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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Mar 11. 2020

넌 다 계획이 있었구나

영국 코로나



영국엔 데이터와 전문가가 있다 그리고 계획도!



지난주 영국 코로나 바이러스 첫 포스팅(3월 4일 수요일) 후 일주일이 지났다.  3월 10일 현재 영국의 확진자는 일주일 전, 85명에서 288명이 늘어 373명이 되었다. 사망자도 총 6명으로 늘어났다. 그 사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대하는 나의 자세를 정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영국 정부가 발표한 28페이지짜리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 방침(Coronavirus Action Plan)'을 꼼꼼히 읽어 보았다.  그리고 Chris Wihitty (잉글랜드 최고 의료 담당관)가 국회의원들(MPs: Member's of Parliment)과 진행한 1시간 40분짜리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질의응답 유튜브 영상도 보았다. 결과는 막연한 불안과 조바심을 떨쳐 버리고 평정심을 선택했다.  




1. 액션 플랜 ( Action Plan )

평정심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영국 정부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대비할 전문가와 단계별 대응 계획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나라에 없는 특별한 비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조기 종식하겠다'와 같은 희망적인 메시지도 없다. 다만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단계별 대응책을 발표한 것뿐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와 영국의 상황을 감안, 다음과 같이 대응책을 단계별로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림 1 참조)


 [억제(Containment)-> 지연(Delay)-> 완화(Mitigate) : 확진자 자가 격리/의료진과 의약품 확보-> 학교 휴교/재택근무/대규모 집회 제한->(중증환자 치료를 위한) 은퇴 의료진 확보/위기 대응을 위한 응급서비스 제한 등]


< 그림 1: 영국의 코로나바이러스 단계별 대응 Action Plan >


그들에게는 세계 1차 대전 직후 확산되었던 스페인 플루(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 사망, 영국에서만 20만 명 사망) 이후부터 팬데믹 이에 대한 데이터와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니 적어도 100년 동안 쌓인 데이터로 이번 팬데믹에 대한 기본적인 대책이 어느 정도 계획되어 있았다. 하긴 여행 계획도 공연 관람 계획도 1년 단위로 미리 짜 놓고 아이들 친구 집 초대나 생일 파티도 한 달 전에 알리는 영국답다.  융통성 없어 보이지만 계획이 있다는 것이,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 나에게 평정심을 갖게 했다.








2. 영국의 현재 상황

사실 모든 사람이 전적으로 현재 정부 발표를 신뢰하거나 현재 대응책에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영국도 지난 일주일간 상황이 많아 달라졌다. 예정되었던 부활절 방학 수학여행(북 이탈리아 스키 캠프)은 결국 취소되었다. 하루빨리 휴교 하자는 국민청원이 올라왔고 일주일 동안 28만 명이 서명했다. 내가 속한 지역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휴교 국민청원에 동참하자는 글이 포스팅되어 찬반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증상이 있어서 의료 당국에 연락했지만 묵묵부답이라는 포스팅이 올라오기도 했다. 슈퍼에서는 사재기(Panic-Buying)로 생필품 품귀현상도 일어났다. 테스코(TESCO)와 같은 몇몇 유통업체는 품목에 따라 1인당 구매 수량을 제한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동네 차모임( Tea Time)은 계속되며 합창단 연습도 지속된다. 친구들은 상황이 나빠지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만나자고 약속을 잡는다. 여전히 아침마다 사람들이 반려견과 함께 공원을 산책한다. 곧 다가올 부활절 휴가 계획을 짜기도 한다.






이러한 상반된 상황 변화를 의식한 것인지 지난 월요일 두 번째 대국민 발표가 있었다. 이번 주 발표에서는 현상황을 '억제(Containment) 단계'에서 '지연(Delay) 단계'로 격상했다. 확산을 더 이상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아직 지연 단계의 대응책인 학교 휴교나 대규모 집회 금지 등의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기자들은 지난 일주일간 일어난 시민들의 반응과 불만에 대해 질문했다. '왜 당장 휴교를 하지 않는지?', '대규모 행사나 종교 집회는 왜 막지 않는지? '생필품은 원활하게 공급될 것인지?', '의료진이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지?'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은 간결하고 명확하게 답한다. 그리고 양 옆 CHO (최고 의료 책임자 :Cheif Health Officer) Chiris Whitty CSO (최고 과학 책임자 :Cheif Science Officer) Sir Patrick Vallance가 의학적 근거와 데이터 (아마도 양 적인 면에서는 중국의 도움을 받았겠지만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데이터가 아니었을까 싶다)를 활용 과학에 근거한 모델링 결과로 부연 설명을 한다.


휴교나 대교모 집회 금지에 대한 질문에는 '단계별 대응책은 적시에 행해져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시기적으로 너무 빠르거나 늦게 취해졌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인 충격을 감안해야 한다. 대응책은 여론에 의한 것이 아닌 과학적 근거에 따라야 한다.' 패니 바잉에 대해서는 '불안감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해소될 것이다.' 의료체계에 대해서는 '확산이 정점(Peak)에 이르면 의료시설과 의료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단계별 유용 가능한 대응책을 적시에 사용해 피크(Peak) 곡선을 완만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사실  영국 정부 발표는 한 번도 장밋빛인 적이 없었다.

(그림 2 참조)



< 그림 2 : 영국의 단계별 대응책으로 팬데믹 지연 목표 >





3. 세계적인 전염병 전문가

지난주 대국민 발표에서 보리스 존슨 왼쪽에 배석했던 CHO Chris Whitty는 세계적인 전염병 전문가이다. 그는 런던 남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대부분을 나이지리아에서 보냈다. 옥스퍼드 의대  출신으로 의사이며 교수이자 감염병 전문가이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을 돌며 30년간 에이즈, 에볼라, 말라리아 등의 전염병을 연구하고 치료했다.

< 잉글랜드 최고 의료 책임자 Chris Whitty(좌측) >

빌 게이츠 재단이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연구 기금으로 크리스 교수에게  3100만 파운드(480억) 기금을 제공하기도 했다. 전염병 관련 논문 200편의 저자이기도 하다. 틈틈이 경제 공부도 하며 MBA 학위도 받았다.


그는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로 ‘최악의 경우 영국 국민의 80%가 감염될 수 있고 그중 1%가 사망할 수 있다’고 했다. 영국 인구가 현재 6천8백 명 정도이니 5천4백만 명의 확진자와 54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물론 이보다는 낮은 수치 일 것이라고 말했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


‘확산이 정점에 다르면 NHS(영국 의료 시스템)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라고도 했다. ‘정점에 이르기까지 최소 2개월, 진정국면에 들어가기까지 2개월이 걸릴 것이고 백신이나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는 한 온도 상승으로 자연 소강상태에 이르는 여름이 되어야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적어도 5개월 동안은 바이러스와 싸움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장기전이다.


그는 대국민 발표 내내 침착한 어조와 겸손한 표현으로 현상황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영국 언론과 소셜미디어에서 그는 스타가 되었다. ‘이상하게 생긴 사람이 나와서 우리를 이상한 방법으로 안심시킨다’ ‘브렉시트 협상을 크리스에게 맡겼어야 했다’ ‘전문성을 겸비한 이 시대의 참지식이다’ ‘영국을 구할 난세에 영웅이다’ ‘죽을 때까지 그를 신뢰하겠다’





4. 불안 vs 평정심

힘겨운 상황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감염병 전문가 Chris Whitty 빅 픽처를 보게 되니 오히려 마음의 불안이 사라진다.  아쉬운 점도 있다. 영국은 한국처럼 신속하고 잘 갖추어진 방역, 의료 시스템이 비교적 부족하다. 그래도 영국 정부가 Chris와 같은 전문가와 함께 장기전에 대비해 지속적이고 적절한 대응을 할 것이라 믿는다.


길고도 긴 어둠의 터널이다.  하지만 길고 긴 싸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오히려 두려움이 사라진다. 건강한 사람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미미한 증상으로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 감염보다 불안과 공포에 감염되게 되면 사회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의 일상을 불안과 공포에 던져 넣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평정심을 찾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하여 지난 주말에는 솔즈베리(Salisbury) 대지에 우뚝 서 있는 스톤헨지(Stonehenge)에 다녀왔다. BC 3000년 경에 세워졌다고 하니 무려 5000년 이상을 숱한 풍파를 이겨내고 한자리에 변함없이 서 있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도  이 사태가 지나가면 바이러스와 공포를 이겨내고 더 성숙된 모습으로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으로 변함없이 서 있기를 바란다.

< 솔즈베리 대지에 우뚝 선 스톤헨지 >

<UK GOVERNMENT Coronavirus Action Plan>
https://assets.publishing.service.gov.uk/government/uploads/system/uploads/attachment_data/file/869827/Coronavirus_action_plan_-_a_guide_to_what_you_can_expect_across_the_UK.pdf

<Chris Whitty Q&A with MPs>
https://youtu.be/IfJcwDaZr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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