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치는 물 위에 간신히 버티고 있다.

금방이라도 휩쓸릴 거 같아.

by 샌프란 곽여사

파랗고 속이 보이지 않는 깊은 물 위에 정자가 서 있다. 지은 지 몇 년 안된 새 정자인지 나무가 뽀얗다. 그 정자의 나무 기둥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햇살에 반짝이는 물은 얕게 흔들린다. 정자는 사방이 나무가 우거진 곳에 물 안으로 꽤 깊이 들어와 있어 고개를 들면 숲이 보인다. 햇살이 뜨끈하고 눈 부신 걸 보면 한 여름이다. 초록 기와가 얹힌 정자는 시원하기만 하다.


이 정자에 나와 내 소꿉친구 은하가 있다. 굵은 기둥이 받치고 있는 정자 밑으로는 하얀 굵은 밧줄을 엮어서 만든 그물이 내려와 물에 닿을락 말락 팔랑이고 그 앞에는 나무판자를 길게 엮은 그네가 있다.


그 그네는 정자 아래 기둥 사이를 흔들흔들 지나며 물을 굽어본다. 나는 그네에 앉아 있고 그 옆에 발을 디딘 은하가 서서 그네를 구른다. 줄을 꽉 잡고 은하가 앉았다 일어서며 용을 쓰자 그네가 점점 높이 올라간다.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하지만 속으로 나는 혹시 얘가 날 밀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며 그래도 에이 날 왜 밀겠어 오락가락 마음이 불안하다. 하지만 일단 겉으로는 즐겁다.


바람이 옅게 불면서 물이 살랑인다. 은하와 나는 노는데 정신이 팔려 있다. 그런데 물살이 순식간에 뒤바뀌어 울렁이기 시작한다. 수영을 못하는 우리는 더럭 겁을 먹고 정자 위로 올라간다. 어쩌지 어쩌지 하는 사이에 울렁이던 물은 사납게 철썩이고 점점 불어나기 시작한다.


은하와 나는 빨리 이 정자에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잔잔하던 물이 검게 일렁이자 너무 무서워져 숨도 쉬기 어렵다. 정자 밑으로 내려온 우리는 문득 정자에서 물 밖으로 길게 이어지는 나무다리를 보았다. 꼭 한 걸음이 되는 좁은 폭으로 나무판자를 이어 붙인 다리다. 줄이나 손잡이가 없어 넘어지면 물속으로 빠지게 생겼다. 그런데 물 위 무릎길이 정도로 솟아있던 다리가 불어난 물로 찰랑인다.

은하와 나는 혼비백산하여 그 좁은 다리 위를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다리 위를 걷기 시작하자마자 물이 솟아올라 발등 위를 찰랑이더니 급기야 물살이 거세져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뿌옇게 흐린 물이 넘실대자 나무판자로 만든 다리는 곧 형체를 잃고 희미하게 물속에서 나무색을 간신히 보였다. 그 마저도 다리 위로 물이 무릎 깊이로 더욱 차오르자 우리는 나무다리가 어디에 있었는지 감조차 못 잡고 그저 그 자리에 빠지지 않기 위해 엉거주춤 바닥을 짚고 앉아 빠르게 흐르기 시작한 물에 휩쓸리지 않으려 버티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돌아가자, 결심을 하고는 한 발 한 발 되짚어 우리는 정자로 들어왔다. 정자에 올라서 온통 젖은 몸으로 바라본 나무다리는 격하게 흐르는 물로 짐작도 못하게 되었다. 우리는 사방에서 몰아치는 물로 공포에 빠져 오들 오들 떨다가 구조요청을 하기로 결심하고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무슨 협회 옷을 입은 민간인 구조대가 곧 와서 우리를 구조하며 여기는 무엇하러 왔냐고 타박을 했다. 은하와 나는 마주 보며 그저 물에 안 빠져 다행이다, 그 생각만 했다.


얼마 안된 꿈이다. 아마 두어달 됐을 것이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정자이지만 분위기상 가평 어디쯤 무슨 호수같은 느낌이다. 나는 수영을 못한다. 은하도 마친가지다. 왜 둘이 같이 나왔는지 난 모르겠다.


살면서 그렇게 공포심에 마음이 오그라져 없어질 것 같은 꿈은 처음이다. 그 거세게 흐르는 물살을 상상하면 나는 지금도 앉은 자리에서 우뚝 굳어버릴거같다.


너무 무서운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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