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나비 아가씨
두 손을 비비며 즐거워하는 제이콥을 보며 백현은 어제 만난 아가씨를 떠올리고 있었다. 너무 귀여웠지. 아쉽네… 이름이라도 물어볼걸. 세상이 좁다고 하지만 또 우연히 마주치기엔 너무 넓은 것도 사실이다. 신선한 느낌이었는데 그 아가씨. 다음에 만나면 꼭 물어봐야지, 다짐한다. 왠지 목이 탄다.
마주 앉은 제이콥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보니 그 불쌍한 아가씨가 오나보다. 백현은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런데 테이블에 나타난 하얗고 말간 얼굴. 어제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도망간 그 아가씨다!!!. 지영… 이름이 지영이란 말이지. 이름도 이쁘네.
백현은 어! 하면서 놀란 표정의 아가씨가 곧 정신을 수습하고 주문을 받는 모습을 보았다. 유니폼을 입은 모습은 레깅스를 입은 모습보다 더 야무져 보였지만 자연스럽게 땋아서 내린 머리 아래 보기 좋게 드러난 하얀 목덜미는 가녀렸다. 얼굴선을 따라 흘러내린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고 싶어 진다. 그러면 또 꺅 - 하고 도망가려나. 그는 무릎 위 손가락을 맞대며 가볍게 문질렀다.
“안녕? 오늘도 이쁘네요? 잘 지냈어요?”
제이콥이 성급하게 말을 건네지만 그녀의 표정은 예의 바르면서도 단호하다. 어리게만 봤는데 마냥 무른 성격은 아니군. 맘에 든다.
“잘 지냈습니다. 음료는 뭘로 시작하시겠습니까? 칵테일 혹은 와인으로 하시겠습니까?”
꽤 건조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걸 보니 제이콥의 바람둥이 기질을 제대로 알아본 모양이다. 아무렴. 제이콥 같이 몸과 마음이 가벼운 남자에게 안되지.
“지영 씨가 제일 좋아하는 걸로 주세요.”
“지영 씨는 좋아하는 술이 뭔지 아직 모를 거 같은데…”
백현이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얘기했다.
“흠… 아마 다음 달 정도면 알게 되지 않을까.”
백현이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지영을 바라봤다.
여태 조용하던 백현이 입을 열자 제이콥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지영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귀 끝이 조금씩 붉어진다. 제이콥은 레스토랑에서 제일 잘 나가는 칵테일을 백현은 Old Fashion을 시켰다.
“뭐지, 이거? 내 베이비 아는 사이야?”
제이콥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잘 알지. 니 베이비 아니고 어제 공원에서 폭탄을 터트리고 날아간 내 나비 아가씨거든. 저 아가씨는 포기해. 이상형이 너 같은 남자가 아니니까.”
“뭐지, 이 시작도 해보기 전에 진 것 같은 기분은…!”
제이콥은 울상을 지었다. 백현은 뒤를 돌아봤다. 바에서 픽업한 칵테일을 들고 오는 그녀가 보인다. 곱게 땋은 까만 머리가 가녀린 등 위에서 팔랑 인다. 멀리서 보니 가녀리면서도 여성스러운 곡선이 꼭 맞는 유니폼 때문에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칵테일 나왔습니다.”
칵테일 잔을 내려놓는 그녀는 백현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지만 백현은 느긋하게 잔을 내려놓는 그녀를 바라본다.
“생일, 언제예요?”
“네, 네? 아.. 3월 17일이요.”
“혹시 무슨 계획 있어요?”
“아, 아뇨. 아직 생각해본 건 없는데…”
“그래요? 잘됐네.”
백현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칵테일 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둘 사이의 대화를 이방인처럼 조용히 지켜보던 제이콥이 미간을 찡그리며 불쑥 외친다.
“이 친구도 곧 38번째 생일이에요. 낼모레 40 이죠. 같이 파티하면 되겠네!”
지영의 표정이 놀라움에 동그란 눈이 더욱 커졌다가 아차 싶은 듯 제자리로 돌아왔다. 백현은 매서운 눈으로 제이콥을 쏘아봤지만 제이콥은 느긋하게 칵테일을 홀짝이며 씩 웃는다. 백현은 제이콥을 쏘아보며 말했다.
“중요한 정보를 자연스럽게 공개해줘서 아주 고맙군.”
“천만에. 그리고 오늘 저녁도 네가 사는 거야.”
“나비 아가씨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백현은 여유롭게 웃으며 칵테일 잔을 기울였다. 공든 탑이 무너져 김이 샌 제이콥이 문자를 몇 개 보내더니 씩 웃으며 일어선다. 가벼운 놈. 그가 일어서 나간 후 백현도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현은 계산서를 집어 들고 지영에게 다가갔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또 봬요.”
그가 지영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인다.
“아, 네. 안녕하 가세요 “
지영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뒤돌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계산서를 펼쳤다. 계산서 안에는 작은 메모지가 함께 끼워져 있다.
정백현 415-690-xxxx.
지영은 얼굴을 붉히며 황급하게 그 종이를 주머니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