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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런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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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May 15. 2020

자기만의 방 그리고 2500파운드

영국 코로나


코로나 19 사태로 영국 정부가 여러 가지 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경제 활동을 했던 국민(풀타임/ 파트타임 직장인, 프리랜서, 예술가, 자영업자 등) 모두에게 지난 3년간 소득세 납부액을 기준으로 기존 수입에 80%, 최대 2500파운드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한 달 넘게 럭 다운으로 집에만 있으니 기본적인 관리비와 식재료비만 든다. 지난 한 달간 지출을 셈해보니 관리비와 주민세(Council Fee)로 대략 월 500파운드, 식재료 구입에 월 1,000파운드, 집과 자동차 보험료 그리고 럭 다운용 엔터테인먼트(영화 다운로드, 도서 및 기타)용으로 월 800파운드로 총지출이 2,300파운드 정도이다. 월세를 내야 한다면 지출은 훨씬 많아질 것이다. 아무튼 외벌이였다면 정부에서 주는 2500파운드는 정말 딱 먹고, 자고, 입고 그야말로 에센셜 한 생활만 가능한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작품 '자기만의 방'에서 연 수입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있다면 여성 작가 중에서도 셰익스피어와 같은 대문호가 탄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작품은 1928년 캠브리지에서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자기만의 방’이라는 제목으로 1929년 발표한 책이다. 화폐가치 컨버터를 돌려보니 그 당시 500파운드는 현재 가치로 31,617 파운드(약 4750만 원)이다. 월로 계산하면 2,635파운드(396만 원)이다.

심플하게 말해서 월 2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훌륭한 작가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것은 최소한의 물리적인 조건이고 그 당시 여성을 규정하는 편견과 차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시대를 앞서가는 정신, 개인적인 의지, 역량이 있어야 한다. 페미니스트 여성 문학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연찮게도 이번 팬데믹 상황에서 영국 정부가 제공하는 지원금, 럭다운 기간 최소 생활비,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말한 경제적 독립을 위한 자금, 이 세 가지의  값어치가 대략 월 2500파운드 (약 375만 원)이다.

작가 J.K 롤링은 3년 동안 정부 보조금 (주당 한화 15,000원)을 받아 생활하면서도 해리포터 시리즈를 썼고 작품의 흥행으로는 수입면에서 (7억 5천만 파운드, 한화로 1조 1260억) 당대 최고의 작가가 되었으니 사실 반드시 큰돈이 무엇을 이루는 필수조건은 아니다. 그래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창작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런던에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문화, 예술, 종사자들이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거장들에서부터 떠오르는 샛별들까지. 하지만 이름 모를 길거리 공연자나 거리의 화가들도 많다. 코로나 사태로 유명인들의 공연, 전시, 강연도 취소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무명의 예술인들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고단한 삶에 위로가 되었던 그들을 럭다운으로 인해 볼 수 없는 것도 이래저래 안타깝지만 그들이 더 이상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싶다. 장기화되어가는 팬데믹 상황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이 어찌 그들뿐이겠는가. 경제 불황, 사회에 만연한 불신과 불안 속에서 어려움에 처한 주변을 돌아보자. 나에게 하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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