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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Oct 09. 2020

영국 사립학교 선택법

영국 학교






매해 10월이면 영국은 상급학교 입학 지원 준비로 학교, 학생, 학부모 모두 분주하다. 실제 입학은 다음 해 9월이지만 전년도 10월부터 6개월에 걸쳐 입학 설명회, 지원, 시험, 선발이 이루어진다. 대학 입학 이야기가 아니다. 사립학교의 경우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이 절차를 거친다.

여름 방학이 지나면 학부모들은 학교 설명회 투어 일정표를 짠다. 학교는 입학 희망 가족을 맞이하느라 축제 분위기다. 재학생 부모 주도로 차(Tea) 또는 칵테일을 준비해 웰컴 파티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처음 만나는 사이지만 같은 학교 학부모가 될지도 모른다는 모종의 기대감에 반갑게 인사말을 나누거나 학교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답한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교장 또는 입학 담당교사가 학교의 비전, 교육 가치 등을 발표를 한다. 담당 선생님들은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이나 교수법을 홍보하기 위해 참관 수업을 하고 교실을 공개해 방문자들과 1:1 상담을 하기도 한다. 제2외국어 담당 선생님들은 글로벌 시대에 자신이 담당한 언어가 필수라며 입학하게 되면 자신의 과목을 수강해 달라고 어필한다.


< 런던 북쪽 Highgate School 입학 설명회 >


재학생들은 학교 홍보에 바쁘다. 팀을 나누어서 방문자를 위해 학교 건물 투어를 해주거나 자신들이 참여하는 각종 클럽 시연회를 한다. 아트 클럽 학생들은 작품 전시회를, 뮤직 클럽 학생들은 음악 콘서트 한다. 드라마 클럽은 연극을, 스포츠 클럽 학생들은 방문자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경기를 한다. 과학 클럽은 심지어 개구리, 생선 해부 실습도 보여준다. 그 외 클럽들은 홍보 부스를 만들고 브로셔와 함께 쿠기, 사탕 등으로 호객(?) 행위를 하며 방문객 유치 작전을 펼친다.

학부모들은 학교 관계자나 교사보다 학생들이 주관하는 세션에 더 관심을 갖는다. 재학생들에게 이런저런 질문도 하면서 학교에 대한 만족도나 합격 비결도 슬쩍 물어본다. 또 그들의 태도나 말투를 살피고 얼마나 스마트한지 비교해가면서 나름 학교별 점수표를 만든다. 부모들은 재학생을 살피는데 반해 지원자 아이들은 재미있는 세션이 얼마나 많은지 어떤 쿠키와 음료가 제공되는지가 '선택' 기준이다. 우리 둘째는 스코티시 쇼트 브레드(Scotish Short Bread)를 마음껏 먹게 해 준 학교와 과학 클럽에서 불 쇼(Fire Show)를 체험할 수 있게 해 준 학교를 무조건 '선택'했다.  


< St. Paul School 과학 클럽 학생의 생선 해부 시현 >


입시 설명회가 끝나면 이제 비로소 학교 '선택'을 즐긴다. 대부분 학교마다 셔틀버스가 있어 거주지가 아니더라고 통학 거리 1시간 내외이면 모두 지원 가능하다. 명문학교를 찾는 학부모들은 입학이 결정되면 아예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하기 때문에 거리 제한 없이 다양한 '선택'이 주어진다. 학교 설명회 덕분에 런던 구석구석 동네 유람을 하게 된다.

축제 분위기의 학교 투어가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영국 전체로 33,000개, 런던에만 200개가 넘는 사립학교가 있다. 선택지가 너무 많기도 하고 그중 상당수가 입학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도 '선택'이다. 아카데믹을 우선으로 여기는 부모와 학생은 시험이 있는 학교(Selective School)를 그 외는 서류 지원과 면접으로 시험을 대신하는 학교(Non-Selevtive School)를 '선택' 할 수 있다.

사실 영국 오기 전 만해도 '영국에 가면 아이들은 양이 풀을 뜯는 초원을 뛰어다니며 마냥 자유롭고 행복한 학교 생활을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막상 와보니 유치원부터 입시 전쟁이다. 로열패밀리 중 한 명만 다녔어도 명문 유치원이 되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대기자 등록을 해야 한다. 우리는 영국 오자마자 2개월 만에 둘째 중등학교 입시를 준비해야만 했다. 이 동네 저 동네를 유람하듯 다니며 학교 ‘선택'의 즐거움을 맛보기는 했다.


하지만 ‘아이는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 던 나의 소신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동양 엄마 (Asian Mom)’의 DNA가 꿈틀거렸다. 그리고는 1순위 지원학교로 경쟁률 10:1이 넘는 아카데믹한 곳으로 ‘선택'해 버렸다. 그 결과 몇 달간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열 살짜리 아이와 마주 앉아 시험 준비에 매달렸다.


입학시험 당일 아침, 아이를 시험장에 데려다주었다. 한국 입시처럼  찹쌀떡을 먹이거나 학교 담벼락에 엿을 부치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안절부절 걱정이 되어 학교 정문 앞을 서성였다. 많은 수험생 부모들이 아이들을 전쟁터에 보내듯 한참을 안아주거나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옆에 있던 이름 모를 학부모에게 나의 초초한 마음을 드러냈다.


< City of London Scool 입학시험 당일 >


‘시험을 잘 봐야 할 텐데. 나는 영국이 이렇게 어릴 때부터 입시 스트레스가 있는지 몰랐어. 영국 부모들 대단해'라고 했다. 그는 전혀 초초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은 채 '꼭 그런 건 아니야. 이런 스트레스를 원하지 않으면 Non-Selecetive(시험으로 선발하지 않는) 학교를 '선택'하면 돼. 학교는 얼마든지 많아. 우리는 그냥 이 길을 '선택'한 거야.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고 덧붙이기를 '다른 길을 선택하면 또 그 선택의 기쁨이 있지!'

아! 뭔가 부끄러운 마음에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길은 둘 곳이 없었다. 런던에만 수 백개의 선택지가 있음에도 나는 ‘학생이 공부는 기본이지!’, ‘공부 잘하는 학교가 좋은 학교가 아닌가?’라며 무의식인 듯 의식적으로 학교를 선택했다. 나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선택하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대부분 학교가 버추얼로 입학 설명회를 진행한다. 찬바람이 부는 10월이 되니 유람하듯 즐겼던 학교 투어와 ‘선택하는 법’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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