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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Sep 25. 2019

아빠와 런던포그

가족 관계



막내를 유치원에 내려놓고 동네 산책을 한다. 엄마가 생각났다. 햇살이 너무 좋아서 길가의 꽃들이 너무 예뻐서 ......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엄마는 여느 때처럼 잘 지내신다고했다. 연락이 뜸 했던 나를 아빠가 궁금해하신다며 이야기해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둘째 딸이 아빠 런던 오시라는 소리가 없다고 서운해’ 하신다고 귀띔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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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이 넘은 아빠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보청기가 있지만 보통은 잘 사용하지 않으신다. 아빠와 통화를 하려면 목청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나는 주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 엄마가 큰 소리로 아빠에게 전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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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은 무슨 마음이신지 보청기를 하고 내 조용한 목소리에도 바로 반응을 하신다. 엄마가 하신 말씀도 있고 해서  요즘 런던 날씨가 참 좋으니 한번 오시라고 했다. 아빠는 다짜고짜 올 겨울에 템즈강의 안개를 보러 오실거고 꼭 런던포그를 사진에 담아야 겠다고 하셨다..... 나는 속으로 왜 하필이면 날씨 궂은 겨울이며, 볼 것이 많은 런던에 안개는 뭐하러 보시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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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득 ‘London Fog’가 생각났다..

1990년대 초반이었다. 캘리포니아 이모집에 가서 몇 달을 머물렀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 아껴 두었던 용돈으로 (아웃렛에서 세일 중이던) 아빠에게 가죽점퍼를 사다 드렸다. 그때 그 점퍼 상표가 ‘London Fog’였다..

캘리포니아에서 왜 런던포그 였는지 모르겠지만 베레모를 즐겨 쓰시던 멋쟁이 아빠에게 왠지 어울릴 것 같았다. 점퍼는 너무 무거워서 아빠가 잘 입지 않으셨다. 그래도 물 건너온 거라며 우리 자매들이 가끔 돌려 입었다. 그 점퍼 때문인지 우리 가족은 런던 하면 안개를 먼저 떠올린 것 같다. 런던의 안개를 꼭 사진에 담고 싶다는 아빠도 그런 이유에서 일까?..

                    .              .              .               .

몇 년 전 아빠를 만났을 때 이런 얘기를 하셨다. ‘ 나는 늙어서 사진작가가 될 거야. 그리고 죽기 전에 꼭 전시회도 열어야지!’ 그때부터 카메라 장비를 사고 사진 수업도 듣기 시작하셨다. 인터넷 사진 동호회 사이트에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하셨다.

우리는 생각했다. 아빠는 이미 늙었고 그러면 언제 사진작가가 되신다는 건가. 그리고 아빠의 사진은 우리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보다 나을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얼마전 캘리포니아에서 엄마 아빠를 모시고 사는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가 걱정 때문에 속상하다고...  사막 출사를 가신다고 깜깜한 새벽에 혼자 차를 몰고 나가시고 동호회분들과 사진 찍으러 나가셔서 밤늦게까지 연락도 없으시다고.

                    .                .               .               .

다시 생각해 보니 아빠는 젊은 시절 사진 찍는걸 아주 많이 좋아하셨다. 엄마는 선생님 월급에 여덟 식구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그런 취미는 호사라며 아빠를 타박하셨다.

아빠는 필름도 마음껏 살 수 없었지만 인화할 때는 더욱 엄마 눈치를 봤다. 그래도 현상소에서 사진과 필름 한 뭉치를 들고 오시는 날에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지금은 추억이 된 우리의 모습이며 풍경들을 돌려 보았다. 우리는 웃기도 하고 먼저 보겠다고 다투기도 했다...

사진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나는 현상된 필름이 더 좋았다. 필름 하나를 짚어 들고 등을 대고 눕는다. 두 손을 뻗어 형광등에 필름을 비추어 본다. 필름에 비친 우리의 머리는 하얗고 얼굴은 까맣다. 눈은 외계인처럼 번뜩거린다. 현실 세계의 색깔은 필름 속 블랙홀로 모두 빨려 들어간 것 같다. 분명 평범한 어느 장소에 서 있었는데 필름 속 나는 외계 어딘가에서  눈을 부릅뜨고 또 다른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그 모습이 무섭기도 하고 희한하기도 해서 얼굴을 찡그리며 피식 웃는다..

해가 갈수록 사진 뭉치와 필름이 집안에 쌓여 갔다. 저녁밥을 먹다가도 아빠가 카메라를 들이 대면 우리는 어색한 표정으로 미소를 만들었다. 그때마다 아빠는 한쪽 눈은 찡그리고 나머지 한쪽은 카메라에 대고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를 외치셨다..
그 시절 사진 속 엄마는 머릿수건과 앞치마를 두르고 싱크대에서 뒤를 돌아보고 있는 모습이 많다. 집안일을 하시다가 아빠의 앵글에 담긴 것이다.

주말에는 아빠 혼자 묵직한 카메라 가방을 들고나가셨다. 가끔은 엄마와 우리 딸 셋을  유원지나 산, 계곡, 바다로 데리고 가서 사진을 찍어 주셨다.

흑백 사진 속 벚꽃 아래 수줍게 서 있던, 빙판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환하게 웃고 있던, 기타를 메고 연주하던 우리 엄마, 너무나 찬란하게 젊은 우리 엄마의 모습..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먹고 있던 아기 때 우리 언니, 양갈래 머리를 땋고 엄마와 뽀뽀하고 있는 돌쟁이 우리 언니 모습.

처음 걸음마를 떼던 머리 위로 꽁지를 묶은 포동포동 내 모습..

앞니가 몽땅 썩은 채로 활짝 웃고 있는 내 여동생..

엄마가 재봉틀로 손수 만들어 주신 국방색 멜빵바지를 나란히 입은 우리 세 자매의 모습.

마흔이 넘어 얻으신 늦둥이 막내아들의 성대한 돌잔치 , 삼대독자 손주를 얻고 좋아하시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환한 얼굴.

아빠가 셔터를 눌러 기록했던 그 시간, 그 모습은 이제 우리에게 없다.  

팔순을 넘긴 아빠가 느지막이 취미 생활이 너무 과하다고 타박하는 오십을 바라보는 세 딸들과 마흔이 된 늦둥이 아들이 남았을 뿐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찬란한 날씨에 마음이 어둡다.

노부모를 모시고 사 남매를 키우셨던 아빠. 무뎌진 손끝과 어두워진 눈으로 다시 사진을 찍는 아빠를 진심으로 응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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