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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Jul 11. 2021

파라다이스 칙령과 봄의 귀환

런던 갤러리 투어(5)-로열 아카데미 뮤지엄




영국 왕립 예술원(RA)도 팬데믹으로 최근까지 1년 넘게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지금은 데이비드 호크니 ‘2020년 노르망디, 봄의 귀환’ (David Hockney, The Arrival of Spring, Normandy, 2020) 외에 여러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예상대로 호크니 전시 티켓은 9월 까지 모두 매진이다.

요즘 미술 관람에 열성인 나는 RA 멤버십 가입 후 어렵게 호크니 전시 티켓을 구했다. 그렇다고 전시를 바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기다리는 동안 마이클 아르미타지 ‘파라다이스 칙령’ (Michael Armitage ‘Paradise Edict’)을 보기로 했다. 이름도 낯선 작가였고 전시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다. 다만 전시명이 ‘파라다이스 칙령’이라니 어쩐지 충만하고 풍요롭고 환상적인 작품들을 만나겠구나 생각하며 전시실에 들어섰다.

하지만 작품은 (색은 강렬해도) 어둡고, 긴장되고, 혼란스러웠다. 작품명 ‘안티고네’에 그려진 여인의 얼굴은 아름다웠지만 깊고 어두운 슬픔이 느껴졌다. 그녀가 앉아 있는 곳에 드리워진 커튼에 이런 글자가 쓰여 있었다. ‘All she wants, To get married’. 그림 같은 글자가 처연하게 읽힌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이것이었을까? ‘아프리카의 현실은 어떤 희망도 없는 절망과 자포자기 상태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안티고네>

‘파라다이스 칙령’은 케냐의 정치적 혼란과 불타는 도시, 그리고 불안한 사람들을 보여주었다. ‘풍요와 평화의 상징-아프리카 대평원 케냐’라는 서양인의 고정관념을 비틀며 풍자했다.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작품만큼이나 작업도 그랬다. 케냐 전통의식에 사용하는 ‘루브고 나무껍질(Lubugo Bark)’을 엮고 이어 캔버스 천을 만들어 찢기고 구멍 난 채로 작업을 했다. 작가의 고된 몸과 마음이 느껴졌다.

무겁게 내려앉은 마음으로 호크니 전시관으로 향했다. 호크니 작품은 그의 삶의 궤적과는 별개로 밝은 색감과 호젓한 분위기 때문에 바라보고 있으면 항상 마음이 평온해진다.

이번에도 내심 기대하며 전시관에 들어서는데 ‘사진 촬영 금지’ 표지판이 보인다. 요즘 전시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상황이라 안내원에게 ‘왜죠?’라고 물었다. 대답은 ‘RA는 상관없는데 작가가 그러라 했다’는 것이다. 작품 감상에 집중하라는 의미인지 아니면 ‘나 정도는 그래도 돼’라는 것인지 ‘뭐야’하는 생각에 어깨는 움찔 고개는 갸웃거렸다


사진으로 남길 수 없었던 호크니 전시는 ‘2020년 팬데믹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노르망디의 봄’을 그렸다. 작품은 한결같이 밝고 유쾌한 그리고 생명력 넘치는 꽃나무 시리즈였다. 상상 이상으로 넓게 트인 단일 전시실은 천창으로 들어오는 밝은 채광만으로도 환희의 봄기운이 느껴졌다. 짙은 하늘색 벽에 커다란 호크니의 꽃나무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가로 세로 2*3미터는 돼 보이는 모니터에 작품이 빼곡히 박혀 있었다. 아이패드로 참 쉽게도 그린 그림이 대작이 되어 있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역시 호크니는 삶을 사랑하는 희망의 메신저야!’ 했겠지만 ‘파라다이스 칙령’을 보고 난 후, 이번 호크니 전시는 ‘성공한 영국 백인 남성 예술가’의 오만한 호기로 보였다.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고 작품 판매로 어마어마한 부를 쌓은 호크니는 ‘뭘 해도 되는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1937년생 데이비드 호크니와 1984년생 마이클 아르미타지 모두 로열 아카데미(RA) 출신이다. 두 작가 모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예술 아카데미 출신이니 내가 이번 전시에서 느낀 인종과 국적은 또 다른 편견이고 고정관념 일 수 있다. 37세 청년과 84세 노년이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일 수도 있고, 각자가 개인사적으로 경험한 세상에 대한 감정 표현 일 수도 있다.

관람을 마치고 출구를 향하는 복도 귀퉁이에 로열 아카데미 재학생 졸업 전 안내와 함께 RA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1768년에 세워진 로열 아카데미는 현재 3년 과정 대학원 아트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 재능 있는 미래의 예술가들을 1년에 17명씩 선발해 무료로 가르친다. 아트 스쿨 과정의 목적은 새로운 생각과 건설적인 비평,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세계 최고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그들로부터 전문적인 예술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다.’

너무도 색깔이 다른 ‘파라다이스 칙령’과 ‘봄의 도착’ 전시가 로열 아카데미에서 동시에 열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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