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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Jan 10. 2023

높이 날아오르는 것보다 중요한 것

우연이 깨닫게 해 주는 것 들 (1)



10대에는 20대가 삶의 정점이라 생각했다. 20대에는 30대가, 30대에는 40대가 그러리라 생각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정점은 삶의 최고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쇠락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최고의 순간 이후의 삶을 떠올리지 않았다. 


50대의 시작을 며칠 앞두고 카리브 제도의 낯선 나라 바베이도스를 향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곳에서 묵어야 할 숙소와 계절에 맞는 옷가지만을 챙겼을 뿐 아무것도 계획하거나 준비하지 않았다. 미지의 세상이 주는 설렘과 약간의 긴장감을 그대로 마주하고 싶었다. 


조금 알아서 비롯되는 편견이 아무것도 알지 못해 생기는 편견보다 더 크다. 그래서 나는 낯섦을 마주할 때 가능한 온 마음을 열어두고 얕은 지식으로 그것을 판단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렇게 낯선 곳에서 아무 편견 없이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 일부가 되어 보는 것. 그것은 나를 겸손의 자리로 향하게 한다.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넓은 세상과 무수히 많은 다양한 삶의 방식 앞에서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비행기는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 그리고 새로운 한 해를 향한 기대를 싣고 시간과 공간을 뚫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땅 아래 세상은 작은 선이 되었다가 점이 되어 사라졌다. 비상을 위한 소음과 흔들림 후에 비행기는 안정 괘도에 도달했다. 안전한 비행을 위해 올라야 할 가장 높은 곳으로. 


거대하고 육중한 쇳덩어리가 중력의 힘을 거슬러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언제나 경이로운 일이다. 창 밖에는 흰구름뿐이다. 일상에서 짊어졌던 크고 작은 짐들은 미미한 것이 되어 한 없이 가볍게 느껴졌다. 


분주한 승무원들의 돌봄이 끝날 즈음 비행기 안의 조명은 어두워졌다. 고요와 평온이 찾아왔다. 그렇게 몇 시간을 날던 비행기가 조금 흔들리기 시작했다. 곧 멈출 것 같은 흔들림이 점점 심해진다. 텅 빈 하늘을 날고 있는데도 마치 좁은 터널을 지나며 사방 어딘가에 부딪혀 여기저기 부서져 나가는 것 같다. 


온몸이 쭈뼛해지고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좌석 손잡이를 꼭 움켜쥐고 비행기의 흔들림을 멈춰 보려 했지만 이젠 내 몸까지 떨린다. 높은 곳에 올라 목적지를 향해 날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추락의 공포를 느낀다. 숨을 깊게 들고 내쉬며 기도를 한다. 흔들림의 터널을 무사히 지나게 해달라고 두렵지 않게 해 달라고….


몸이 점점 차가워지고 심장이 터질 것 같다. 과호흡이 올 것 같아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들리지 않게 노래를 불렀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우편에 그늘 되시니, 낮에 해와 밤에 달도 너를 해치 못하리 ‘ 시편 121편이다. 어떤 두려움이 느껴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나오는 노래이다. 그때마다 나는 ’ 너‘를 ’나‘로 바꿔 부른다. 몇 번 반복해 부르는 동안 거짓말처럼 공포의 시간이 지나고 평온이 찾아왔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런 공포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 비행 때마다 가끔 겪는 일이다. 오십이라는 나이를 앞두고 있어서인가. 추락의 공포가 지나고 날아오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세상 저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그것은 그곳에서 잘 내려오는 것이다. 어떻게 내려오는가에 따라 인생은 쇠락이 될 수도  안락이 될 수도 있다. 인생의 반을 지난 것이 조금은 서글프고 아쉽기도 했었다. 이제 주어진 삶이 쇠락이 아니라 안락을 향해 가는 여행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어쩌면 나는 나이 육십에 카리브해 한 섬나라에서 깊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시가를 물고 럼주를 마시며 오십에는 알지 못했을 어떤 것들을 글로 적고 있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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