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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Mar 27. 2021

이제 알겠니? 내 마음!

가족 관계



나에겐 세 아이와 남편이 있다.


작년 12월 초, 영국에 3차 럭다운이 시작되고 아이들 모두 최근까지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했다. 아이들이 집에 있는 동안 집안 일과 함께 초등 1학년 막내의 시간표에 따라 옆에서 수업을 챙기고 쉬는 시간은 서로 다른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학교별  런치타임에 맞춰 식사 준비를 한다. 이 정도는 그럭저럭 할 만하다.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은 인터넷에 빠진 사춘기 둘째를 어르고 달래는 것이다.


둘째는 온라인 수업 중에도 유튜브나 인터넷 게임을 즐기며 디지털 영토를 누빈다. 진정한 멀티플레이어 둘째에게 박수라도 보내야겠지만 한 숨이 먼저 나온다. 매번 방문을 열고 확인할 수도 없다.  감시하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아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가끔씩 아이를 부른다.  ‘OO~, 뭐 하니? 쉬는 시간에는 내려와 쉬어야지! 간식 좀 줄까?’


대답은 한결같다. “지금 바빠요! 수업 중이에요! 숙제해요.! 공부해요!” 참고 참다가  방문을 열면 두 번 중 한 번은 사이버 전투에 빠져든 아이를 현장 목격한다.


‘아들아! 수업 시간에는 수업을 하자!’


타이르고 사정하고 혼도 내 보지만 독립투사 마냥 어떤 어려움과 고난에도 아이는 디지털 전선을 지켜낸다.


최대한 아이들의 선택을 믿고 자율적인 삶을 지지하겠다며 이상적인 ‘현명한 어머니’를  추구하지만 수업 중에도 사이버 전장을 누비는 둘째를 목격하면 여지없이 나는 ‘현실 마녀’로 변신한다. 인터넷 게임은 ‘악의 축’이 되고, 인터넷에 빠진 아이도 타도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한 번씩 거사를 치르고 나면 현명한 어미의 모습을 내 던진 나 자신을 후회하고 반성하지만 돌이킬 수도 없다. 감정적인 소모뿐 아니라 육체적인 피로감도 함께 밀려온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아이의 방문을 열기도 머뭇거려지고 웬만하면 모르는 척하고 싶다. ‘제발 학교만 가라’ 주문을 외운다.




드디어 몇 주 전 아이들이 학교에 가게 되었다. 아이들 등교 후 절대 평온을 만끽했다. 이제 겨우 며칠 학교에 간 것 같은데 오늘이 봄학기 마지막 날이다. 팬데믹으로 지난 1년간 7개월 넘게 문을 닫았던 학교지만 방학의 문은 여지 없이 활짝 열린다. 다음주부터 3주간의 부활절 방학이다. 럭다운 규제가 완화되고 있다지만 여전히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아이와 디지털 전쟁을 치를 것을 생각하니 몸과 마음이 긴장된다.


몇 년 전 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핸드폰을 사준 남편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담아 말했다. “이제 OOO와의 디지털 전쟁은 자기가 맡아!”


내가 너무 심한 요구를 한 것인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다.


“자기는 하는 일이 뭐야? 빨래도 내가 하고! 설거지도 내가 하고! 쓰레기도 내가 버리고! 청소도 내가 하고! 정원 관리도 내가 하고! 애도 내가 데려다주고!”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소리다. 내가 집 안 일에 지쳐 있는데 남편이 나에게 뭔가 지나친 요구를 한다 싶으면 내가 남편에게 했던 이야기다.  


럭다운이 길어지면서 아침부터 밤까지 식구들 돌보기에 지친 나는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남편에게 몇 가지 집 안 일을 맡겼다. 빨래통에 넣어 둔 빨래 돌리기, 일주일에 한번 쓰레기 버리기. 사실 남편이 정기적으로 하는 일은 딱 두 가지이다. 정원 관리는 본인 취미로 한 달에 두어 번 한다. 그 외에도 집안일이란 얼마나 많겠는가. 그건 대부분 나의 몫이다.




지난 20년간 세 아이를 키우며 내가 했던 일. 그러나 한 번도 일로 인정받지 않았던 일. 힘든 내색을 하면 “뭐가 그렇게 힘들어? 집 안 돌보고 아이 키우는 것이 여자의 행복이지! 그렇게 힘들면 하지 마! 나는 자기가 좋아서 하는 줄 알았지. 누가 그렇게 힘들 정도로 하라고 했어?”


남편의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누가 시킨 적도 없는데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닌데 너무도 열심히 살림을 하고 너무도 정성껏 아이를 키운 내가 잘못했네’ 하는 생각과 함께 억울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남편도 집 안 일이라는 것을 조금, 아주 조금 해 보니 힘들기도 하고 뭔가 억울한 느낌도 들고 그런가 보다. 아니면 강 건너 불구경이었던 둘째와 벌여야 하는 전쟁에 자신이 참전해야 한다 생각하니 너무 두려웠나보다.


나도 남편에게 말해 주었다.


"어머! 자기야. 힘들면 하지 마! 난 자기가 집안일 좋아서 하는 줄 알았지. 어휴… 힘들면 하지 말아야지!"


진심이었다.


이제 알겠니? 내 마음! 나도 알겠어! 네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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