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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Aug 01. 2020

골프의 고향,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류

영국 여행

골프의 고향, 골퍼들의 성지

          세인트 앤드류 링크 올드코스



에든버러에서 자동차를 타고 북동쪽을 향해 바다 위 다리를 건너면 세인트 앤드류(St. Andrew)에 도착한다. 이곳에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인 성 안드레아의 유골이 안치된 ‘성 안드레아 대성당(St. Andrew Cathedral)’이 있다. 그래서 이 도시의 이름도 세인트 앤드류가 되었다.

더불어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모교 세인트 엔드류 대학(St. Andrew University)이 있고, 골프가 탄생한 ‘골프의 고향 (Home of Golf)’으로 골퍼들의 성지이기도 하다.

St.Andrew Links의 7개 골프 코스 중 ‘Old Course’가 바로 그곳이다. 링크스는 고대 영어로 ‘바닷가 모래 언덕’이라는 의미인데 해안가를 따라 자연 상태로 만들어진 골프장을 말한다.

올드 코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으로 1552년 세인트 앤드류 성당 대주교가 공식적으로 이 곳 주민들에게 골프를 허용했다.

골프는 15세기 초반 스코틀랜드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젊은이들이 지나치게 골프에 빠져들자 1457년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2세가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그 후 1502년까지 금지된 스포츠였다가 제임스 4세가 금지령을 해제했다. 본인이 골프를 즐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왕의 취향에 의해 개인의 취미가 좌지우지되다니.

올드코스는 해안가에 닿아 있고 바다 바람으로 억세진 풀들이 모래 언덕을 따라 굽이진다. 자연 그대로 보전되고 있는 이 곳은 브리티쉬 오픈 골프 대회가 열리는 곳이며, 전 세계 골프 애호가들의 인생 버킷리스트에 담겨 있는 ‘꿈의 코스’라고 한다.

< 브리티쉬 골프 우승자가 기념 사진을 찍는 500년 된 돌다리>


‘골프의 성지’에서 플레이를 원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멤버와 방문자 모두 추첨제로 운영된다. 평소 같으면 당첨 확률이 희박한데 코로나 사태로 관광객 발길이 끊겨 기회를 잡았다. 평소에는 아메리카에서 오는 골퍼들이 80% 이상이라는데 올여름은 모든 것이 예외다.

20년 간 우체국 매니저를 하던 글래스고 출신 캐디 아저씨는 은퇴 후 이곳에서 15년째 캐디를 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인들이 오지 않으니 조용해서 좋다는 얘기를 했는데 영국인 입장에서는 미국인이 시끄러운가 보다. 우체국 근무 시절 윌리엄 왕자를 자주 봤는데 성격도 좋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했다. 케이트는 어땠냐고 물으니 노코멘트란다.

< 올드코스에서 함께한 콜란>


골프의 고향이라서인지 경제적 능력에 관계없이 이 곳 주민은 원하면 누구나 골프를 칠 수 있다고 한다. 관광객은 시간과 돈을 들여 찾아오는 성지이지만 이 곳은 사실 세인트 앤드류 시(Council)에서 운영하는 퍼블릭 시립 골프장이다. 이 곳 주민은 연회비 £1000, 학생은 £200이면 1년 내내 골프를 칠 수 있다. 동네마다 헬스클럽 가듯 골프를 치는 것이다.

< 세인트 앤드류 링크스 올드 코스 1번홀>


1번 홀은 시내 중심과 바닷가를 사이에 두고 있다. 티 박스에 서면 동네 사람들이 필드를 가로질러 산책을 한다. 캐디 아저씨에게 골퍼와 주민 누구에게 통행 우선권이 있는지 물었다. ‘골퍼이지만 주민들은 별로 지키지 않는다’ 답한다. 티샷 할 때도 펏팅할 때도 산책하던 주민들이 갤러리가 되어서 응원을 해준다.

벙커는 듣던 대로다. 벙커마다 이름이 있는데 지옥의 벙커(Hell Bunker), 관 벙커(Coffin Bunker) 등 이름만 들어도 상상이 간다. 공은 말할 것도 없고 한번 빠지니 나도 나오기 힘들었다.

< 직각으로 깍아진 벙커>


18홀을 다 돌고 나니 이 곳이 왜 골프 성지인지 어렴풋이 알겠다.

사실 나는 골프를 잘 치지도 못하고 골프 애호가도 아니다. 산을 깎고 나무를 베고 반듯하게 땅을 다지고 이곳저곳 구멍을 내고 잔디 보호를 위해 제초제를 뿌리고. 골퍼 외에는 코스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담을 쌓고, 기업형으로 운영되는 골프장에는 시간과 돈의 여유가 있는 외지의 재력가들만 드나들고. 마을 사람들은 담장 너머 소외되고. 가끔 골프를 치면서도 뭔가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골프가 탄생했던 태초의 모습 그대로이다. 자연 훼손의 이미지가 없다. 돈을 쓰러 온 외지인을 위해 마을과 이웃을 향해 담을 쌓지도 않는다. 외지인이 쓰고 간 돈이 특정한 누구의 부를 쌓는데 쓰이지 않는다. 운영 수익금은 이 지역 발전과 거주민을 위한 복지 비용으로 사용된다.

< 바다와 맞닿은 모래 언덕에 자라난 수풀 속 티박스>


이곳이 럭셔리하고, 선택적이고, 배타적이어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가장 공평하게 가장 이타적으로 골프를 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성지’이고 ‘버킷리스트’에 담긴 것이 아닐까?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이 땅에 와서 차별과 편견 없이 누구에게나 사랑의 메시지를 전했던 예수가 태어난 곳. 기독교인의 성지가 된 예루살렘과 골퍼들의 성지인 이곳에서 모두 회심을 경험한다. 나의 오만과 편견을 모두 내려놓어야 진정한 ‘태초’를 경험하고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성지이고 꿈인 이 곳에서 운 좋게 주어진 행운을 얻었다. 은혜와 구원도 이렇게 찾아오는 것인가?


St. Andrew in Scotland, UK (2020.07.2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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