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런던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 스타킹 Nov 22. 2020

미국 자본주의 의문의 1패

영국 일상




학교에서 돌아온 막내가 뜬금없이 묻는다. “엄마! 세상에서 어느 나라가 가장 힘이 쎄요?”, “응? 힘? 그게... 글쎄 뭐라고 해야 하나. 그 힘이 세다는 게 그러니까 말이지.... 그 나라 사람이 정말 물리적으로 몸짱이고 힘이 세다는 건지, 다른 나라랑 전쟁을 하면 이길 수 있어서 세다는 건지, 아니면 우주탐사, 인공지능 로봇처럼 세상에 없던 일을 해내고 만들어내서 세다는 건지, 소수자 차별 없고, 소외된 사람이 없고, 굶주린 사람이 없어서 세다는 건지, 경쟁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어서 세다는 건지....”


“엄마! 그래서 누가 젤 쎄냐고요?"

미국!이라는 가장 간단한 답이 있는데 나는 왜 또 답을 찾아 헤매는 건지. '미국이 세상에서 가장 센 나라가 맞음!'이 맞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막내 같은 반 친구 중에 중국 아이가 있다. 어떤 맥락에서였는지 '중국이 세상에서 제일 쎄!' 했다는 거다. 우리 집 막내의 세계관은  'OOO에서 보물찾기 시리즈'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마음은 '아니야! 한국이 제일 쎼!'라고 하고 싶었지만 자칭 또래의 식자층으로서 그런 억지를 부리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자기가 읽은 책에 의하면 러시아가 제일 센 나라였다. 아이는 아직 '미국에서 보물찾기' 편을 읽지 못했다.

결론이 나지 않은 채로 막내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학교로 돌아가 다시 논쟁을 이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이럴 땐 근거 있는 확신이 필요한데 이 엄마는 근거도 확신도 빈약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세계 정치와 권력다툼이 집안 일보다 더 중요한 남편이 출장길에 오르지만 않았어도 충분히 근거도 있고 확신에도 찬 답을 들을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아이는 답을 주지 않는 엄마를 답답해하며 저녁나절을 보내야 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못 참는 남편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막내는 잠자리에 누워서도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있었다. “세상에서 어느 나라가 가장 쎄냐고요?”


이 질문이 내 수면보다 중요할 일은 아니다. 고민 없이 해치우자. 나의 수면을 지켜낼 방법을 찾자! 구글 검색창을 띄우고 '세계에서 가장 센 나라는?'이라고 썼다. 아이 눈 앞에 화면이 펼쳐진다. “구글이 미국이라네! 됐지? 이제 자자! 끝!”

끝냈다고 끝이 아니다. 자기 지식으로는 러시아가 제일 센 나라인데 왜 어째서 미국이 젤 센 나라가 되었냐고 묻는다. 나는 도대체 언제쯤 잘 수 있는 것인가? 이럴 땐 남편이 흑기사로 등장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는 현재 한국에서 자가격리 중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 와중에도 '자유란 무엇인가? 세계 정치는 어느 길목에 있는가? 한국과 영국의 교육 철학은 어떻게 다른가?' 이런 걸 고민하느라 꿈속에서라도 우리를 찾아올 틈이 없을 것이다.






그래.... 너에게는 엄마의 수면보다 중요한 일이지. 아이에게 대물림된 이기적 유전자를 탓했지만 동시에 자칭 체제이념 전문가 남편의 부재가 아쉬웠다.

 'OOO에서 보물찾기'보다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뭔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해서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맥락은 '너와 형 그리고 빵'이었다. “너는 빵 5개를, 형은 15개 구웠어. 공산주의는 엄마가 그걸 다 가져간 다음 너와 형에게 똑같이 10개씩 나누어 주는 거야. 자본주의는 형은 자기가 만든 15개를 다 갖는 거고, 너는 네가 만든 5개만 갖는 거야”라고 참 빈약하게 설명했다.

아이는 “그럼 공산주의가 더 페어(Fair) 한 거네!”한다. 아이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아무튼 아이가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공산주의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소련이 결국 왜 해체되었는지 더 빈약한 설명을 하고서야 나는 잠을 잘 수 있었다.






주말을 맞아 둘째 아이가 브런치를 준비했다. 덕분에 우리는 침대에서 충분히 늦잠을 잤다. 형이 차린 성대한 식탁 앞에서 막내는 “역시, 난 페어 한 공산주의가 좋아!”

두 형이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요리는 형이 혼자 다 했는데 우리 모두 똑같이 먹게 되잖아!” “엥? 그럼 공산주의 반대는 뭔데?” 큰형이 물었다. “아... 그거... 뭐더라... 아! 자뻑 주의!!”, “뭐? 무슨 주의?”, “그거 있잖아. 혼자 다 먹는 거. 자기가 잘났으면 다 내 것이라고 하는 거. 그거 자뻑 주의 말이야. 미국이 자뻑 주의래.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세졌데!”


헉! 나는 그렇게 설명한 적이 없다.

때마침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존 책 배달이다. 큰 아이가 말한다. “미국 자뻑 주의 승자, 아마존이다!”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주문 하루 만에 약속대로 도착했다. 제목도 절묘하다. 버락 오바마의 자서전 ‘약속의(된?) 땅!'이다.


<버락 오바마 자서전 ‘약속의 땅’>
매거진의 이전글 하던 대로 하지 않기, 살던 대로 살지 않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