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토반도 지진과 자연재해에 일본 기업이 대비하는 법
2024년 새해를 일본에서 맞이했다. 작년에는 후쿠오카에서, 올해는 도쿄에서 보내는 두 번째 새해다. 올해는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새해를 보내리라 다짐했기에 아침부터 부지런히 열차를 타고 야마나시 고후(甲府)로 향했다.
고후역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카이젠코지(甲斐善光寺)로 이동했다. 신사에 도착하니 새해 첫 참배를 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도 참배를 하고 신사 도장(御朱印)을 받았다. 무려 기간한정(!) 일본에 온 이후로 신사에 갈 때면 도장을 수집하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御朱印:신사나 절에서 받을 수 있는 도장. 신사에 참배를 한 증표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참배한 날짜, 신사 이름, 모셔진 신의 명칭이 쓰여 있고 가운데에는 신사의 고유한 도장이 찍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신사를 다 돌고 조금 이른 시간에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려던 찰나 갑자기 핸드폰에서 엄청나게 큰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진경보였다. 일본은 자연재해가 워낙 많은 나라라 지진경보는 심심찮게 받는데 이번엔 달랐다. 경보가 울리고 약 3초 후 내가 있던 건물이 긴 시간 꽤나 크게 흔들렸다. 새해 첫날부터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었다.
부랴부랴 TV를 켜보니 아니나 다를까 NHK를 포함한 모든 채널에서 지진 관련 재난 속보를 개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쓰나미 경보를 발령하고 아나운서들은 강력히 대피를 독려했다. 평소와는 다른 강한 어조로 ‘TV를 보지 말고 당장 도망치라’고 소리치는 장면을 보며 이번 사태가 보통이 아님을 직감했다.
1월 1일 오후 4시경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서 관측 최대 규모 7.6의 강진이 발생했다. 노토반도 지역에는 최고 높이 5m의 쓰나미 발생이 예상되는 대형 쓰나미 경보도 내려졌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처음 내려진 쓰나미 경보다. 회사동기 중 한 명이 이시카와 출신이라 급히 연락해 보니 역시나 집은 위험해 피난 중이라는 답장이 돌아왔다. 부디 큰 피해가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안위확인시스템(安否確認システム)
자연재해는 정말이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에는 최대한으로 미리 대비책을 세우되, 예방할 수 있는 사고는 철저히 대비해서 절대 일어나지 않게 하자가 기본 원칙이다.
이번 지진경보가 발령하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회사에서 온 메일에 안위확인(安否確認) 답변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 회사의 경우 일본 국내에서 진도 6 이상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전 사원에게 메일로 안위확인 메시지를 발송하는데, 현재 어디에 있는지, 나와 가족들은 무사한지, 살고 있는 집의 피해는 없는지, 출근이 가능한지 등을 10분 이내로 회답해야 한다.
일본 기업이 이 회답에 얼마나 민감하냐면 자고 있는 새벽에 지진이 와서 미처 답변을 바로 하지 못한 경우 회사에서 새벽 두 시에도 답변을 독촉하는 전화가 걸려온다. 노토반도 지진 이후 지금까지도 여진이 계속되고 있어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전화를 두 번이나 받았다.
사내 BCP 훈련
BCP란 Business Continuity Plan의 약자로 한국어로 번역하면 업무 연속성 계획(事業継続計画)이다. 자연재해나 긴급사태가 발생했을지라도 회사 업무는 계속되어야 하기에, 기업 경영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계획을 의미한다.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일본 회사에 근무하면 이 BCP라는 용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매년 실시되는 사내 BCP 훈련에서는 훈련 당일 재난 경보음이 전 회사에 울리면 가장 먼저 안위확인 회답을 모의 실시함으로써 자연재해나 긴급사태가 발생했을 때 연락을 취할 수 있는지를 체크한다.
회답을 마친 후에는 실제로 이동훈련이 이루어진다. 대표자의 안내에 따라 전원 자기 자리에 비치해두고 있는 헬멧을 쓰고 1층으로 대피하는 훈련을 실시한다. 지진이 발생하면 실제 재난상황처럼 계단을 이용해 대피 훈련을 실시한다. 1층부터 7층까지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예상치 못한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이러한 훈련은 실제로 지진,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큰 도움이 된다.
재난 대비 훈련이 비교적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일본에는 오하시모(おはしも)라는 말이 있다. 일본 재난 피난 훈련의 기본이 되는 단어다.
오(お)는 오사나이(おさない | 밀지 않는다), 하(は)는 하시라나이(はしらない | 달리지 않는다), 시(し)는 샤베라나이(しゃべらない | 말하지 않는다), 모(も)는 모도라나이(もどらない |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머리글자로 한신·아와지 지진 이후 소방청에 의한 교육안전지도 가이드라인에 소개됨에 따라 방재교육의 표어로서 전국에 보급됐다. 처음에는 젓가락을 의미하는 오하시(おはし)였지만 쓰나미 대피 원칙인 모도라나이(もどらない | 돌아오지 않는다)의 모(も)가 뒤에 추가되었다.
일본의 방재 매뉴얼
매뉴얼의 국가 답게 방재 매뉴얼도 잘 정리되어 있다. 특히 도쿄에서는 재난 대비에 대한 지식을 담고 있는 도쿄방재(東京防災)와 일상생활 속에서 대처할 수 있는 방재 정보를 담고 있는 도쿄 생활 방재(東京暮らし防災) 매뉴얼이 있어 소개한다. 마침 며칠 전 도쿄도에서 우편으로 이 두 권의 책자를 보내줬는데, 오프라인에서도 구매가 가능하고, 온라인에서는 아래 도쿄방재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PDF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어판도 열람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