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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런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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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Mar 27. 2020

이웃집 할머니와 자가격리 이야기

영국 코로나


담장 넘어 옆 집 안뜰을 들여다본다. 소피아 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이다. 몇 해 전 남편을 떠나보내고 덩그러니 큰 집에 혼자 살고 계신다. 할머니는 눈도 귀도 좀 어둡다. 딸이 하나 있지만 파리(Paris)에 살고 있다.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할까, 딸이 사는 파리로 갈까 고민했지만 남편과 평생 함께 했던 집을 떠날 수 없었다고 했다. 가끔 창문 밖으로 우리 집 앞을 지나는 할머니를 본다. 항상 고운 모습에 귀걸이며 목걸이가 은발과 잘 어울린다. 그래도 할머니의 굽은 어깨와 무거운 발걸음은 안쓰러워 보인다.심한 비바람이 불 때면 할머니 생각이 난다. 별 일 없는지, 필요한 건 없는지. 할머니는 휴대폰도 없다. 집 전화가 있지만 전화벨을 잘 듣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집 앞을 지나실 때 안부를 묻게 된다.


며칠 전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70세 이상 모든 어른들은 3개월 간 자가격리 권고가 있었다. 왓츠 업으로 연결된 동네 주민들은 이웃 노인들을 돕기로 했다. 동네 대표가 방문해서 모두의 안부를 물었다. 소피아 할머니가 궁금했다. 집에 안 계셨는지 확인을 못했다고 했다. 다음 날 창문을 열고 청소를 하는데 할머니가 지나가신다. 나가서 얼굴에 볼을 맞대는 비쥬를 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다. 대신 창문 너머로 인사를 했다. 집에 계셔야 한다고 했는데 어디를 다녀오는지 묻고 싶었지만 안부만 물었다.


“소피아 할머니! 별일 없으시죠?"


“그럼, 다 괜찮아. 너는 어때? 애들은?"


“저희도 잘 있어요. 할머니 필요한 거 없으세요?”


“다 있어. 아무것도 필요 없어!"


“할머니, 저희 집에 파스타랑 휴지 있어요. 필요하면 말씀하셔요!"


“응, 그래. 알았어"


“꼭이요! 어디 가지 마시고요.”


“그래, 알았어. 걱정 마”


한참 후 우리 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소피아 할머니다. 손에 파스타 한 봉지가 들려있다. 난 영문을 몰라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응, 파스타 없다고 했지?”

“아이고 할머니, 저희 집에 파스타 있으니까 필요하시면 드린다고요"


할머니는 무안한 지 수줍게 웃는다. 들어오시라고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대신 얼른 초콜릿 상자를 가져왔다.


"할머니, 차 한 잔 대접하고 싶은데... 아시죠? 지금은... 이거 오늘 애프터눈 티 할 때 드셔요"


할머니는 상자를 받으셨다. 그리고 한참을 서 계셨다. 나도 아무 말 없이 바라봤다. 이 상황이 지나면 먼저 소피아 할머니와 티타임을 해야겠다. 창문 너머 보이는 할머니 집 뜰에도 목련꽃이 예쁘게 피었다.

< 창문 너머 보이는 소피아 할머니 집 목련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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