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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Dec 07. 2019

영국에 외로움 담당 장관이 있다고?

영국 사회



영국에는 외로움(부) 장관(Minister of Loneliness)이 있다. 2018년 1월 테레사 메이(Teresa May) 재임 시절 만들어진 정부 직책이다. 외로움을 '사회문제(Social Epidemic)'로 인식하고 국가 차원에서 외로운 사람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겠다는 것이다.


보통 타인에게 먼저 말 거는 법 없고, 도움은 기꺼이 주되, 부탁은 잘하지 못하는 영국인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외로움을 더 느낄 수도 있다.


그러한 이유인지 영국은 외로움을 '사회문제(Social Epidemic)'로 인식하고 국가 차원에서 외로운 사람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Daily Mail에 실린 외로움(부) 장관 임명 소식>



개인의 외로움을 보살피고 해결해주는 나라와 장관이라니.....

외로움은 한 개인의 문제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일시적' 외로움은 누구나 겪고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영국에 살고 있지 않았다면 영국의 '외로움(부) 장관'은 단순히 신기한 해외토픽이었을 것이다.




처음 런던에 와서 한동안은 '항상' 외로웠다.  낯선 곳, 낯선 사람 속에서 느끼는 당연한 이방인의 외로움이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어도 만날 사람이 없고, 어려운 문제가 생겨도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었다. 이것은 혼자 극복할 수 있는 단순하고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다.  사회적 연결 고리가 없어서 일어난 원치 않는 '외로움(고립)'인 것이다.  그러나 곧 시스템으로 이민자의 외로움은 해소되었다. 정부 기관 홈페이지를 가보니 내가 필요한 정보들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들이 친절히 안내되어 있었다. 자발적으로 찾지 않아도 공동체라는 사회 안전망 속에서 외로움이 사라진 적도 있다.


< 외로움 극복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기부 캠페인 광고>


돌이켜보니 내 나라 한국에서도 '항상' 외롭다고 느꼈던 때가 있다.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출산과 육아만 하던 시절의 외로움, 워킹맘이 되어 새롭고 낯선 회사에 적응하며 느꼈던 외로움. 다른 사람의 외로움도 보았다. 정년퇴직 후 어깨에 드리워진 아버지의 외로움, 암투병을 혼자 이겨내던 친구의 외로움,  치매 노인(어머니)을 혼자 모시던 친구의 외로움.  배우자나 부모, 자식의 죽음을 겪고 찾아오는 외로움......


나의 외로움도 그들의 외로움도 한 개인이 지속적으로 도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은 '나' 개인의 문제이니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회나 국가가 어찌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영국은 지극히 개인적이라 여겨졌던 이러한 외로움을 정부 차원에서 돕겠다는 것이다.


<외로움 퇴치를 위한 영국 정부 전략 보고서>



이 발표 후, 미국의 한 TV 토크쇼 진행자는 영국의 외로움(부) 장관을 코미디 소재로 사용했다. "하루 종일 중요한 정책을 논하고 브렉시트를 다뤄야 하는 국가 지도자들이 이렇게 외로워서 어쩌나", "인간이 느끼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측정하고 어떻게 해결하겠냐", “개인의 감정을 정책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너무나 영국적인 관료주의"라고 비웃었다.


국가는 해결해야 할 더 중요한 문제가 있고 인간의 외로움이 정책으로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육체적, 경제적, 정신적 이유로 원치 않는 ‘사회적 고립’ 때문에 겪는 외로움은 다른 이야기다.  그들의 외로움은 도움의 손길을 만나지 못해 우울증이 되고 치유의 손길을 만나지 못해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그리고 다양한 이유와 상황 속에서 나이와 성별, 인종, 사회 계층에 관계없이 누구나 외로움에 직면할 수 있다.

영국에는 이십만 명의 노인이 몇 주 동안이나 이웃, 가족과  접촉 없이 고립된 삶을 산다. 구백만 명의 영국인이 지속적인 외로움을 경험한다. 의사 네 명 중 세 명은 매일같이 외로움에 호소하는 환자를 접한다. 영국 정부는 개인이 겪는 이 보편화된 외로움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영국은 여전히 브렉시트(Brexit)로 정치, 경제, 사회적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를 매일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국가가 개인의 외로움에 공감하고 그 외로움으로부터 개인의 건강과 행복을 지켜주겠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자원봉사자, 학교, 지역 공동체, 기업이 자발적으로 국가 정책에 함께하고 있다.


아직 희망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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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정부는 '외로움(부) 장관(Minister of Loneliness)' 임명 후 문화체육부, 정보통신부, 교통부 등 유관 기관과 협력해서 '외로움 퇴치' 국가 전략을 발표했다. 현재는 자원봉사자, 지역 공동체, 병원, 학교, 비영리 단체, 공연 예술 단체, 기업과 함께 캠페인 및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2019년 12월 말에 관련 보고서가 발표될 예정이다.


** Royal Mail에서는 우체부들이 우편물을 배달할 때, 외로움을 느끼는 이웃이 없는지 살피고 안부도 묻고 이야기도 하는 것이 또 다른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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