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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Aug 01. 2020

요크의 역사는 잉글랜드의 역사다

영국 여행

‘요크(York)의 역사는 잉글랜드(England)의 역사다.'

영국의 마지막 황제 조지 6세가 남긴 말이다. 그는 산업혁명 시대 대영제국을 이끈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자이자 엘리자베스 여왕 2세의 아버지이다. 조지 6세는 요크 공작 (Duke of York)이기도 했다.

잉글랜드 북쪽 우즈 강변을 따라 자리 잡은 요크(York)는 로마제국이 잉글랜드를 지배할 당시(43-410년) 세워진 도시이다. 로만 브리튼(Roman Britain) 시기에는 에보라쿰(Aboracum), 앵글로색슨 지배 시에는 에어포윅(Eoforwick), 바이킹의 지배를 받던 시기는 요르빅(Jorvik)으로 불렸다.

< 요크셔 지방 로쉬 애비 - 폐허가 된 중세시대 수도원>


시내에는 어느 곳에서나 보이는 북유럽 최대 성당이자 캔터베리 대성당을 버금가는 요크 민스터(York Minster)가 있다. 성 베드로 성당(St. Peter Cathedral) 이라고도 불린다. ‘민스터’는 1066년 노르만 공작 윌리엄의 잉글랜드 정복 이전에 지어진 예배당을 말한다. 요크 민스터도 7세기경에 지어진 목조 건물 예배당이었는데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복구를 거듭하다가 정복왕 윌리엄 의해 노르망 왕조가 들어서고 1260년부터 1472년까지 200년 동안 새로 지어진 진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노르만 공작 윌리엄이 잉글랜드 정복왕이 되면서 요크(York)를 잉글랜드 북부 군사 중심지이자 종교 도시로 성장시켰다. 윌리엄 왕은 강력한 왕권 확립을 위해 잉글랜드 전역에 1000여 개의 거대한 성을 쌓고 고딕 양식의 화려한 성당을 세웠다. 이를 위해 막강한 재원이 필요했고 윌리엄 왕은 이를 충당하기 위해 금융 대부업에 종사하는 유대인 이민자를 데려온다. 윌리엄은 이들로부터 금융 지원을 받거나 세금을 걷고 그들을 위한 유대인 집단 거주지를 만들어준다.

100년 후 십자군 전쟁으로 반이슬람뿐 아니라 반유대 감정이 잉글랜드 전역에 확산된다. 그리고 영국 역사상 최초 유대인 집단 학살이 일어난다. 유대인 집단 거주지이자 학살이 일어난 곳이 요크(York)이다.


1300년대부터 요크(York)는 주로 양모 생산과 무역으로 번성했고 기타 상업으로도 발전했다. 길드가 조직되었고 길드 조합원들의 회합 장소였던 ‘Merchant Taylors’ Hall’ 아직도 남아 있고 중세시대 상점들이 번성했던 샘블즈(Shambles) 골목도 그대로 남아있다.


1455년-1485년, 30년 동안 치러진 장미 전쟁도 요크(York)와 관련이 있다. 빨간 장미 문장의 렌체스터 가문(House of Lancaster)과 하얀 장미 문장의 요크 가문(House of York)의 왕위 쟁탈전이 바로 장미전쟁이다. 요크 가문의 리처드 3세가 장미 전쟁에서 전사하면서 요크 왕조는 사라지고 렌체스터 가문의 헨리 7세가 왕이 되면서 튜터 왕조가 시작된다.


< 아직도 남아 있는 중세 시대 주택 >


튜더 왕조 엘리자베스 1세 치하에 활동한 셰익스피어의 작품 <리처드 3세>가 있다. 극 중 리처드 왕은 꼽추의 흉한 외모를 지닌 극악무도한 악인 캐릭터로 묘사된다. 그로 인해 리처드 3세는 영국 역대 왕 중 ‘절대 악’으로 기억되는데 어느 정도 사실에 바탕을 두었겠지만 셰익스피어가 활동한 시기를 감안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19세기 산업 혁명시대를 맞아 요크(York)는 잉글랜드 최대 철도교통 중심지가 되었고 증기기관을 이용해 초콜릿 대량 생산 공장도 세웠다. 철도라는 새로운 물류 수단을 이용해 영국 최대 초콜릿 판매망을 갖추게 되었다. 1862년 설립된 초콜릿 회사’RownTree’이 우리가 한 번쯤은 먹어보았을 키켓 (Kit Kat) 초콜릿이 개발했다. 그 당시 요크 지역 대부분 사람들은 철도 회사 아니면 초콜릿 공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3일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과거와 현재,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여정이었다.. 로마제국 지배 당시 세워진 성벽(City Wall)을 따라 걷고, 유대인의 자금 지원으로 윌리엄 왕이 쌓은 그러나 후에 유대인 집단 학살 장소가 되어버린 성(York Castle) 언덕에도 올랐다. 런던의 유명인사들이 방문해 유명해졌다는 The Ivy York에서 점심을 먹고 스카버로(Scarborough) 캐슬을 둘러보고 해안가를 따라  ‘리처드 3세’ 식당에서 요크서 푸딩을 먹는 요크의 동안 수 천년 역사가 오롯이 느껴졌다.



요크 공작(Duke of York)은 전통적으로 두 번째 왕위 계승자(차남)에게 수여하는 작위이다. 조지 6세의 ‘요크의 역사가 잉글랜드의 역사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이인자가 아니라 일인자이다’라는 뜻을 내포한다고 생각했다. 요크를 둘러보니 조지 6세의 요크에 대한 평가가 권력을 향한 사심은 아니었던 듯하다. 캠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컬리지에서 1년 간 역사를 공부한 그답게 요크를 제대로 평가한 것이다.


2018년 가장 살고 싶은 도시로 요크가 런던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여러 면에서 어느 정도 동의가 된다.

York in England, UK (2020.07.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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