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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프란 곽여사 Dec 09. 2023

7년간 외면한 엄마의 삶

부족한 딸은 운다.

입국하자마자 머리 먼저 했음

한국에서 제일 급하게 해결할 1순위는 머리였다. 미국에서는 워낙 비싼데 18% 팁까지 줘야하므로 굉장히 큰 지출을 해야한다. 내 머리 기장을 원하는 스타일로 하려면 한국돈으로 75만 원 정도를 지출해야 한다. (그나마 다니던 미용실이 폐업함) 길이도 너무 길어 아침에 머리감기도 불편하고 잘 때는 목에 감겨 악몽이 따로 없다. 한국에 오는 것을 너무 기다렸다. (7년이나!)

추울 때는 도움이 되는 긴 머리

‘나 머리 어디 홍대나 이대입구 가야 하나?’


‘요즘엔 동네 미용실이 더 잘해. 맘카페 입소문 난 곳 찾아보면 다 나와. 우리 집 근처에 나 가는데 있는데 거기 완전 싸고 잘해! 근데 예약을 안 받고 선착순이야. 거기 가 볼래?‘


‘어!!! 나 완전 가볼래. 근데 얼마야…? 한 4-50만 원 가져가면 되나…?’


‘야! 요즘 누가 머리를 그렇게 비싸게 주고 해. 동네 미용실이 약도 좋은 거 써. 소문 금방 나니까. 내가 가격표 보내줄게.‘


엄마처럼 나를 챙겨주는 친구를 따라 같이 점심을 먹고 미용실에 가기로 했다. 꼬막비빔밥집에서 만난 그녀는 여유롭고 느긋해 보였다.


“집에 오니까 기분이 어때?”


음식을 주문한 뒤 그녀가 슬쩍 미소 지으며 묻는다.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슬퍼.”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곧 다 안다는 표정이 되었다.


“엄마도 많이 늙었고 집도 많이 낡았더라. 나 솔직히 너무 마음이 아파서 밤에 잠도 안 왔어. 마음이 무거워…”


“그래, 나도 그래. 실제로 보니까 더 하지?”


“으응…”


7년 전 2016년에 왔을 때는 제법 깨끗하고 화사한 집이었는데 이제는 세월이 흘러 화장실 수납장도 낡았고 천장이며 화장실 문도 때가 타서 점점이 누렇게 변해있었다. 엄마 얼굴의 검버섯처럼 화장실도 나이가 들어가는 것 같아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낡아버린 화장실 이곳 저곳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엄마를 방치한 것이다.


잘 살고 있겠거니 억지로 짐작하고 태평하게 살아가는 사이에 엄마는 홀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냈다.


일을 하고, 영어도 배우고 틈틈이 놀러도 다니며 나를 안심시켰다. 엄마는 네가 신경 쓰지 않아도 잘 살고 있노라고, 혼자서도 외롭지 않게 재밌게 살고 있노라고, 네가 돈을 부쳐주지 않아도 내 용돈을 충분히 벌어서 쓰고 있으니 너는 걱정하지 말고 즐겁게 살아가라고, 그렇게 치열하게 산 7년의 흔적이 고스란히 집안 곳곳에 묻어있었다.


각자의 인생을 책임지고 열심히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건만 엄마의 인생은 너무 외롭고 힘들어 보여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엄마의 외로움을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큰 고민을 하게 됐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엄마와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매일 웃고 사랑을 표현해서 엄마의 마음이 가족의 사랑으로 꽉 차도록 하는 일뿐이다. 내가 없어도 슬프지 않도록 집 안 곳곳에 내 흔적을 남기고 머릿속에 행복한 추억을 가득 채우는 일. 난 남은 60일을 그렇게 보낼 생각이다.


미용실에서 새로 머리를 했는데 염색, 영양 그리고 기장정리까지 다 해서 10만 원이 나왔다. 믿을 수 없는 가격이라 나는 춤을 추고 싶은 기분이었다. 새로 한 머리를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보냈더니 이쁘다고 답장이 온다. 그리고 언제 집에 오냐고 저녁 준비 다 했다고 카톡이 왔다. 밥상에 수저를 두 개를 놓고 기다리는 엄마를 위해 발길을 서둘러야겠다.


엄마! 기다려-! 얼른 갈게!

머리하고 탕후루 난생 처음 먹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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