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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프란 곽여사 Dec 10. 2023

7년 만에 피어나는 엄마의 얼굴

엄마도 사랑이 필요하다

정말 오랫만에 보는 엄마의 편한 웃는 얼굴

추운데 빈 속에 운동을 나서기엔 겁이 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내려서 내 컵에서 세 모금 정도를 덜어 어린애들이나 마실만한 작은 컵에 더운물과 섞어 엄마에게 건넨다. 희멀건 커피는 커피인지 커피 향 물인지도 모르겠건만 엄마는 그게 딱이라며 참 좋아한다. 커피를 한 컵 마시는 동안 주방은 분주하다. 운동 나가는 딸이 속이 허해 칼바람이 들까 아침부터 찌개에 나물에 엄마 손이 바쁘다.

꽃게를 다듬는 엄마


나는 아침을 먹으면 속이 하루 종일 부대끼는 체질이라 공복을 유지하다 늦은 오후에 점심 겸 아침을 먹는데 한국의 날씨가 너무 매섭다 보니 속을 채우는 게 낫다 싶어 엄마를 말리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밥상 위에 나물과 동치미, 새로 한 김치등을 내놓으며 무척이나 행복한 표정을 짓는 엄마를 보면 내 속이 더부룩한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티브이소리만 들리던 집에서 너랑 이렇게 도란도란 아침도 먹고 떠드니까 아주 사람 사는 것 같고 너무 좋아.”


흐뭇한 표정으로 꽃게찌개를 허겁지겁 퍼먹는 딸을 보며 엄마는 앞접시를 가져오랴, 내 입에서 줄줄이 쏟아지는 꽃게껍데기를 놓을 빈 접시를 가져오랴, 물컵과 여분의 밥 등 내 식사를 챙기느라 무척 분주했다.


“아이고 우리 딸 이걸 이렇게 잘 먹는지 몰랐네. 내가 이 게를 받아서 보관하길 잘했지. 나중에 더 해줄게, 어서 더 먹어.”


배가 불러서 더 못 뛰게 되기 전에 밥숟갈을 내려놨다. 뒤처리는 자동으로 엄마의 몫이다. 엄마의 즐거움이란다.

뛰다가 손이 시렵다 못해 아파서 카페에 들어왔다

이렇게 밥을 든든하게 먹고 나서 집을 나와 한산한 도로변을 뛰다 보면 처음엔 춥다,라는 1차원적인 생각이 들다가 곧 머릿속에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저 나란 가족 한 명이 더 들어왔는데 집 안에 도는 생기와 사람의 온기. 너무 조용한 게 싫어 그냥 티브이를 틀어놓는다던 엄마의 말을 곱씹었다. 이렇게 차가운 겨울을 몇 번이나 홀로 보냈을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오늘 점심약속을 잡은 것도 사실 그런 이유에서였다. 낯선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던 나였지만 엄마의 직장에서 얼굴을 자주 마주치는 분이라면 얼마든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항상 혼자였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지내온 엄마옆에도 든든한 딸이라는 가족이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안다.


서둘러 운동을 끝내고 엄마와 나는 곱게 화장도 하고 단단히 옷도 차려입고 나섰다. 재능인쇄에 들어가서 엄마가 기세 좋게 모두에게 인사를 한다.


엄마: “여어-!!! 나 왔어!!!”


이모님 1 : “어머나, 이게 누구야…? 이 쪽이 따님이야? 아이고 아주 미인이네!!! 피부도 까무잡잡한 것이 아주 섹시한 미인이야!!!! 어서 와요!!!”


영양사님 : “아이고! 우리 오여사님 딸이구나! 어머 엄마랑 똑같이 생겼네??? 근데 왜 이리 예뻐? 어머어머… 얼굴 어디 어디 했어요..????” (뭣이 중헌디)


이모님 2 : “아이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그래… 내가 어제 그 편지를 받고 을매나 가슴이 뜨끈한지… 기자가 딸을 잘 길렀어 그래…으째 그걸 쓸 생각을 다 했어 그래…?” (엄마 성함이 기자입니다)


‘아이고’ 로 시작하는 멘트가 사방에서 동시에 쏟아지기에 혼이 쏙 빠진 나는 일단 화사한 웃음을 장착하고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를 연발했고 영양사님은 이쁘다는 감탄사와 어디 어디를 했냐는 질문을 포기하지 않으며 점심 메뉴로 나온 핫도그를 내 손에 쥐어주셨다. 모두의 반응을 보니 내가 카드에 쓴 감사의 말들이 제대로 전해진 것 같아 무척이나 뿌듯했다.


모두에게 찬사를 받는 내 손을 꼭 쥔 엄마는 내내 내 손을 쓸고 어깨를 쓸며 무척이나 귀한 것을 잃어버릴까 겁내는 아이처럼 나를 꼭 쥐고 있었다.


카톡을 받은 부장님이 뒤늦게 들어오셔서는 또 이쁘다, 외국인처럼 생겼다, 엄마 닮았네 등등의 모두와 같은 멘트를 하고는 서둘러 차를 타고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약간은 어색하고 초조해 보이는 엄마 대신에 나는 능숙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부장님이 이 회사에서 30년 넘게 일하셨다고 들었어요. 대단하세요. 회사에서 이제 부장님이 없으면 실무가 안 돌아갈 거 같아요. “


“아휴! 그냥 이러나저러나 꾹 붙어있는 거지 뭐. 나 그만둔다고 회사에서 눈도 깜짝 안 할걸?”


“어머, 아니에요. 요즘 같은 시기에 부장님처럼 실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직원을 회사에서도 소중하게 생각해요. 아주 드문 인재니까뇨.”


“그럴까? 호호호호”


엄마는 곁눈질로 나를 바라보며 예전과 달리 처음 본 사람과 내외하지 않는 모습에 크게 놀란 눈치였다. 내 싸바싸바 신공을 여태 목격한 적이 없으니 놀랄만도 하지. 난 온갖 상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데 큰 자신감이 있다. 전생에 고을사또 이방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음을 연 부장님은 자연스레 딸의 이야기를 이어가며 자리는 화기애애하고 편안하게 이어졌다. 부장님은 커피도 한 잔 하자며 맞은편 카페를 추천하셨고 무척이마 근사한 인테리어에 엄마와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매일 버스로 출퇴근을 하는 엄마는 자가용으로만 올 수 있는 이런 곳엔 와볼 기회가 적었다. 내가 가까운 곳에 있어야 엄마가 이런 곳에 자주 올 텐데… 모든 것이 안타깝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좋은 추억을 힘껏 만드는 일뿐이다.


실내가 너무 멋진 카페 브릭 로즈

부장님은 점심시간을 아주 훌쩍 넘겨서 우리가 더 이상 배 속에 1g의 액체나 고체 무엇도 넣을 수 없을 즈음에 일어나자고 하셨다. 버스정류장까지 태워주신 부장님은 뒤를 돌아보시며


“지영 씨, 나 진짜 감동했어.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손 편지 정말 드물거든. 우리 전부 감동해서 한참을 읽고 또 읽었잖아. 지영 씨라면 내가 또 얼마든지 점심 사줄 수 있어. 출국하기 전에 꼭 연락해요. 꼭이다???”


“네, 꼭 그럴게요. 오늘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차에서 내려 멀어지는 부장님을 보는 엄마는 무척이나 뿌듯하고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을 했다. 항상 말로만 있다고 했던 딸이 곁에서 직장 동료와 상사에게 이런저런 찬사와 환대를 받으니 엄마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영양사님이 나 먹이라고 따로 주문해 주신 돼지갈비 때문에 가방은 무거울지언정, 엄마와 나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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