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마끼아또의 관계
어제 친구를 만나 브런치를 먹었다. 그때 마끼아또를 처음 먹어봤다. 내가 자주 마시던 카푸치노와는 달리 에스프레소 잔보다 약간 크고 일반 커피잔보다는 작은 그런 잔에 우유 거품이 소복하게 얹혀서 나왔다.
나는 크림이나 설탕은 필요 없다고 습관적으로 얘기했는데 무척이나 쓰다. 조금 후회가 되었지만 이 쓴맛이 왠지 위로가 되어 그냥 꾹 참고 마셨다.
그제 나는 아주 화창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최근 내가 혼자 계획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되짚어보며 새로 주문한 아이패드의 개봉식도 설레고 (그날 저녁 예정이었다) 여태 머릿속으로 예상하던 시나리오를 펼칠 생각을 하니 참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내가 자주 보는 타로 유튜브에서 뽑기만 하면 나오는 ACT 카드를 드디어 실현하는구나 하며 오, 일단 내 브런치 커피 포스트 취재차 커피 마시러 가자! 하며 정말 멀리 걸어갔다 왔다. 집에 와 개운하게 막 씻고 나왔는데 엄마에게 온 문자에 조금 망설였다.
‘엄마 한가한데 뭐 해.’
참 오래도 내 마음을 뭉근하게 무겁게 하는 사람. 누구에게 설명도 제대로 못할 이 마음.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이 관계. 그래, 오랜만인데 뭐 어때 하며 호기롭게 한 전화는 침묵으로 끝났고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탈진해서 한 끼도, 한 모금도 먹지 못하고 우주에 홀로 떨어진 듯한 우울감으로 밤새 잠 못 들었다. 거대한 산에 밟힌 듯한 무게감에 뒤통수가 찌그러드는 둔통과 헛것을 보기도 했다.
지독하게 외롭고 힘든 밤을 지내고 유일한 내 쉼터 크리스티나를 만날 시간이 올 때까지도 나는 잠을 못 이루고 뒤척였다. 새벽이 밝아 밤새 내 눈앞에 울렁이던 전구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정도로 밝아졌을 때, 마지못해 나갔다.
크리스티나와 자리에 앉을 때까지도 나는 거짓 웃음을 얼굴에 힘겹게 걸고 있었다. 새카맣게 쓴 에스프레소에 하얀 우유 거품을 올린 마끼아또를 시킨 건 내가 의식하지 못한 나일지도 모르겠다. 그 찐득하게 달여진 이 쓴맛을 한 모금 삼키니 오히려 조금 안정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마끼아또는 이탈리아어로 ‘얼룩진’이라는 뜻이란다. 하얀 우유 거품을 올리면 에스프레소의 크레마가 링처럼 밀려나며 주변에 검게 얼룩이 진 것처럼 보여서 그렇게 이름이 붙었단다.
마끼아또를 마시며 나는 친구에게 내 마음을 조금씩 털어놓았고 큰 위로와 힘을 받았다. 그녀가 커피를 좋아하는 날 보고 생각나 샀다는 Peet’s coffee 재사용 컵도 나는 눈물 나게 고마웠다. 커피를 조금씩 마시며 나를 죽이고 싶도록 미치게 몰아쳐낸 그 에스프레소 같은 우울감을 조금씩 하얀 우유 거품 같은 웃음이 걷어내고 또 걷어냈다. 마침내 잔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나를 무겁게 짓누르던 그 마음도 거품만이 약간 남았다. 마끼아또에 이런 치유의 힘이 있었나? 나는 왠지 힘이 좀 나는 듯해 가방에서 그녀에게 보여줄 책과 새로 산 아이패드를 꺼내들었고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이런 저런 궁리를 하기도 하며 웃고 또 웃었다.
나는 앞으로 마끼아또를 사랑하게 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