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똥이 왔다
달리다가 똥을 싼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나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똥을 싼 적도 없다. (미안하다. 낚였다!) 쌀 뻔한 적은 많다. 오늘도 그런 날 중 한 날이다. 카페인 때문이다.
달리기는 에너지가 크게 드는 운동이고 보통 장거리를 달리게 되므로 꽤 힘든 운동이다. 그래서 나갈 때마다 머릿속 한 구석에서는 꼭 누군가
‘아 오늘은 좀 쉬지 그래. 어제 일도 많이했구만. 넌 쉴 자격이 있어!’
이렇게 달콤한 목소리로 꼭 내 속을 들여다본 듯이 말을 건다. (바로 나니까 ㅋ) 이 유혹을 견디려면 달리기의 끝에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보상으로 줘야 하는데 그게 나한테는 커피 한 잔이다.
내가 달리는 코스는 3km를 달려가면 턴어라운드 지점에 단골손님에게 아주 관대한 커피집이 있다. 이 집에서 포인트를 쌓아 공짜커피를 마시는 게 내 재미다. 오늘도 커피 한 잔을 하고 돌아오는데 뱃속이 시리다. 옷도 단단히 입었건만 신호가 이상하다. 공원을 지나 다시 돌아가서 공동화장실을 가기에도 애매한 지점, 난 그냥 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설사의 신호에는 기승전결의 소설 같은 전개는 없고 갑자기 벼락 치듯 난리가 난다. 방금 꾸르륵거렸는데 3초 뒤엔 항문에서 난리가 난다. 혹시 케겔운동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항문을 20초 조이고 있는 것도 진땀이 날 정도로 힘들다. 한 번 지금 조여보시라! 몇 초나 견디나. 몇 초 못 버티고 금방 힘이 풀어진다.
항문이 무슨 사채빚 받으러 온 조폭처럼 발름발름 거리며 당장이라도 포문을 열겠다고 협박하는데 나는 제발 10분만 시간을 달라고 사정사정하며 애를 쓴다. 평소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온몸 구석구석의 아주 사소한 진동에도 이때는 식은땀이 난다.
그나마 다행이다. 오늘은 엉덩이를 살짝 덮는 후디를 입고 나왔는데 여차하면 이 후디를 벗어 허리에 두르고 집에 오면 된다. 끌어당김의 법칙이 적용할까 봐 나는 애써 파란 하늘과 오늘이 얼마나 멋진 날인지에만 온 신경을 쏟으며 화장실에 도착했다. 화장실에 도착하는걸 항문이 알고 있는지 문을 열고 바지를 내리는 그 순간 0.00004초 차이로 나는 지옥을 경험했다. 미친 항문 인내심이 그렇게 없어서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하는지 원.
볼 일을 다 보고 나니 제발 10분만 기다려달라고 애원하던 내가 이제는 인내심 없다고 타박을 한다. 항문과 나처럼 티키타카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아무튼 오늘도 잘 달렸습니다. (똥 안 싸고 무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