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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런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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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Nov 13. 2019

영국인의 음악 사랑

영국 사회


런던 곳곳에는 다양한 지역별 아마추어 합창단이 있다. 대부분 동네 주민들이 참여하지만 합창단을 이끄는 지휘자나 단장은 전문 음악인들이다. 그들은 명성 있는 클래식 음악계 음악감독 또는 지휘자이지만 지역 아마추어 합창단에서 지속적인 봉사를 하고 있다. 누구나 무료로 가입할 수 있는 합창단도 있으나 경우에 따라 오디션을 통과해야 하고 연회비도 지불한다. 매주 교회나 성당 또는 학교의 뮤직홀에 모여 리허설을 하고 시즌별 정기공연을 한다. 음악 비전공자들이 대부분이지만 레퍼토리는 중세 종교 음악에서부터 ,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 낭만,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별 음악을 포함한다.


합창(Choir)은 중세 유럽의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소년들과 남자 평신도들이 함께 예배 중에 성가를 부르며 시작되었다. 중세 시대에는 여성이 합창단원이 되는 것을 부정하게 여겨 남자를 거세시켜 여성의 음역을 내게 하는 일명 카스트라토가 성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통은 18세기까지 계속되었고 그 이후, 여성 합창단이 창설되기는 했으나 혼성 합창은 그보다 늦은 19세기 중반 무렵에 이루어졌다.


이러한 종교의식을 위한 전문 합창단의 토대 위에 아마추어 합창단이 생겨났다. 영국의 경우 1817년 창단된 Yorkshire’s Halifax Choral Society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마추어 합창단이다. 현재 런던에만 천여 개의 아마추어 합창단이 있고 이렇게 시작된 합창단의 역사는 이제 몇몇 이슬람 국가를 제외하고 전 세계로 퍼져있다. 2년마다 열리는 세계 합창 올림픽(World Choir Games)도 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Dulwich Choral Society는  1944년 창설된 아마추어 혼성 합창단이며 지금까지 75년째 정기 공연을 하고 있다. 런던에서의 일상은 오래된 것들과의 만남이고 그것들에 대한 기록인데 동네 합창단에서도 오랜 역사를 느낄 수 있다.


우리 합창단의 음악감독이자 지휘자인 Aidan Oliver는 이튼 컬리지와 옥스퍼드 킹스 컬리지 출신 음악 전공자이며 2006년부터 웨스트민스터 수도원 음악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Rotal Opera House) , 필하모닉 보이스(Philharmonic Voice), 에든버러 뮤직 페스티벌( Edinburgh Festival Chorus) 음악 감독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전문 음악가이다.                               


반면 매주 모이는 백여 명의 회원은 대부분 음악 비전공자이며 은퇴자들이다. 내 옆에 앉은 할머니 회원은 30년째 합창단 활동을 하고 있다. 인사를 건네며 내게 한 첫마디가 '우리에겐 너와 같은 젊은 목소리가 필요했어!'였다. 참고로 나는 40대 후반이다. 가입 후 처음으로 합창단 연례회에 참석했는데 지난해 활동을 돌아보고 향후 1년간의 계획과 회계감사 결과를 공유했다. 그리고 회원 소식을 나눈다. 몇몇 고령 회원이 지난 시즌을 끝으로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다며 부고 소식을 전한다.


리허설은 매주 월요일 일곱 시 삼십 분부터 아홉 시 삼십 분까지 두 시간이다. 정확히 정해진 시간에 시작해서 십 분간의 티타임을 제외하면 노래 연습만 한다. 단 한 명의 단원도 지각을 하지 않는다. 간혹 빈자리가 보이기는 하지만 출석률은 90%가 넘는다.


이번 시즌 프로그램은 바흐(J.S Bach)의 오라토리오 'Ascension'과 'Magnificant'이다. 삼백 년도 더 된 바로크 시대 곡이다. 악보는 라틴어와 고대 독일어로 되어 있다. 두 곡의 악보 분량은 백 페이지가 넘고 러닝타임은 한 시간이다. 비교적 젊은 피에 속하는 나에게도 쉽지 않은 시간이다. 대부분의 단원은  짧게는 이십 년, 길게는 사십 년째 활동하고 있다.  어느 단원은 자신의 부모님도 이곳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평생을 함께하고 세대를 거듭한다. 그들의 한결같음이 놀라울 뿐이다.


이 곳 사람들은 과거를 지키기 위해 현재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때로는 삶이 너무 정체되고 지루하게 느껴져 답답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깊이에 놀라고 소박한 일상에서 감사함을 느낀다. 오늘은 그들과 오래된 교회에서 노래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  


THANKS FOR THE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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