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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런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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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Nov 16. 2019

KEEP CALM AND CARRY ON

영국 사회


합창단 리허설 중에 일어난 일이다. 여느 때처럼 정시에 연습이 시작되었고 100여 명이 넘는 단원들이 지휘자 지시에 따라 노래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피아노 치던 반주자가 갑자기 일어나 지휘자 앞을 가로질러 출입구 쪽으로 성급히 달려 나간다. 왠지 걸음걸이가 불안했다. 얼마 가지 못해 심하게 머리를 바닥에 부딪히고 쓰러졌다.


순간 짧은 정적이 흘렀다.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갔다. 그뿐이다. 아무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선은 다시 지휘자에게 돌아갔다. 지휘자는 당황했는지 잠시 목소리가 떨렸지만 빠르고 단호하게 물었다 'Anyone Doctor Here?'


몇 사람이 군대처럼 손을 번쩍 들었다. 지휘자의 지시를 기다렸다가 반주자에게 달렸갔다. 지휘자는 다급히 피아노로 다가가 그녀를 대신해 반주를 시작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Where we were?' 하더니 연습을 재개했다.


내 머릿속은 그녀에게 정지되어 있었다. '그녀에게 달려가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상황에 노래를?' '멤버 대표라도 나서서 연습 중단을 요청해야지!' 그런데 다들 연습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나는 기계적으로 노래를 불렀지만 마음은 그녀에게 있었다. 달려간 멤버 하나가 그녀를 등에 업고 출입문으로 사라졌다. 다른 한명은 구급차를 부르는 것 같았다.  쫓아가 무슨 일이냐고 괜찮은 거냐고 묻고 싶었다. 지휘자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아니 평소보다 더 몰아치듯이 노래 부르게 했다.  


평소처럼 휴식시간이 되었다. 멤버 대표가 상황을 전한다. '모든 것이 괜찮다, 구급차가 그녀를 데려갔고. 나쁜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다음 주 리허설에 그녀가 돌아오길 바란다.'하고는 사라졌다.


사람들은 여느 때처럼 티를 마셨다. 난 여전히 몸과 마음이 정지되어 있었다. 아무리 받아들이려고 해도 납득되지 않았다. 아무도 그 일로 웅성 대지 않는다. 지휘자도 차를 마시며 연습실에 머물렀다.


난 용기를 내어 옆자리 할머니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거죠? 나만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거 같아요. 우리가 계속 연습만 했어야 하는 건가요?"


할머니는 되물었다. '우리가 그녀를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았니?"


"그렇지 않아. 우리 모두는 그녀를 걱정하고 있어. 하지만 그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거였어. 우리는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야. 다행히 의사들이 여럿 있었고 그들이 신속히 그녀를 도울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지켰던거야. 모두가 그녀에게 몰려갔다면 더 위험한 상황이 되었을 거야.'


도대체 이 침착함은 무엇인가......할머니는 마지막으로 이 말을 덧붙였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아.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서지......'


연습이 끝나고 다음 리허설이 있을 때까지 그 날의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왜 공개적으로 그녀를 염려하고 걱정하지 않는가?


몇 주가 지났지만 그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한동안 붉은색 바탕에 큼지막한 활자의 포스터 'KEEP CLAM AND CARRY ON'이  유행이었다. 'KEEP CALM AND DRINK WINE', 'KEEP CALM AND MARRY ME', 'KEEP CALM AND GO SHOPPING'등 다양한 패러디도 인기였다.


 'KEEP CALM AND CARRY ON'의 유래는 2차 세계대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군이 유럽 대부분을 점령했고 영국 본토에도 공격이 시작되었다.  폭격으로 인해 삶의 터전이 무너지고 가족이 죽고 도시는 마비되어 갔다. 영국 정부는 대국민 선전 포스터를 만들어 배포했다.


 ‘YOUR COURAGE, YOUR CHEERFULNESS, YOUR RESOLUTION WILL BRING US VICTORY’

- 당신의 용기, 열정, 결의는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올 것입니다.


 ‘FREEDOM IS PERIL, DEPEND IT WITH YOUR  MIGHT’- 우리의 자유가 위험에 처했습니다. 이제 당신의 능력에 달렸습니다.


독일은 몇 차례  더 영국 본토 점령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했다. 1939년 9월 독일군은 전쟁의 승리를 장담하며 런던 대공습(The Blitz)을 공표했다. 언제 무차별 폭격이 시작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루하루가 불안과 공포였다.


영국 정부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또 다른 포스터를 제작해 두었다. 이것이 바로 'KEEP CLAM AND CARRY ON'이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것이다. 정부 주도 신문이나 방송은 전쟁 중에도 일상의 평온함을 잃지 않는 시민들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조명했다. 그리고 이것을 'The Blitz Spirit'이라고 선전했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런던 시내를 지나 출근하는 사람들>


건물이 무너져 내린 폐허 속에서 활기차게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 무너진 집더미에서 식물 화분을 들고 나오며 환하게 웃는 여인 , 폭격을 피해 방공호 대피 중 여유롭게 티타임을 즐기는 사람들. 비현실적인 선전(Propaganda)이지만 국가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포, 슬픔, 좌절감 등 개인감정은 허락되지 않고 묵묵히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는 암묵적인 강요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영국 국민을 대표하는 정서가 되었다.


<무너진 집에서 물건들을 들고 나오며 환하게 웃는 여인>


영국 사람들은 대부분 참을성이 있고 침착하다. 붐비는 런던 시내에서 아무리 교통이 정체되어도 자동차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비가 와도 우산 하나 쓰지 않고 온몸으로 비를 다 맞으며 묵묵히 걷는다. 걸어 오르기도 힘든 언덕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전거로 이동한다. 당황스러운 일이나 위급한 상황에서도 목소리 높이지 않고 'Everything OK', 'No Problem' 하면서 차분함을 유지한다.


처음에는 이들의 태도가 단순히 교양 있고 수준 높은 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했다. 부럽기도 했고 그렇지 못한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나 'KEEP CALM AND CARRY ON'을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이해하나 일면 측은한 마음이 든다.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고 250만 부나 인쇄해 두었던 이 포스터는 배포되지 않았다. 독일은 패했고 영국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세월은 흘렀고 1991년 영국 북부의 어느 중고 서점에서 'KEEP CALM AND CARRY ON' 포스터가 세상에 알려졌다. 전쟁 당시 기차역으로 사용되었던 이 곳 티룸에서 책방 주인은 상자 하나를 발견한다. 그 안에 이 포스터가 담겨 있었고 그는 액자를 만들어 서점 안에 걸어 두었다.  


손님들이 오가며 포스터를 디지털카메라에 담아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세계 곳곳에 'KEEP CALM AND CARRY ON'이 전해진 것이다.  이제 과거의 역사와는 무관하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던 메시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쓰이고 패러디되고 있다.


참고로 이 포스터는 왕실 소유이지만 저작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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