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마요르 광장에서
유럽에서 집시를 만난다면
한참을 걷다 마요르 광장 근처 노천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30분 정도 앉아 있으니 행색이 남루한 사람들이 이따금씩 다가온다. 어린 소녀도 있었고, 모자도 있었고, 나이가 지긋한 노파도 있었다. 모두 하나같이 스페인어로 잠시 무슨 말을 하고는 주머니를 내민다. 무엇이 맞는 일일까. 내 마음 편하자고 그들을 쉽게 도와준다면 구걸하는 삶의 굴레에 더욱 의존하게 만드는 것뿐이라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고 어려운 사람들에 눈 감기는 힘든 일이다. 그래서 짐짓 눈을 피할 때도 있고 그래도 몇 푼을 건넬 때도 있지만 한 가지 생각만은 확고하다. 내가 그들보다 조금 더 운이 좋은 것일 뿐 가난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글리 코리안
잠시 뒤 두 명의 친구들이 옆에 앉아 말을 걸었다. 포르투갈에서도 리스본과 포르토에서 우연히 만났던 동갑내기 한국인 친구들이었다. 여행 루트가 비슷하긴 했지만 우연히 세 번씩이나, 국경을 넘어 마드리드에서 또 한번 만난 게 보통 인연은 아니다 싶었다. 그들은 요리사를 꿈꾸며 유럽 요리 기행을 하고 있었다.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기 때문에 하루에 백 유로를 넘게 쓸 때도 있다고 했다. 어김없이 또 한 번 한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런데 한 친구가 손사래를 치며 한국말로 “가서 일하고 돈 버세요.”라고 말하고는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다른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드리드엔 집시들이 너무 많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제 몸집의 두배는 큰 사람들이 모르는 언어로 언성을 높였으니 얼마나 무섭고 수치스러웠을까. 순간 분노가 치밀어 그들에게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며 화를 냈다. 그는 당황하며 그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했다.
왜 우리는 작은 몫에 분노하는가
가난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이라고 자기 인생을 꾸리고 미래를 계획하며 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낮은 곳의 일자리란 대개 위험하거나, 극심한 텃세를 견뎌야 하거나, 임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기 쉽다. 무엇보다 그들은 이런 일이라도 하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젊고 건강해야 한다. 너무 어려서도, 너무 나이가 많아서도 안 된다. 여자라면 더더욱 힘들 것이다. 차라리 관광객들에게 구걸하며 몇 푼 버는 것이 마지막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왜 우리는 무기력하고 나약한 사람들이 가져가는 작은 몫에 분노할까. 이런 화두를 던지면 지인들은 빨갱이 소리 듣는다며 꾸짖기 일수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 처절하게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그런 대우까지 받아야 하는 건 참을 수가 없다.
초라한 배경에서 태어났지만 큰 부를 일군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예외가 규칙이 될 수는 없었다.
- <불안>, 알랭 드 보통
가난한 사람들은 정말 게으르고, 우유부단하고, 무능력할까?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기회 균등이라는 절차적 평등은 어느 정도 주어졌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는 틀렸다. 알랭 드 보통의 말을 빌리면 '재능은 변덕스럽게 발현되며, 운도 좌우하고, 세계 인구의 절대 다수는 피고용자이기 때문에 고용주의 손에 고용과 실업 여부가 달려있고, 기술 변화 때문에 직장을 잃는 경우도 다반사이며, 세계 경제의 거대한 흐름(호황과 불황)도 우리의 운명을 좌우한다.'
우리는 가난하지만 지혜롭고 단단한 자아를 가진 사람도 봤고, 부유하지만 멍청한 이들을 안다. 가난을 개인의 몫으로 돌리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