고 일어난 다음 날에도 내 몸을 떠나질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서울에 올라가는 날 아침에 강력하게 찾아온 두통.
몸 컨디션이 안 좋구나. 에휴. 이제 장거리 여행도 못 하겠다.
난 그런 생각을 하면서 결국 타이레놀 한 알을 무심히 삼키게 된다. (아, 안돼!!)
세 번째 단서. 나도 몰랐던 내 생리 지연
당시 2월 초엔 한창 <왕좌의 게임>의 대미를 장식하는 시즌8이 4월부터 시작한다고 해서, 정주행을 다시 시작하는 움직임들이 한창이었다.
넷플릭스와 올레 TV, 유튜브를 고루고루 보고 있던 남편과 나 역시 기대에 들떠 시즌1부터 다시 야심 차게 정주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왜 있잖은가. 시즌1에서 흥미진진한 관람 포인트 중에 하나는 억압받아 자라며 수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대너리스가 칼 드로고랑 혼인 후 포풍 성장하게 되는 거잖은가?
그때 꽤나 야시시(=_=*)한 장면도 나오고 대너리스가 드로고의 아이를 품게 되어 자신감을 얻는 장면도 나오는데 말이다.
대너리스 성장기는 다시 봐도 역시 엄지 엄지 척! 크으! 재밌어!! 하면서 감탄을 하고 있던 나한테 갑자기 남편이 의미심장하게 이런 말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달 생리 많이 늦어지고 있지 않아? 혹시 임신 아닐까?"
칼리시, 임신하신 거 같아요!
... 응? 이 인간아, 맥주 마시면서 보고 있는데 그러면 어떡해!
화면에서는 대너리스가 위대한 칼이 태어날 거예요~ 이러고 있고. 허허.
황당해하면서도 생리주기 트래커 어플을 켜서 확인해 보니 정말 예정되어 있던 생리 시작일보다 1주일은 더 지난 상황이었다.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무서운 우리 남편. 역시 굳이 분류하자면 내가 곰과이고 남편이 여우과다.
부부는 보던 드라마도 끊고 서둘러 새벽에 편의점에 가서 임신테스트기를 사 왔고... 결국 두 줄을 확인한 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말았다.
너무 신기해서 남편한테 도대체 어떻게 알았냐고 했더니 자긴 왠지 촉이 왔단다. 그러면서 우쭐해하는 것이다.
왜 괜히 흥분되죠? 이 술렁술렁한 마음은 뭐죠?
어떻게 보면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왕좌의 게임> 정주행이 아닌가 싶다.
이 드라마가 아니었으면 난 정말 이후에도 한참은 몰랐을 게 분명하다.
아기는 여러 방법으로 자신이 찾아왔단 걸 알려주고 있었는데 그걸 캐치해내지 못했던 당시의 나.
어찌 되었건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만 봤을 뿐, 전문의의 공증을 받은 건 아니니까- 하며 당분간 나의 임신은 남편과 나. 이렇게 둘만 알고 있는 비밀이 되었다.
이 때는 아직 어리벙벙, 실감이 잘 나지 않는 상황.
있는 대로 연차를 땡겨서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주말을 택해 둘이 같이 산부인과를 다녀왔다.
2019년 2월 9일 토요일에는 아기집만 덩그러니 확인이 되었지만, 그로부터 2주 후 2019년 2월 23일 토요일에는 작은 새끼 새 같이 생긴 아기의 모습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심장소리를 들려주는데 난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
그때의 감상은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아기에게 뭘 잘못한 것도 아니고(?) 고마운 것도 아니고(?) 무서운 것도 아닌데(...??).
굳이 말하자면 감동? 뭔가 벅참이 있었던 듯하다.
남편과 나는 계획임신을 했다고 봐야 하는 편이다.
이제 아기를 가져볼까, 하고 엽산을 꾸준히 먹고도 있었고 피임도 조절을 했으니까.
다만 이렇게 빨리 성사(?)될 줄은 몰랐을 뿐.
일중독자로 스트레스를 강하게 받는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난 내가 임신이 잘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기 태명은 튼튼이다. 그 옛날 밭에 굴러다니는 개똥처럼 흔하디 흔했다는 아명 '개똥이'처럼, 맘 카페에서 검색하면 같은 태명의 아가를 1000명은 쉬이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흔하디 흔한 이름이다.
뭐, 자연스럽게 떠오른 걸 어쩌란 말인가.
하루에 2만보씩도 걸어 다녔던 데다 10여 시간 비행기를 타야만 했던 스페인 여행에서도 꾹 잘 붙어 있어 주었고,
그 직후 명절 강행군과 새벽까지 드라마를 보던 엄마의 뱃속에서 문제없이 잘 있어준 것을 보며 "이야, 우리 아기 참 튼튼하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 것을.
그리고 모든 엄마들의 마음과도 같이 앞으로도 그렇게 튼튼해주었으면 하는 것을.
아기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을 때 느낀 감정을 쓰자면 참 복잡하다.
아기가 주는 힘듬과 행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겠다는 각오가 포함된 기쁨이 절반.
내가 한 명의 인간을 잘 키워낼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한 불안이 절반.
아직은 성별을 모르기에 딸이 될지 아들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이 아이가 세상에 나오게 되는 것은 오로지 엄마와 아빠인 우리의 선택이었을 뿐 아이의 선택은 아닌 거다.
2019년에 태어나 앞으로의 대한민국에서, 딸 혹은 아들로 살아간다는 것.
쉬운 일은 아닐 터였다.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아이가 이 나라에서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대학생일 때 민주주의와 노동자 인권, 페미니즘을 공부했을 때는 사회는 아직 멀고 먼 곳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공부는 해도 진심으로 뛰어들지 못했었다.
장학금 받기에 골몰했고, 1시간 뒤에 있을 과외 수업을 위해 학생 집으로 달려가기 바빴다.
소위 '운동권'의 극단에 있는 사람들은 정치와 같은 떡밥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심지어 환멸 하기도 했다.
사회에 나가서 내가 직접 이 대한민국 사회의 톱니바퀴 속 어딘가에 몸을 담으니 모든 것이 바뀌었다.
엮이지 않는 것이 없었다. 주택정책, 조세정책, 일자리 정책을 포함해서 기타 등등 기타 등등.
모든 것이 내 일과 연관이 있었고, 내 미래와 연결되어 있었다.
8년 차 회사원, 8년 차 사회인.
난 회사에서 겪은 부당한 일에 불만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으며, 문제가 있다고 보이는 사회 현안 이슈 기사는 열심히 퍼 날랐으며, 혼자 광화문으로 나가 촛불을 들기도 했다.
세월호 사건 때는 정말 좌절스러웠다.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 비통함에 떨었다.
내가 뭘 할 수 있겠냐고 한탄하기보다 뭐라도 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일들이 자꾸자꾸 생겼다.
이제 10개월 후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의 온 세계이자 엄마가 될 나.
나는 아이의 둥지가 되어 얼마나 바뀔 것인가.
워킹맘 육아는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 재정적인 부분에 문제는 없을까 하는 고민, 아이를 어떻게 하면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미정립 된 양육 방향이 가져오는 괴로움은 기본이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나 혼자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얼마나 많을 것이며, 사랑하는 만큼 느끼게 될 괴로움이 몇 배나 더해질 것인가.
생각이 복잡해지기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튼튼이가 우리 곁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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