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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May 18. 2019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자녀 양육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세상 편히 초저녁 잠을 자고 있는데 티격태격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세상에 하늘과 땅이 있듯이 어디나 항상 위아래가 있는 거야, 너는 정확히 너의 위치를 알아야 해! 너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면 너에게 또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무조건 그냥 해야 하는 거야!, 내 말 알아듣겠냐고? 나는 너의 형이고 그 사실은 변치 않아. 형은 동생보다 위에 있는 거야!”


이게 무슨 상황인가? 귀 기울여 보니 큰 아이 공부방을 동생들이 정신없이 어지러 놓은 것이다. 형은 둘째 동생에게 방을 좀 치워 달라고 했고, 둘째는 여느 때와 같이  '그걸 왜? 내가?'라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후 벌어진 일이다. 평소 같으면 큰 아이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꾹 참고 스스로 방을 치웠을 것이다. 둘째는 자유로운 영혼 그대로 다시 방을 어지럽히거나 공부하는 형을 방해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기운이 다르다. 큰 아이는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실어 훈계조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열린 문틈으로 불손한 자세이긴 하지만 침대에 팔을 걸치고 엎드린 채 형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둘째가 보였다. 긴 이야기의 끝은 '나는 너의 형이며, 형은 동생보다 위이다. 이건 생물학적으로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집안의 질서를 위해 상하관계를 분명히 해야겠다. 나도 너를 인격적으로 대하겠지만, 너 또한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면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따라야 한다'.


'네가 어지른 것은 네가 치워라' 정도가 훈계의 포인 트였어야 하는 거 아닌가? 도대체 큰아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나와 남편은 결혼 17년 차가 되었는데 아직도 기싸움을 벌인다. 요즘 부부관계에서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남편에게 순종(?)적인 아내는 아니다. 내 의견을 거침없이 말하고 내가 필요하면 남편에게 이런 일, 저런 일을 시킨다. 부탁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경우도 있다. 남편은 무난한 성격이라 평소에는 별말 없이 받아 준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집안에 위아래가 있어야 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며 따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틈만 나면 자기의 자리를 확인하고 우위에 서려고 기회를 노린다. 가끔씩 봐줄 만도 한데 난 절대로 우위를 내주지 않는다.


끊이지 않는 이러한 유치한 분쟁을 보고 자란 큰 아이가 아마도 오늘과 같은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닌가 싶다. 집안에 평화를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서열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 또는 많이 배운자와 덜 배운자, 갖은자와 덜 갖은자의 기준으로 우위를 가르는 것은 집안 분위기나 학교에서 배운 공정함(Fairness)에 어긋난다. 그러나 그렇다고 매번 동생들에게 이런저런 피해를 보는 자신의 처지를 두고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생물학적 나이'로서의 우위인 것이다.  


형에게 한바탕 훈계를 들은 둘째는 대들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설득된 것 같지도 않았다. 분한 마음을 들고 와서는 나에게 푸념 섞인 투정을 한다. 일단 이야기를 들어주었지만 딱히 해줄 말이 없다.. 형 방을 어지르고 치우지 않는 동생도 서열 운운하며 절대복종해야 한다는 형도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 꺼내 쓸 수 있는 뜬금없는 고전의 유혹. 뭔가 있어 보이고 깊이도 있지 않은가? 얼마 전 다시 읽었던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오디오북으로 들려주었다. 형하고 매일 투닥거리지 말고 좀 더 본질적인 문제를 고민해라. '너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느냐? 인간은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랑으로 사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이야기를 끝까지 귀 기울여 듣던 둘째는 “엄마! 너무 감동적인 이야기예요.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야 해요. 나도 평생 사랑을 베풀며 살고 싶어요”. 다행이다. 열 살 아이에게도 톨스토이는 통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래도 형은 나쁜 놈이에요!'  


기독교적 인류애를 실천하려고 했던 톨스토이도 우리 집 갈등 상황에서는 통하지 않는구나.




집에서 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크고 작은 공동체에서 끊이지 않는 갈등을 본다. 오해 또는 의견 대립으로 시작된 갈등은 작게는 험담으로 크게는 누군가를 내치거나 스스로 그 공동체를 떠나게 하기도 한 다. 물론 사안에 따라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내가 너 보다 낫다. 내가 너 보다 우위에 있다'라는 상대적 우월감. 그리고 '내가 볼 때 아무것도 아닌 것을 왜 문제라 하느냐?’라고 하는 인식의 차이가 갈등의 시작이다. 인류애적 사랑을 운운하기 이전에 상대방이 나보다 못할 것도 없다. 상대방이 문제라고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주고 공감하고 해결해 주려고 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 싶다.


나쁜 놈이 되고 싶지 않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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