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집에 데려다줄게요.
꽃보다 그녀-13
“아저씨, 저… 집에 가지 말까요? “
복숭아빛으로 물든 볼과 앙증맞은 입술을 바라보면서 백현은 목울대를 꿀꺽, 하고 움직였다. 허벅지에 단단하게 힘이 들어간다.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말인가. 백현은 단전에 뭉근하게 모이는 열기를 애써 외면하며 물었다.
“집에 가기 싫어요?”
“네. 이렇게 즐거운 날, 집에 너무 일찍 가면 아쉬울 거 같아요.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뭐 그런 노래도 있잖아요?”
아하. 더 놀자는 의미였군. 백현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마른 입술을 축였다. 섣불리 기대하지 않기를 다행이야. 아니, 기대했나 보다. 나도 참 흔한 남자였군. 제이콥을 나무라면 안 되는 거였나. 마침 근처에 적당한 크기의 클럽이 있어 둘은 그곳으로 향했다.
크게 오픈된 공간에는 젊은 남녀가 꽉 차 있었고 왼쪽 안으로 쭉 이어지는 긴 바에는 음료를 주문하려는 사람들이 몇 겹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오른쪽 안쪽으로는 부스가 몇 개나 있어 남녀가 삼삼오오 앉아서 각자의 술을 마시며 떠드는 중이다. 클럽에 처음 온 지영은 일단 어마어마한 볼륨의 음악에 압도되고 수많은 젊은 남녀의 화려함에 기가 좀 죽었다.
키가 큰 남자들 사이에 어쩔 줄 모르는 지영을 보고 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하다가 곧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봤다. 백현은 그녀의 귀에 대고
“뭐 마실래요?”
하고 소리쳤다. 그녀도 백현의 귀에 대고 크게 말했다
“아저씨랑 같은 걸로 할게요!!!”
백현의 가슴에 작은 손을 짚고 다가오는 지영의 모습을 슬로 모션처럼 바라본 백현은 순간 귓가로 다가오는 그녀의 얼굴을 잡고 작은 입술에 입 맞추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이겨냈다. 파랗고 붉은 조명 아래 희게 빛나는 그녀의 얼굴은 참으로 탐스럽다. 백현은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마른침을 삼키고 바로 향했다.
혼자 남겨진 지영은 어쩔 줄을 모르고 서 있었다. 키가 큰 백인 남자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니 정신이 없다. 화려하게 메이크업을 하고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은 여성들 사이에서 지영은 오히려 돋보였다. 긴 찰랑이는 검은 머리를 내려뜨리고 몸에 딱 맞는 드레스에 가냘픈 흰 어깨는 조명 아래 꼭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처럼 보였다.
헌팅을 하러 나온 남자들은 금방 그녀를 발견하고는 그녀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헤이 베이비, 혼자야? 일행은? 술 마실래? 정신없이 쏟아지는 질문과 남성호르몬을 풀풀 풍기는 남자들 사이에 지영은 어쩔 줄 모르고 고개를 가로젓고만 있었다.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초조하게 바를 바라보며 아저씨가 빨리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백현은 마음이 조급했다. 오늘따라 압도적으로 많은 남자들의 비율이 맘에 들지 않다. 진토닉 두 잔을 들고 돌아선 그는 “fuck…” 하고 욕을 했다. 지영의 주변을 빙 둘러싼 여러 명의 남자들이 그녀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고 그 가운데 지영은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다. 성큼성큼 다가가 남자들을 어깨로 밀치며
“헤이 베이비,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하며 그녀의 손에 술잔을 쥐어주고 볼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다른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아 품 안에 끌어 앉자 아쉬운 표정의 남자들이 연기처럼 흩어진다. 남자들이 흩어지고 나서 그녀를 품에서 풀어준 백현은 지영의 얼굴을 살폈다.
“미안해요. 오래 기다렸죠? 오늘 사람이 유별나게 많네요.”
“휴! 아저씨 덕분에 살았어요. 제가 만만해 보이나 봐요! 흥! 웃겨 정말!”
금방 기가 살은 지영은 진토닉을 쭉 마신다. 그렇게 마시면 취할 텐데… 젊은 남자들의 테스토스테론이 가득한 공기에 눌려 있다 물 밖으로 나온 기분인 지영은 크게 한 모금 들이켰다. 라임의 신맛과 토닉워터의 단맛이 지영을 용감하게 한다.
술잔을 꼭 쥐고 빨대로 야무지게 진토닉을 마시는 지영을 보며 백현은 너털웃음이 터졌다. 둘은 빈자리를 찾아 구석진 자리로 옮겨 앉았다. 바짝 붙어 앉게 된 백현은 자연스레 소파 위에 손을 올리고 몸을 지영쪽으로 틀었다. 술이 오르는지 제법 얼굴이 붉어진 지영은 로비에서 울려오는 음악에 손을 나풀대며 술을 야금야금 마시는 중이다. 작은 입술을 오물오물 거리며 빨대를 머금었다 놨다 바빴다.
“지영 씨, 술 잘 마시네요?”
“저 술 되게 센가 봐요! 대박!”
“지영 씨는 밥도 잘 먹고 술도 잘 마시고 아주 이뻐요.”
“네? 그렇게 갑자기…”
지영은 갑작스러운 칭찬에 부끄러워졌다. 어느덧 가까워진 백현의 얼굴이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갑자기 왜 조용해요?”
“아, 아저씨… 얼굴이 너무 가까워요…”
“하하하! 아 미안 미안. 지영 씨가 너무 귀엽고 이뻐서 자꾸 나도 모르게 가까이 가나 봐요.”
“저…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물어봐요.”
“아저씨, 혹시 여자 친구가 있거나 유부남은 아니죠…?”
백현은 크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상기된 지영의 얼굴이 참으로 귀여웠다.
“그런 건 데이트 나오기 전에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네??? 그, 그렇긴 한데… 혹시 유부남… 아니죠?”
“하하하하! 아니요. 신체 건강한 싱글남입니다. 이제 오케이?”
생긋 웃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지영의 얼굴을 보다 그는 그녀의 볼에 살짝 입을 맞췄다. 깜짝 놀란 지영은 입술을 살짝 벌린 채 눈을 동그랗게 뜬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백현은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느린 화면처럼 다가오는 그를 홀린 듯 바라보던 지영은 그에게서 물씬 풍기는 남성의
체취를 맡는 순간 눈을 감았다. 그가 지영의 작은 입술에 살짝 입 맞추고 아랫입술을 슬쩍 물었다 놓았다. 지영은 움찔거리며 쌕쌕 숨을 쉴 뿐이다.
“이것도 오케이?”
지영이 눈을 꼭 감은 채로 살짝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그녀의 뒤통수를 당기며 그녀를 집어삼킨다.
지영은 백현의 입술이 가볍게 닿았을 때 벼락 맞은 듯하다, 라는 말을 실감했다. 살짝 차가운 그의 입술이 내려앉아 촉, 가벼운 소리를 내고 떨어졌다. 조금 더, 이게 뭔지 알고 싶은데… 백현이 이것도 오케이?라고 물어서 고개를 끄덕이자 바로 그의 혀가 입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선선했던 입술의 온도와는 달리 그의 입 안은 뜨겁고 어쩔 줄 모르고 움찔대는 지영의 혀를 거침없이 얽은 채로 탐했다. 그 작은 부위의 결합이 뜨거운 타액과 섞여 빈틈없이 맞물리자 지영은 그와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숨이 가빠와 정신이 혼미할 무렵 그가 지영을 놔주었다. 핡핡대는 지영의 가뿐 숨소리를 들으며 백현은 온통 축축해진 지영의 입술을 엄지로 쓸어주었다.
“키스도 처음이에요?”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지영을 보며 백현은 그녀의 가냘픈 어깨를 감아 자기에게 끌어와 안았다.
“날 자빠뜨리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오늘은 이것만 하고 집에 가요. 제가 겁이 좀 많아서 마음의 준비가 안됐어요.”
지영은 백현의 어깨에 기대어 몽롱한 여운을 느끼다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실소를 터트리다 크게 웃기 시작한 지영의 얼굴을 짓궂게 바라보던 백현은 웃는 그녀의 얼굴이 눈부시다는 생각을 했다. 향긋한 여인의 체취와 달콤한 입술을 맛보고 단단하게 굳은 중심은 아우성을 치며 해방을 주장했지만 짐승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짐승이 되기 전에 가자.
“이만 집에 데려다줄게요.”
백현이 내민 손에 지영이 희고 작은 손을 얹자 그가 조심스럽게 하지만 단단히 그녀의 손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