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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런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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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Apr 14. 2020

굿프라이데이와 부활절 이야기

영국 코로나


지난주 금요일 저녁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이웃집 카테리나 부부다. 어느새 길 건너 저 멀리 물러선 채 손을 흔든다. 핫 크로스 번(Hot Cross Buns)이 담긴 봉지가 문 앞에 놓여 있다. 부활절(Easter)에는 달걀이나 달걀 모양의 초콜릿을 먹는다면 성 금요일(Good Friday)에는 십자가 무늬가 새겨진 빵을 먹는다. 예수가 십자가의 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 핫 크로스 번 & 이스터 에그 >


우리는 멀리 보이는 서로에게 인사를 나누었다. 가족 모두의 안부도 궁금해했다.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냥 보내기 아쉬워 ‘차 한잔 하고 갈래?’하고 물었다. 옆에 있던 남편 데이비드가 카테리나의 눈치를 보면서 ‘그럴까?’ 묻는다.

카테리나는 정부 방침을 어기고 싶지 않다며 단호하게 손사래를 친다. 김치를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갓 담은 김치 몇 포기 담아 문 앞에 놓았다. 다가 오기를 주저한다. 내가 멀찍이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데이비드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김치가 담긴 봉투를 가져간다.

< 이웃 카테리나가 보낸 핫 크로스 번과 부활절 카드 >


데이비드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오르간을 반주를 하던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마흔이 되던 어느 해, 갑자기 신을 버렸다고 했다. 지금은 무신론자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Happy Easter!’라고 외치고 아쉽게 헤어졌다.

우리는 지금 예수 부활로 행복한가?




부활절 아침 데이비드로부터 왓츠 업 메시지가 왔다. 이코노미스트에 한국 관련 기사가 실렸다며 우리 집 우편함에 놓고 가겠다고 했다.

흰 봉투에 몇 페이지에 걸친 이코노미스트 코리아 스페셜 리포트가 들어있다. 쪽지에는 영화 기생충과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으로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새롭게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다며 흥미롭게 기사를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기사에 대한 나의 생각도 듣고 싶다고 했다.

영화 기생충, BTS,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에 관한 이야기부터 세월호 사건, 박근혜 탄핵, 한국의 경제 발전, 민주화, 성차별, 성범죄, 유교 사상과 결혼 제도 심지어 이번 선거에 대한 이야기까지 한국의 명암을 모두 담고 있었다. 오랜만에 제 3자의 눈으로 한국을 읽었다. 내 생각을 쪽지에 적어 우편함에 넣고 왔다.


< 이코노미스트 코리아 스페셜 리포트>


그날 저녁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은 병원 집중 치료실에서 퇴원했다.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영국 사망자가 1만 명을 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비현실적인 일상이 현실이 된 지금 ‘이 모든 상황이 연극이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예수가 어둠에서 부활했듯이 코로나바이러스 죽어간 모든 사람들이 무대에서 다시 살아 일어날 수 있다면......


1년 중 가장 기다렸던 부활절 휴가가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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