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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프란 곽여사 Dec 07. 2023

엄마의 미제 초콜릿 대잔치

미국에 사는 딸이 왔다며???

Ghirardelli 광장 뷰. 매일 이 곳을 지나 달린다.

‘지영아, 엄마 친구들이 너 오면 밥 사준다고 줄 섰어. 엄마 일하는데 영양사님도 밥 사준다고 하시고… 너도 오랜만에 입국인데 빈 손으로 오기 좀 민망하지 않니? 너 맨날 뛰는데 큰 초콜릿 공장이 있다며? 초콜릿이 선물로 제일 인기가 많다는데 좀 사 와.’


출국준비로 바쁜 와중에 난 엄마에게 가져갈 초콜릿까지 사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마존에서 좀 주문하고 그것도 모자란 것 같아 운동하고 오는 길에 Ghirardelli 광장에 들러 마침 행사 중인 큰 초콜릿 봉지를 세 개나 샀다. 초콜릿이 생각보다 무거워 끙끙대며 집에 왔다. Union Square에 있는 종로유학원에서 현대택배로 보낼 생각이었는데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그 유학원이 사라져 결국은 캐리어 하나를 몽땅 초콜릿으로 채워왔다.

Ghirardelli chocolate & 친구가 부탁한 초딩용 Gummy
빨간색 캐리어를 초콜릿으로 꽉 채웠다

그렇게 캐리어를 하나로 채워와도 엄마가 선물을 줘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아저씨의 장례식에 부조금을 낸 모임분들과 아저씨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돈 5만 원을 쥐어주며 맛있는 거라도 먹으라고 한 미용실 언니와 직장 동료들 모두를 주기에 부족해져 엄마와 다이소에 가서 손잡이가 달린 비닐백에 초콜릿을 소분해서 담았다. 그랬더니 양은 얼추 맞는데 또 보기에 영 성의가 없어 보여 난 크리스마스 카드 여러 장을 사 왔다.


“엄마, 그래서 지금 당장 드려야 할 분들이 몇 명이라고? “


“응 내일 출근해서 영양사님, 부장님, 같이 일하는 언니들 두 명 이렇게 넷.”


그날 저녁은 입국하자마자 시차적응 없이 바로 다이소 및 시장 등등 밖으로 돌아 곯아떨어졌고 새벽 4시에 일어나 방바닥에 엎드려 카드를 하나하나 쓰기 시작했다.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한 분들에게 카드를 손글씨로 쓰려니 여간 펜이 움직여지지 않아 꽤 애를 먹었다. 한참 동안 안녕하세요, 그 이후에는 머리 속이 먹통이 된 듯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가 외롭고 어려울 때 곁에서 내 대신 힘이 되어주신 분들에게 느낀 고마움을 생각하니 처음 펜을 들었을 때의 어색함은 사라지고 어느덧 진심을 다해 또박또박 카드를 빼곡하게 채워나갈 수 있었다.

미용실 이모에게 쓴 카드

초콜릿 봉지를 가방에 가득 넣은 엄마를 배웅하고 나는 꽤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혼자서 집에서만 있어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 저녁이 되었고 곧 엄마의 퇴근 시간이 되었다. 삑-삑-삑-삑 띠리릭! 문이 열리고 엄마가 들어왔다. 현관에서 강아지처럼 반겨주는 내 얼굴을 보고 엄마의 얼굴이 환해진다.


엄마가 한숨을 돌리고 앉았을 때 궁금하던 것을 물어봤다.


“엄마, 초콜릿 다 드렸어??”


“엄마야,,, 그거 아주 히트 쳤어! 다들 카드 받고 너무 감동적이라고 아주 난리가 났었어. 딸내미가 어쩜 이렇게 마음을 이쁘게 쓰냐고 글씨도 이쁘다고 너도 나도 밥 사준다고 난리가 났었어. 엄마가 아주 기분이 좋았지.”


“아, 그래??? 어머 내 카드가 그렇게 감동적이었나??? 다행이네. 다들 좋아해 주셔서…”


“부장님이 너무 감동적이라고 내일 점심을 사준다고 하는데 너는 어떡할래? 좋든 싫든 알려달라고 하시던데…”


“아, 진짜? 와… 그래! 그럼 우리 가서 점심 얻어먹자!”


새벽부터 눈 비비고 쓴 카드는 모두의 가슴을 울렸다. 영양사님과 부장님 그리고 같이 일하시는 언니 두 분 모두 카드를 바꿔서 다 같이 읽으시며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그 감동은 엄마에게 딸에 대한 칭찬으로 쏟아져 엄마는 하루 종일 어깨가 무척이나 으쓱했다며 피곤한 얼굴로 무척이나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가 좋다면 그걸로 되었다. 그럼 나도 좋다. 엄마가 누워서 코를 고는 것을 보고 불을 끄고 내 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따듯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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